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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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
  • 충청리뷰
  • 승인 2016.10.0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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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생각한다/ 김수정 젠더사회문화연구소 ‘이음’소장
▲ 김수정
젠더사회문화연구소
‘이음’소장

우리 연구소 부설 ≪여성영화극장 소란≫에서는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 저녁7시, 성안점 롯데시네마관을 빌려 정기적으로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지난 4월 상영된 영화의 제목은 <커피 한 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이다. 제목이 불러일으키는 상상 때문인지 드물게 만석이었고, 표를 구하지 못해 돌아가는 이까지 생겼다.

그런데 정작 영화를 상영하니 몇몇인가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제목이 주는 외설적 상상의 장면은 고작 한 번의 키스에 그쳤고, 주 내용은 동성애와 성매매에 관한 지루한(?) 전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작 커피 한 잔은 어떻게 섹스에 영향을 미치는 걸까?

최근 충북지역의 노인복지관에서 ‘선배시민대학’ 강의를 하고 있는 나는 의외로 성에 대한 호기심과 불편을 호소하는 선배시민인 노년들을 만나게 된다. 적극적인 발언의 근원지는 남성노인들이다. 상대적으로 여성들은 이 주제를 경원시하거나 관심 없어 하는 듯 보였다.

보은에서 ‘후배시민과의 대화와 소통’에 관한 강의를 하던 중이었다. 녹두장군 전봉준을 빼닮은, 노동으로 단련된 단단한 몸을 가진 외소한 노인은 불쑥 “내 생각 해 보니 노인에게 있어서는 성이 가장 중요한 것 같지 않나요?”라고 훅, 질문을 던졌다.

그 분은 수업 내내 진지하게 경청하는 분이었고, 필기를 한자와 국문을 섞어가며 쓰는 걸로 보아 학식이 있어 보였다.

잠깐 당혹스러웠다. 나는 연구소의 영화제를 소개하며 이 영화를 화두로 올렸다.

“어떻게 커피 한 잔이 섹스에 영향을 미칠까요?”.

모두들 황당하다는 표정 일색이다. 다시 물었다.

“여기서 커피는 무엇을 은유하는 걸까요?.”

“은유요?”. “음... 대화를 하라는 거구만.”

커피 한 잔을 매개로 서로를 알아가고자 하는 연인이거나, 오래된 연인이거나, 일상의 공유가 오래 된 부부들이 거짓과 허세의 자신 말고 진정한 욕망과 꿈에 대해 대화할 수 있다면 , 그래서 마음의 대화가 깊어진다면, 비로소 만날 수 있는 몸의 대화는 얼마나 즐거운 쾌락일까?

노년의 여성들이 기억하는 섹스는 남편의 욕망이 풀어지면 이내 돌아눕는 등이다. 어떻게든 아들을 낳아서 시어머니의 눈총을 벗어나야 하는 생존의 몸부림이다. 저들만이 즐길 수 있는 은밀한 공간도 없었다. 명령으로만 기억되는 지시와 강권은 대화가 무엇인지 배운 적도 없으니 그렇게 애잔하고 살갑게 서로가 속삭여본 그림이 떠오르지 않는다.

전쟁의 폐해 위에서 경제발전을 위해 새벽종이 울리면 일어나 노동하고, 그 삯으로 자식을 대학까지 공부 시키면 성공한 어머니라고 자부할 뿐이다. 혹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 부끄러운 어머니다. 그러다 노년이라고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니 개명천지의 세상에 삶이 참 헛헛하다. 기대수명이 100세라니 손 놓고 저승사자를 기다릴 수도 없다.

그래서 선배시민인 노년의 그들은 복지관에 열심히 나온다. 알아들으면 좋고, 못 알아들어도 책상에 앉아서 학습을 한다는 것 자체로 행복하다. 의견을 구하면 “제가 아는 게 없어서요.”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지만, 그녀들은 자신들의 삶이 가치 있다고, 이제의 삶은 더 여유 있게 세상을 바라보고 지역사회의 선배로서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꼭 그래야 한다고, 목소리로 핏대를 세우는 나의 강의에 격한 공감을 표해준다.

그/그녀들은 커피를 열심히 마시겠다고, 그래봐야겠다고 고개를 끄떡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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