혹시 나도 잉여인간 일지 몰라
상태바
혹시 나도 잉여인간 일지 몰라
  • 충북인뉴스
  • 승인 2015.01.02 10: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대사회의 키워드 잉여현상을 분석한 최태섭의 <잉여사회>
   
김수정
성공회대 NGO 대학원 실천여성학과 재학

몇 번의 기회가 있어 대학에 ‘여성학 특강’을 간 적이 있다. 30년의 세월 차를 가진 나는 학생들이 풍요로운 시대에 살면서 모든 것에 심드렁한 것이 불편했고 언짢기까지 했다.

이미 기득권 세력인 나의 근대적인 잣대는 그들과의 소통을 방해했다. 나는 그 이유가 풍요로움이 그들을 게으르게 만들었다고 생각했고, 소비 밖에 할 줄 모르는 세대라고 폄하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가 일순 헛 웃음이 나왔다. “우리 시대에 가장 대중적이고 절박한 문학의 형식이 있다면, 그것은 소설도 시도 아닌 ‘자기소개서’일 것이다. 어제 먹은 점심 메뉴도 가물가물한데 하물며 통으로 생각해 내라니. 심지어 거기에서 내가 무엇을 느꼈고, 뭘 배웠는지를 손발이 오그라드는 방식으로 서술해야 하니, 이것은 필시 ‘문학’이 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너무 자신만만해서도 안 되고, 너무 풀 죽어도 안 되고, 너무 오버해도 안 되고, 너무 건조해도 안 되고, 너무 뻔해도 안 되고, 너무 튀어도 안 되는”(본문에서)

그렇다. 취업을 앞둔 졸업생들에게 ‘자기소개서’는 안 되는 것을 요리조리 빠져나와 적당히 감동을 줘야 하는, 그러나 넘쳐서는 안 되는, 그래서 뽑고 싶게 만드는 명작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재고 재서 쓴 글은 그 사람인 걸까?

현실에 순응할지 꿈을 좇을지 묻는 이들에게 ‘어차피 뭘 해도 망하니까 하고 싶은 걸 하라’고 조언하는 문화비평가이자 투명좌파 최태섭은 <잉여사회>라는 책을 통해 잉여집단으로 내 몰린 우리 시대 청춘의 자화상을 민낯으로 드러내고 있다. 보통 잉여란 사회 변화와 발전에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존재를 의미한다.

주변에 넘실대는 ‘사포세대’들

   
▲ 제목: 잉여사회-남아도는 인생들을 위한 사회학
지은이: 최태섭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새로운 자유주의가 넘실대는 이 시대, ‘잉여사회’는 청춘을 불합격품, 폐기물, 더 나아가 ‘인간 떨거지’와 같은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잉여사회의 스펙 높은 청춘은 제 분노를 감출 수 없어 왜곡된 전사의 모습으로 사회를 위협한다. 책임지지 않는 분노로 인터넷을 종횡무진하며 댓글로 공격하고, 상대의 분노를 즐긴다. 그 최전선에 ‘일베’ 가 있다.

그들은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이다. 더욱이 이제는 골방에 홀로 처박혀 모니터와 영혼을 주고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된,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사포세대’들이다.

어느 덧 기성세대가 된 나는 책속에서, 안착하지 못하고 ‘잉여’라고 불리며, ‘좀비와 유령’으로 부유하는 청춘을 만났다. 자신을 잉여인간으로 자조하면서 익명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화살을 겨누는 그들은 우리의 자식이며, 삼촌들이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 들지 않았던 청춘 세대는 아는 만큼 욕구는 높으나 그것을 풀 곳이 없는 벽과 마주한 세대였다. 그들을 안일함으로 몰아 부치기에는 사회구조적 문제가 심각함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누군가는 잉여가 되는 세상’에서 청춘만 ‘잉여’는 아니다. 의자를 뺏기는 순간, 기득권 세대 역시 언제라도 잉여로 전락할 수 있는 아주 자유로운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하는 인간이 바라본 ‘잉여’는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교환가치로서의 잉여가 아니라 삶을 좀 먹는 것 같은 ‘무기력한 타자’로서의 ‘잉여’다.

추천사에서 조희연은 “기성세대가 미처 직시하지 못한 이 극단의 시대와 괴물 같은 한국 사회를 새롭게 통찰한 사회학적 명저라는 생각이 든다”고 언급했다. 나는 청춘을 청춘이라 부를 수 없는 우리 시대의 홍길동들을 이 책을 읽은 후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문화와 가치는 시대적 맥락에 따라 달라짐에도 여전히 나의 사고는 80년대 발전지도에서 걸음을 못 떼고 있는 모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