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고] 이 여름, 이젠 가라!!
상태바
[리뷰고] 이 여름, 이젠 가라!!
  • 한덕현 기자
  • 승인 2004.08.1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상청의 장기예보가 올 여름엔 제대로 위력을 발휘했다. 입추가 지났건만 여전히 덥다. 올해처럼 거의 한달이나 하루도 쉬지 않고 무더위가 괴롭힘을 준 적도 없었던 것같다. 낮이건 밤이건 온종일 에어컨과 선풍기를 끼고살다 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색다름’도 경험했다. 그 하나가 집에서의 집단 ‘잠’이다. 매일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니까 식구들이 모두 에어컨이 설치된 거실에서 밤잠을 청하는 것이다. 각자 방에 선풍기를 틀고 버티다가도 하나둘 슬그머니 거실을 찾는다. 이렇게 집단(?)으로 잠을 청하기는 실로 오랫만인듯하다.

 ‘색다름’은 당장 그동안 당연시됐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다가오는 데서 느껴졌다. 옆에서 자다 말고 물끄러미 쳐다보니 그냥 애들로만 여겨졌던 자식들이 어느새 훌쩍 커버렸다. 생뚱맞게 아이들의 어릴적을 기억해 보기도 하고, 그동안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가장으로서 괜한 자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잠자는 어른들의 풍채도 예전같지 않다. 시원함을 위해 하다못해 제주도라도 보내드리지 못한 죄송함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평소와는 다른 살가움이 전해지는 것이다. 항상 옆에 있었지만 무더위에 지쳐 같이 자면서 느끼는 소회는 분명 달랐다.

 군대를 의무적으로 가야하는 남자들이 술좌석에서 항상 호기있게 말하는 것 중의 하나가 “군대 갔다와야 사람이 된다”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엔 망나니였다가 군대 다녀 온후 효자로 개조(?)되어 나타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이젠 오래 되어 기억이 멀지만 불효자를 효자로 만드는 군대의 비책은 가정과 혹은 주변과의 격리에 따른 소중함의 발로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실제로 군대만 들어가면 평소에 하찮은 것들도 다 소중하고 절절하게 다가 온다. 가족들과 오순도순 모여 식사하는 모습이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 여자친구와 데이트 하는것, 이 모든 것들이 잠시 떨어져 있을 뿐인데 군대에서 만큼은 유난히 간절해진다. 훈련병 시절, 밖에선 쳐다보지도 않던 빵이나 과자는 왜 그리 먹고 싶은지.. 대학생 신분으로 듣기에 촌스럽다며 악착같이 외면하던 남진 이미자의 ‘뽕짝’은 눈만 뜨면 귓가를 때리는 군가(軍歌)들의 난무속에서 이름있는 교향곡 이상의 감동을 안기는 것이다.

 한번은 사역을 나갔다가 민가 화장실의 신문지가 얼마나 반가웠던지 이를 군복속에 숨겨 가지고 귀대했다가 밤새도록 내무반장 폭행의 노리개가 된 적도 있다. 사제(私製) 물이 빠져야 한다나... 하지만 가족과 주변과의 격리는 되레 그동안 하찮게만 여겼던 ‘사제’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간절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군대가면 어머님 때문에 눈물 짜고 갈망하다가 제대 후 효도하고픈 생각이 흠뻑 생기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군대에서 휴대폰도 소지하고 자장면도 배달시켜 먹는다는데 사회와의 일정한 격리는 필요하다는 생각을 감히(?) 하게 된다.

 송두율교수는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기분이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엉뚱하게 이런 말을 먼저 던졌다. “이 자유스런 공기를 맘껏 접할 수 있다는게 가장 즐겁고, 제주도에 가고 싶다”고. 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호흡하는 철학자도 주변 하찮은 것들의 소중함을 이렇게 깨달은 것이다.

 올 여름의 무더움 때문에 기자도 재삼 이를 느꼈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나 이 무더위에 매일 10여명 안팎의 사람들이 익사로 죽어가고 있다. 그 가족들은 되레 가장 소중함을 잃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말한다. 더위야 이젠 가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