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다. 이미 있는 이곳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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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다. 이미 있는 이곳을 향하여…
  • 충청리뷰
  • 승인 2016.02.2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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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연금술사>를 쓴 파울로 코엘료의 데뷔작 <순례자>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김상수 충북재활원장

▲ 순례자
파울로 코엘료 지음
박명숙 옮김
문학동네 펴냄.

<순례자>는 프랑스의 생장피에드포르를 출발해서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의 700Km 순례를 기록한 파울로 코엘료의 첫 작품입니다. 그는 람(Rigor엄격함 Adoration숭배 Mercy자비 /Regnum왕국 Agnus어린양 Mundi세계의)의 일원으로서 검을 찾으라는 마스터의 요구에 따라 귀찮고 무의미한 순례를 나서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비밀과 신비한 길들이 숨어 있고 대부분의 인간들에게는 금지되어 있지만, 이것을 이해하고 주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들이 따로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 믿음에 따라 착실히 행해온 영적 탐색의 마지막 관문으로써, 마스터로부터 새 검을 받아들면 드디어 경이로운 능력을 가진 마법사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칼집으로 향하던 그의 손가락을 짓밟으며 마스터는 ‘자신을 속이는 그대의 손을 거두게! 성전의 길은 몇몇 선택된 자들의 길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길이네! 그대가 지니고 있다고 믿는 힘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야.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없는 힘이기 때문이지!…’라는 준엄한 경고와 함께 검을 찾으라며 산티아고로 내몰았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죽음 이후 성야고보와 성모마리아가 복음 전파를 위해 복음서의 말씀을 가지고 지나간 길, 별들의 들판이라 불리는 콤포스텔라는 이후 순례자들의 길이 됩니다. 가리비로 표식을 하고, 너무 빠르게도, 너무 느리게도 걷지 말 것이며, 길의 법칙과 요구를 존중하며 걸어야 합니다. 그 길은 누구나 걸을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길’입니다. 비범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길 위에 존재한다는 진리가 거기에 있습니다.

순례를 인도하는 페트루스의 말에 그가 복종하는 것도 길의 법칙입니다. 페트루스가 이끄는 순례의 여정에서는 여러 가지 훈련이 병행됩니다.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씨앗훈련’, 익숙한 속도로부터 벗어나 두 배 이상 느린 속도로 걷는 ‘속도훈련’, 부정적 경향들이 드러날 때마다 그것을 상쇄시킬 만큼 아프게 엄지손톱을 누르는 ‘잔인성훈련’, 자신을 수호하는 또 하나의 자기를 만나는 ‘사자의식’, ‘직관 깨우기’, 아가페를 일깨우기 위한 ‘푸른 천체 의식’, 죽음을 온전히 경험하는 ‘산 채로 매장당하는 훈련’, 우주와의 조화를 알게 되는 ‘람 호흡법’, 굴절 없이 바른 통찰력을 갖추기 위한 ‘그림자 훈련’, 온전한 깨어남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듣기 훈련’, 깊은 울림과 느낌과의 소통만으로 행하는 ‘춤의 훈련’이 걷는 것과 함께 이루어지는 동안 그는 익숙해서 착시인 줄도 몰랐던 자신과 자신이 인식하는 것들을 바르게 돌려놓게 됩니다.

검을 찾는 길은 진리를 찾는 길

참 나를 깨달은 자가 곧 부처라는 동양의 오랜 수행 과정과도 유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비교가 딱 맞는 것은 아니지만, 불교의 수행 과정에서 얻게 된다는 육신통(六神通 - 신족통神足通, 천안통天眼通, 천이통天耳通, 타심통他心通, 숙명통宿明通, 누진통漏盡通)도 인간이 스스로 만든 한계를 벗어나면 얻게 되는 본질의 힘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에고가 수집한 무의식의 그림자를 하나씩 직면하다보면 인간 본연에 내재한 완전한 자기(self)실현에 가까워진다고 했습니다.

검을 찾는 길은 진리를 찾는 길입니다. 선민의식에 갇혀 있었고, 호불호로 갈래가 나눠진 개념으로 세상을 재단함으로써 자신이 먼저 그 속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평범한 길을 걷는 동안 한계를 직면해야 하고, 드러나는 자신의 처절한 일면을 마주해야합니다. 피할 곳은 없습니다. 험준한 산맥과 광활한 초원, 이방의 마을을 걸으며 본질의 물음에 침잠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막과 붓다의 보리수는 온전한 개인을 초대합니다. 오롯한 혼자가 되어 세상이 개입되지 않은 근원으로부터 무엇이 이‘나’를 있게 하는지 알게 되어야 합니다. 그 답은 매스컴에 있지 않고, 책과 스승도 안내자일 뿐입니다. 오직 각자의 내면 깊이에 이미 알고 있는 자를 만나야 합니다. 그 간절한 심연으로부터의 갈망만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과 붓다의 깨달음이 인류가 가진 하나의 시원이었음을 알게 합니다.

검의 비밀은 찾는 데에 있지 않고, 검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있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길은 그 비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와 붓다가 평범한 사람들 안에서 권능과 영광이 모든 사람의 것임을 가르쳐준 그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신을 못 박아 높이 매달아 놓은 채 등 돌려 두려움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성큼성큼 우리 자신의 능력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신의 검을 잡고 ‘선한싸움’을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신의 징벌이란 중단했던 사랑의 행위를 계속하는 것임을 길의 끝에서 비로소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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