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고] 농심을 못 세우면…
상태바
[리뷰고] 농심을 못 세우면…
  • 충청리뷰
  • 승인 2002.04.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쌀이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도 대풍이라는데 농민은 풍년기근, 나라는 풍년시름에 빠져 수확의 기쁨을 누릴 여유조차 없다. 수매물량이 갈수록 축소돼 소득이 줄어드는 게 농민의 가장 큰 걱정거리다. 시가보다 높은 가격에 쌀을 사주는 수매제도는 사실 시장논리를 배제한, 농민입장에서는 완벽한 ‘보험’과도 같은 존재였는데 갈수록 그 약발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쌀 산업 발전 종합 대책’이란 것도 농민입장에선 할 말이 많다. 정부는 내년부터 쌀 증산정책을 포기하고 수매가를 동결키로 했다. 또 WTO와의 쌀 재협상이 열리는 2004년 이후에는 약정수매제를 폐지하고, 시가로 매입·방출하는 ‘공공비축제’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농민들은 “언제는 식량증산을 위해 불가피하다며 새만금 간척사업에 십수조원을 쏟아버린 게 누구였냐”며 정부의 정책표변에 극도의 배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정책일관성을 지키지 못해 온 정부의 원죄론은 일단 접어두고 미래를 냉정하게 내다 볼 때 정부의 쌀 대책은 원칙상 방향이 그렇게 그르지 않아 보인다. 다만 쌀이 갖는 다원적 의미를 고려할 때 정부 방안이 현실적으로 일리가 있다고 해서, 결코 만족할 만하다거나 충분한 대책이 될 수 없다는 데 우리의 고민이 있다.
통일에 대비하고 식량자원이 무기화 할 가능성이 있는 미래에 식량주권을 확보하는 일은 너무나도 중차대한 문제이다. 홍수를 막고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엄청난 양의 산소를 대기에 방출하는 벼논의 공익적 효과도 간과할 수 없다.
더구나 쌀의 정서적 가치는 더욱 각별하다. 반만년 넘게 우리 민족의 원형질을 유지해 온 건 바로 주곡(staple food)인 쌀 덕분이었다. 하지만 절대빈곤의 시기를 벗어난 70년대 중-후반까지도 우리는 쌀밥을 맘껏 먹지 못했다. 그래서 어느 핸가 쌀 막걸리를 먹게 됐을 때 우리는 실로 오랜 세월 움츠려 왔던 가슴을 활짝 펼 수 있었다.
우리는 그때 쌀 막걸리가 아니라 “우리도 쌀을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됐다”는 민족적 자긍심을 마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쌀이 위기를 맞고 있다. 세월이 지나고 상황이 변했는데 과거의 정책을 계속 고수한다는 것도 무리일 터이고, 좋든 싫든 WTO체제를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우리 처지다. 그렇기에 쌀 문제의 본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정부가 용기와 원칙없이 그때그때 손쉽게 정치적 해결책에만 의지, 시간만 허비한 채 쌀 문제를 키워온 원죄는 통탄스럽다.
하지만 이런 시시비비의 논란을 일거에 뒤덮는 절박한 명제는 우리는 벼농사를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쌀 농업의 굳건한 존속과 발전을 위해 농가소득을 지지하는 직불제의 대폭적 확대시행 등 특단의 정책대응에 나서야 한다. 신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안심하고 농사지을 마음, 즉 농심을 붙잡아 세우지 않고는 우리의 미래가 너무 불안하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