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한 권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상태바
그림책 한 권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 충청리뷰
  • 승인 2016.06.10 11: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림책카페 운영자 김미자 씨의 <그림책에 흔들리다>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이연호 꿈꾸는책방 대표

▲ 그림책에 흔들리다
김미자 지음.
낮은산 펴냄.

지난 5월부터 직원들과 그림책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함께 읽을 책으로 그림책을 택한 것은 길이가 짧아 짬을 내기가 쉬워서만은 아닙니다. 잘 쓰고, 잘 그려진 그림책 안에는 읽는 이의 모습이 꼭 들어있기 마련입니다. 같은 그림책을 읽으면서도 서로 다른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누구는 울고 있고, 누구는 웃고 있습니다. 어느 때는 크게 기뻐하고, 어떤 장면에선 길게 이어진 큰 슬픔에 지쳐있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유년의 모습을, 또 다른 누구는 젊은 시절의 기억을, 혹은 아직 오직 않은 노년의 모습을 보았다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많은 이들이 좋은 책으로 추천하는 그림책엔 예외 없이 모두의 모습이 그렇게 들어있습니다.

저는 이런 경험이 서점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자산이 된다고 믿습니다. 독자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방법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고, 독자에게 원하는 책을 권해 줄 소통의 지혜가 거기에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나와 아이와 그리고 또 내 안에 있는 어린 나, 이렇게 셋이서 그림책을 보았습니다.”라는 저자 김미자 선생의 발언은 같은 그림책 안에서도 서로 다른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는 수많은 독자의 고백을 대신합니다.

좋은 그림책은 삶의 원형을 깊숙이 품고 있어서 모두를 불러 모으는 힘이 되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이르는 길을 열기도 합니다. 그러니 나에게 이르는 길이 거기에 있고, 다른 이들에게 닿는 길도 거기에 있음이 당연합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서점에서 그림책을 함께 읽기로 한 결정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림책을 처음 접해보는 사람이라면 약간의 막막함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의 내용이 크게 어려워서는 아닙니다. 대개 그 막막함은 우리의 삶에서 기인한 탓이 큽니다. 촘촘하고 빡빡하게 짜인 일상을 빈틈없이 살아가는 것이 버릇이 되었고, 논리의 허술함 없이 삶의 자리 반듯하게 채우는 것이 습관이 된 터라 여백과도 같은 그림책의 이면을 읽어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누구나 인정하듯 그림책은 여백이 유난히 많은 장르입니다. 그래서 그림책을 읽는 일은 여백의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며, 그 빈 곳을 통해 소통하는 방식을 익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영화에는 영화의 문법이 있고, 소설에는 소설의 문법이 따로 있습니다. 그림책을 읽는 나름의 방식도 당연히 존재합니다. 현실을 반영하고 미래를 그려내는 그림책 나름의 방식을 익히고 나면 그림책 읽기가 한결 쉬워집니다.

여백의 의미를 읽는 그림책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안내를 자처하는 이론서들도 제법 많아졌습니다. 오랫동안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활동해 온 김미자 선생의 첫 책 <그림책에 흔들리다>도 그런 역할을 자임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 책이 저자의 첫 책이긴 하지만, 다른 책에 비해 돋보이는 점은 독자의 상황을 예민하게 살펴가며 공감의 영역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동문학평론가 원종찬 선생은 “이 책의 미덕은 그림책 전문가의 글에서는 보기 힘든 울퉁불퉁한 생활의 결들을 진솔하게 보여 준 데 있다. 여러 면에서 이 책의 가치는 사방팔방으로 통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저자는 “그림책 한 권이 인생 전체를 바꾸어 놓지는 않지만 마음을 흔들어 놓는 일은 참 많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마음이 편해지는 문장입니다. 그림책의 어느 한 장면에서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떠올렸던 독자라면 반갑기도 하겠다 싶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도종환 시인의 시처럼 누구나 흔들리며 삽니다. 흔들려야 살아지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릅니다.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성찰하는 순간 흔들림은 시작되고, 스스로 세운 잣대가 옳다고 고집하는 순간 흔들림은 멈추고 배타적이 되고 맙니다. 흔들림이 없으면 다른 이의 삶을 이해할 수도 없고,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감의 영역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일상 자체가 힘겨워지고 맙니다. 굳어지고 닫힌 ‘마음을 흔들어 놓기’ 위해서라도 좋은 그림책을 만나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고 공감합니다.

“아직 마음속에는 아이가 남아 있는데, 그 아이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주지 못한 채 뭔가에 떠밀려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림책을 펼치니 그 속에도 나 닮은 어른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깨닫고 가는 길을 또 한 번 기웃거려 봅니다”라는 저자의 고백은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입니다. 곳곳에서 그림책 읽는 소리가 넘쳐나면 좋겠습니다. 우리 서점에서도 그림책 함께 읽는 소리가 꾸준히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