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고지리 우짖던 그 고향은 아닐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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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지리 우짖던 그 고향은 아닐지라도…
  • 김영회 고문
  • 승인 2002.05.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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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저 마다 귀소본능(歸巢本能)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하루해가 저물면 온 종일 하늘을 날던 새들은 둥지로 돌아가고 광야를 헤매던 들짐승들은 굴을 찾아듭니다. 온갖 생명이 있는 것들이 밤이면 쉴 곳을 찾고 자신을 낳아준 곳, 자신이 자라고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본능은 인간과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중국 한나라 때 시집인 ‘한시외전(漢詩外傳)’에 보면 ‘호마의북풍 월조소남지(胡馬依北風 越鳥巢南枝)’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북에서 온 호마는 북쪽 바람을 향해 기대서고 남쪽에서 온 월 나라 새는 남쪽 가지에 둥지를 튼다는 의미입니다. 또 여우는 임종을 맞아 제가 난 언덕을 향해 머리를 두고 눈을 감는다하여 그를 일러 수구지심(首丘之心)이라고 한다지요.
인간이 고향을 잊을 수 없듯 동물도 제가 난 고향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말 못하는 짐승들이지만 모두 귀소성을 갖고있기 때문일 듯 싶습니다.
12일 설날을 앞두고 연례행사인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됐습니다. 전 국민의 절반이 훨씬 넘는 수많은 사람들이 도도한 물결처럼 일시에 고향으로 몰려들 가니 민족의 대이동이란 표현이 과장만은 아닌 듯 합니다. 조상의 뼈가 묻혀 있고 부모형제 혈육들이 있는 고향을 찾아가는 그 행렬이야말로 중화권(中華圈)에서도 우리민족이 특별히 갖고있는 아름다운 정서요, 미풍입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설은 명절 중 으뜸가는 명절입니다. ‘수서(隋書)’에 음력 정월 초하루를 ‘신라의 국경일’이라고 한 것을 보면 설의 역사는 1천년이 훨씬 넘는 유래를 갖고있습니다. 그러나 근세에 들어 1895년 양력의 도입과 함께 밀려나 일제에 짓밟히고 해방이 된 뒤에도 정부의 억압을 이기지 못했던 설이 ‘복권’된 것은 1989년이 되고서였습니다. 온갖 탄압에도 불구하고 민초들에 의해 끈질기게 명맥을 유지해온 설은 이제 온 국민의 사랑 속에 가장 큰 명절이 돼있습니다.
고향은 누구에게나 돌아가야만 하는 영원의 안식처입니다. 고향은 삶에 지친 사람들을 품에 안아주며 영혼을 감싸주고 심신을 쉬게 해줍니다. 비록 오늘의 고향이 노고지리 우짖던 뒷동산도, 송사리 헤엄 치던 시냇물도, 콧속을 시원하게 해주던 맑은 공기도 찾아 볼 수 없는 그 옛 날 그 고향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곳에는 흙 속의 조상들과 부모형제들이 기다리고있다는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객지생활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고향은 좋은 곳이고 사람들은 모두 고생길을 마다 않고 고향으로, 고향으로 돌아들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가는 귀성길은 너나 없는 ‘고생길’이 되고있습니다. 그러잖아도 붐 비는 도로는 넘치는 차량들로 홍수를 이루고 예기치 않은 인명사고 역시 적지 않은 게 고향 가는 길 의 현실입니다. 한껏 즐거워야 할 명절이 오고 감의 불편 때문에 오히려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지요. 또 명절이면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습니다. 남들이 모두 고향으로 가는데 갈곳이 없는 사람들,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 보호시설의 무의탁 노인들과 어린아이들…등등 우리사회는 아직도 음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많은 불우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동시대를 살고있는 이웃들이지만 남들이 즐거울 때 더욱 쓸쓸해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생각해서라도 흥청망청 분에 넘쳐 상처를 주는 일은 되도록 삼가야 되겠습니다.
어떻거나 명절은 즐겁습니다. ‘인간 도처에 청산이 있다하되 고향산천 그리움 그칠 줄 있을까.’ 옛 시인의 이 한마디가 더욱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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