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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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미물
  • 충청리뷰
  • 승인 2016.07.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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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세평/ 김병구 예성문화연구회장
▲ 김병구 예성문화연구회장

가끔 내 분수를 잊는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최근 들어 내가 선 이 자리가 살아가면서 꼭 있어야 할 자리인지 의문이 자주 생긴다. 남을 걱정할 처지가 아니라 내가 그렇다는 말이다.

요즘 세상은 자기를 내세우는 셀프 광고가 성행하고 있다. 물론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기를 PR하고, 대부분 어느 정도는 용납을 하고 있는 실정으로 본다. 또 그래야만 남들이 깔보지 않는다고 떠들기도 한다. 나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반가운 마음에 지난 이야기들, 현재 주변잡기를 수다 떨다 보면 간혹 ‘잘난 척하고 있네’라는 핀잔을 들을 때가 많다.

건네주는 말은 신경 끄고 부담 없이 한 말이겠지만 필요 이상으로 나를 내세운 것 같아 얼굴이 화끈해지고 가슴이 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스스로 사물을 잘 분별하자’, ‘상황을 헤아리는 슬기로움이 나에겐 필요하다’고 끊임없이 암시하고 자기 세뇌를 시키지만 나를 내세우고 싶은 마음은 깊이 간직되어 있는 모양이다.

그러기에 혹독한 수련이 필요한 것 같다. 허나 문제는 현실에서 자기 분수를 지키고자 애쓰는 모습이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내세울 것이 없어 한껏 위축돼 보이는 경우로 착각됨에 종종 무시당하는 일도 겪는다. 아직 우리 사회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으로 판가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오래 전 직장생활 할 때에 몇 사람이 어울려 출장을 갈 일이 있었다.

나는 그 속에서 중간 정도의 연령에, 중간 정도의 직책이었기에 나서서 일행의 심부름 역할을 담당했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면서 한껏 기분들이 풀어진 상태에서 허름한 식당을 찾아 들었다. 소박한 식사를 하는 도중 모자란 반찬을 더 달라는 요청을 하는 가운데 나도 모르는 중에 중년의 여주인에게 반말을 했다.

여주인은 아주 심드렁하게, ‘앞치마를 둘렀다고 해서, 넥타이를 맸다는 이유로 말을 그리 던져도 되는 것이냐며 신사는 되지 못하겠네요’하는 것이었다. 순간 일행은 얼어붙었다. 얼굴이 벌개 질 수밖에 없었다. 여주인에게 사과하고 허겁지겁 자리를 마쳤다. 주변 경치와 상관없이 각자 침묵을 지키며 조금 전 여주인의 말에 반성을 하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아직도 출장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그 여주인의 심상하게 던진 한마디가 가슴 깊이 남아 있다.

우리는 가끔, 아주 가끔씩 ‘사람다워야 한다’는 말을 한다. 사람답다는 것이 자기 분수를 잘 지킨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유가에서 언급되는 중도가 분수가 된다고 생각하면 너무 어렵다. 조그마한 것이 세상 전체를 대변하는 양 자기를 전면에 내세워 기억시키고자 하는 모습이 많다.

발광(發光)하는 공부가 되어 있지도 못하면서 허세를 앞세우고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어리석음이 설쳐대고, 얕은 지식을 밑거름삼아 마치 전문가인양 떠벌리면서 펼치는 세상에 지금 우리는 서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우리 살아가는 속에 비록 소수일지라도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찾으려 애쓰고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이 살만한 세상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 무리 중 한명이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최소한의 분수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이들을 행복한 미물(微物)이라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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