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의회가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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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의회가 꽃이다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5.07.0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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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생각한다/ 이재표 청주마실 대표
▲ 이재표 청주마실 대표

지방자치의 꽃은 지방의회다. 그 중에서도 기초의회가 꽃피어야 풀뿌리 민주주의가 만발하기 마련이다. 도지사, 시장 한 명을 잘 뽑는다고 ‘만사 OK’가 아니다. 솔직히 다른 시도의 도지사, 시장·군수 중에 ‘깜짝 스타’를 보며 부러운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사람 하나 때문에 그 지역 민주주의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뛰어난 도지사, 똑똑한 시장보다 지방의회의 수준이 그 지역 민주주의의 수준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지방의회의 역할은 자치법규의 제정 및 개폐, 예산·결산에 대한 심의, 정책의 제안 및 심의,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다. 권한이 미치는 범위만 다를 뿐 국회나 지방의회나 다를 것이 없다. 대통령부터 시장·군수까지 단체의 장(長)들도 그렇지만 모든 의회의 의원들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대의(代議)민주주의’의 첨병들이다. 유권자가 냄비 안의 찌개라면 의원들은 숟가락에 담긴 국물 한 모금, 한 모금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지방의회 의원들이 면면이 그 지역 풀뿌리 민주주의 수준을 재는 척도가 되는 것이다.

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됐으니 그 역사가 25년을 바라본다. 그런데 아직도 지방의회는 ‘계륵(鷄肋)’ 취급을 받는다. 기초의회는 더 그렇다. ‘도의원만 뽑으면 됐지 시의원, 군의원은 무엇하러 뽑느냐?’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방정치인들을 줄 세우는 국회의원들이 문제인데 그들을 바꾸려하지 않고 기초의회에 대한 정당공천을 폐지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줄 안다. 만약 선거가 너무 많아 문제라면 차라리 도지사, 시장·군수를 임명하더라도 지방의원들은 꼭 선거로 뽑아야 한다. 예산심의와 집행부견제만 철저히 해도 최악을 면하고, 차선의 상황에는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의회 의원들은 자존감을 가져야한다. 여의도 금배지만 빛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 통합 청주시의 새로운 상징물(CI·City identity) 승인을 놓고 청주시의회가 보여준 일련의 과정은 ‘존재의 이유’에 대해 회의감을 갖게 만든다.

청주시는 통합시 출범을 기념하기 위해 기존의 상징물 대신 청주에 영문 철자 중 ‘C와 J’를 합성해 씨앗을 형상화한 새 상징물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상징물이 지역사회 곳곳에서 입방아에 올랐고 청주시의회 소관 상임위(기획경제위원회)도 이를 부결시켰다. 이승훈 청주시장과 같은 새누리당 소속의 최진현 기획경제위원장은 “시민 모두의 의견을 수렴해 시장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을 상징물을 만들자”고 했다. 그러나 상징물 교체를 다루는 조례는 1주일 뒤 본회의에 상정됐고 야당의원 전원이 퇴장한 가운데 만장일치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승훈 시장은 여야가 합의될 때까지 새 상징물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약속은 흐지부지 됐다. 새 상징물의 디자인적 요소나 함의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지 않겠으나 상임위에서 부결된 조례안이 본회의에 상정돼, 그것도 여당 만장일치로 통과되기까지 그 일주일 동안 막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따지고 싶은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청주시의회는 자존을 버리고 집행부의 뜻을 좇는 거수기로 전락한 것이다.

청주시의회의 자존심이 바닥에 떨어져 짓밟힐 즈음, 체면을 세워줄만한 새로운 의회사가 쓰였다. 이번에는 큰물, 여의도에서였다. 지난 5월29일 여야합의로 통과시킨 국회법 개정안이 39일만에 자동폐기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운운하며 거부권(재의결 요구)을 행사했는데, 새누리당 의원들이 전원 표결에 불참한 것이다. 거부권은 대통령에게 주어진 법적인 권한이라지만 일부 친박의원들이 원내대표 사퇴를 소리 높여 외치고 ‘대통령이 하라’는 그 재의결마저 스스로 포기하는 모습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대사건이었다. 그래 형만 한 아우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특권부터 특권의식까지 완벽하게 갖춘 국회보다 아직은 지방의회가 말랑말랑하다는 것이다. 가능성과 희망은 그래도 지방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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