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어디 있는가… 오늘을 일깨우는 120년 전의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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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어디 있는가… 오늘을 일깨우는 120년 전의 물음
  • 충청리뷰
  • 승인 2016.01.0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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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장편소설 <나라 없는 나라>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류정환 시인, 충북작가회의

▲ 류정환 시인

갑오년 4월 16일,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전복됐다는 뉴스가 전파를 탔을 때 대다수 국민들은 그리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다. 우리에겐 나라가 있고, 나라에는 불의의 사고에 대비하고 대응하는 여러 기관들이 있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TV 뉴스특보 화면에는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를 알리는 자막이 대문짝만 하게 떴고, 일반 대중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장비와 특수 인력이 신속하게 투입돼 활약하고 있음을 알리는 방송을 보며 이른 점심을 먹었다.

그러나 먹은 것이 미처 소화되기도 전에 보도 내용이 사실이 아니며 어린 학생들 대부분이 속수무책으로 배와 함께 가라앉았음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어처구니가 없어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너나없이 내 탓이라도 되는 양 눈길을 둘 데가 없어 허공을 바라보며 도대체 나라는 어디 있으며 뭘 했단 말인가, 중얼거리며 치를 떨었다.

그날 이후 1년이 넘도록 나랏일을 한다는 이들이 보여준 행태는 참으로 역겨운 것이었다. 대통령은 본인 빼고 다 뜯어고치겠다고 을러댔고, 정부는 쟁점을 보상 문제로 끌고 가서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을 비렁뱅이 취급했다. 보수단체는 ‘구국의 일념’으로 몸을 던져 대통령을 두둔했고, 말께나 한다는 인사들은 대놓고 ‘시체장사’를 한다고 빈정대며 자식 잃은 부모들을 능멸했다. 정치인들은 그 아수라장을 기웃대며 이해득실을 계산하기 바빴다.

“이것은 나라가 아니다. 나라는 없다!”

▲ 나라없는 나라
이광재 지음.
다산책방 펴냄.

바위를 쪼개는 벼락같은, 귀청을 찢는 천둥 같은 비명을 앞세우고 소설 <나라 없는 나라>가 세상에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20년 전 을미년은 일본 낭인들이 궁에 난입해 황후를 시해했던 해였고, 120년 후 을미년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 대란이 일어난 해이니 그렇다. <나라 없는 나라>는 바로 저 을미년 무렵, 갑오년의 이야기이다.

일본과 청나라, 러시아 등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이 무력한 대한제국을 삼키려고 힘을 다툴 때. 황후를 업은 민씨 일파에게 밀려나 절치부심 고독한 흥선대원군과 마주앉은 전봉준(김봉집)의 일갈이 소설 들머리에 배수진처럼 묵직하고 장쾌하다.

“백성이 가난한 부국(富國)이 무슨 소용이며, 이역만리 약소국을 치는 전장에 제 나라 백성을 내모는 강병(强兵)이 무슨 소용이겠나이까? 반도 없고 상도 없이 두루 공평한 세상은 모두가 주인인 까닭에 망하지 않을 것이며, 모두에게 소중하여 누구도 손대지 못하게 할 것이니 이것이 강병한 나라가 아니옵니까?”

부석거리는 나라를 헐어 한입이라도 먹으려고 외세가 노도같이 밀려들 때, 그것도 권세라고 빌붙어 개인의 영달을 도모하려는 쥐떼 같은 무리들이 소용돌이칠 때, 궁을 사수하려는 병사에게 총을 놓고 물러가라는 어명이 떨어질 때, 나라는 있는 것인가. 전봉준을 비롯한 장군들과 더팔이, 을개 같은 농민들이 승산 없는 싸움에 나서 목숨을 바칠 때, 이철래가 세상을 호령할 기회를 버리고 전쟁터로 스며들 때, 나라는 어디 있는 것인가.

그 오래된 물음에 우리 사회는 명쾌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옳다고 믿는 길을 간 사람들은 대개 죽었고, 백성을 도륙하고 나라를 팔아 살아남은 자들의 후손은 오늘 우리 사회의 ‘갑’이 되어 군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봉준은 말한다. “받아먹지 못한 환곡을 갚고, 노상 부역에다 군포는 군포대로 내는 세상으로 다시 가겠느냐. 우리는 이미 다른 세상을 살았는데 어찌 돌아간단 말이냐?”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한 것처럼 공력 가득한 문장은 읽는 이에게 전율과 식은땀을 요구한다.

소설은 거듭 묻는다. 국정을 운운하는 자들이 백성의 고혈을 짜 호의호식하다가 위기가 닥치면 다시 백성을 사지로 내모는 것으로써 안위를 지키는 것을 능사로 아는 나라가 나라인가. 나라가 아니라면 어쩔 것인가. 저 갑오년의 그들은 두렵지만 대답한다. “우리는 함께 이 세상을 부술 거요.” 120년 후 갑오년, 세월호 승객들의 어이없는 죽음 앞에서 그 물음에 어떻게든 응답하고 싶었던 마음은 그런 종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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