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 흔들리는 사람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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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 흔들리는 사람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 충청리뷰
  • 승인 2016.10.0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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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의 <길 끝나는 곳에 길이 있다>와 김종철의 <녹색평론>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이연호 꿈꾸는책방 대표
 

▲ 길 끝나는 곳에 길이 있다
정찬주 지음.
황금물고기 펴냄.

▲ 녹색평론 통권 150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녹색평론사 펴냄.

연휴의 마지막을 영화보기로 마무리했습니다. 젊은 행렬이 제법 길었습니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영화 또한 세상의 변화를 민감하게 반영하는 장르입니다. 길게 줄을 이은 이들의 마음 안에 세상에 대한 궁금함이 없지 않겠지요? 책 한 권을 소개해드리던 틀을 바꿨습니다. 신간의 맥락을 읽어 변화의 움직임을 감지해보려고 합니다. 제 공부로는 내일의 지형을 예견해보는 것이 쉽지 않지만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을 감지해 보려는 마음이 간절할 뿐입니다.

영화 <밀정>은 실존을 위한 ‘선택의 무거움과 엄중함’에 대해 생각하도록 했습니다. 이야기의 밀도 보다는 주인공의 독백이 오래 남는 영화였습니다. 툭 던져진 독백은 스크린에 번진 흠집처럼 쉽게 지워지지 않고 여러 날 되짚어졌습니다.

독백은 결연함으로 죽음을 받아들인 의혈단원 김장옥과 연계순의 주검 앞에서 각기 다른 의미와 파장을 만들어 갑니다. 김장옥의 죽음 앞에서는 천근같은 삶의 무게를 덜어내고 마침내 가벼워진 죽음을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초라하고 작아진’ 연계순의 시신 앞에서 오열하는 주인공은 삶이 곧 실존이라는 새로운 다짐에 닿기도 합니다. 영화는 식민의 시대에서 개인이 감당해야 할 실존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친일적 삶과 민족적 공분의 기로에서 그는 매순간 생명을 건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의로운 결단과 생존 본능 사이에서 흔들리고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은 초라하지만 존엄하기도 했습니다.

시인 도종환은 ‘ 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냐’며 흔들리는 삶을 옹호했습니다. 지천명을 깨닫고 세상을 떠돌기 시작한 공자의 선택은 세상의 안락과 평안을 거부하고 흔들리기로 작정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편리와 이익을 좇아 가볍게 움직이는 얄팍함을 흔들리는 삶이라 두둔할 생각은 없습니다. 공동의 가치를 부여잡고 끝끝내 살아가려는 치열함이 흔들림의 바탕일테니 말입니다.

사계절출판사의 <반갑다 사회야> 시리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사회 현상과 용어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쉽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번에 펴낸 <투표, 이 한 장의 힘>은 아이들에게 선거의 절차와 과정을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선택한 결과는 아이들이 마주해야 할 미래입니다. 선거의 절차와 과정에 대해 아이들에게 좀 더 자세하고 친절하게 일러주는 것은 어른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산중에 이불재라는 거처를 마련해두고 ‘집착하지 말라’는 말씀과 ‘걸림없이 살라’는 호령을 죽비삼아 지내는 정찬주가 산방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길 끝나는 곳에 길이 있다>입니다. 이 또한 흔들림의 기록입니다. 고요한 자리에서 다녀가는 여러 인연들과의 대담이니 만큼 흔들리고 또 흔들리는 인생이 담길 수밖에 없었겠지요. 단단한 말씀보다는 흔들리는 자의 솔직한 고백이 큰 위로가 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이제 그대가 행복할 차례입니다’라는 문장이 살갑습니다.

변화의 담론을 통해 소외되고 내쳐진 자들의 희망을 발견해온 <녹색평론>이 150호를 냈습니다. 부도덕한 권력이 만연해지면서 사회는 온갖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럼에도 근본적인 대책은 없고 가볍고 얄팍한 술수만 난무합니다. 이런 어둠의 시대에 변화의 징후를 읽어 내고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내는 지면이 남아있어 다행입니다.

이번 호에서 김종철 교수는 민중의 뜻이 반영되지 않는 정치 체제에 대한 강한 불신을 제기 하면서 대선 정국으로 접어 든 미국의 상황을 자세하게 짚었습니다. “종래의 정당정치와 대의제 민주주의가 이제 수명을 다했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품은 것입니다. “기후변화를 비롯해 갈수록 심화되는 생태적 위기,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위기 등등,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정치, 어떤 민주화가 우리에게 가능하고, 또 바람직한 것일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원칙을 재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선택의 전망을 내다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담았습니다.

시인 오은은 “미련이 많은 사람은 어떤 계절을 남보다 조금 더 오래 산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2016년 대한민국의 여름은 무척 길었습니다. 그래도 그 길을 따라서 가을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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