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계속 발설하고 맞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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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계속 발설하고 맞서자
  • 충청리뷰
  • 승인 2016.10.26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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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세평/ 손은성 충북여성살림연대 사무처장
▲ 손은성
충북여성살림연대 사무처장

90년대 후반쯤 김형경의 「세월」을 읽었다. 이 소설은 실화와 문학의 경계에서 어디까지가 진실일까를 얘기하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이 소설의 줄거리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주인공이 문단의 선배에게 이끌려 여관에 갔던 사건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이후 주인공은 가까운 지인과 이 사건에 대해 상담을 하게 되는데, 지인의 충고는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마라. 니가 말하는 순간 너는 이 바닥에서 살아남지 못 할 거다”였다. 이 대목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던 것은 폭력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겠구나 싶은 절망감 때문이었다.

그 소설은 오랫동안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고, 그저 어린 시절 동경해 왔던 문인세계에 대한 환상을 환멸로 바꿔주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요즘 SNS를 뜨겁게 달군‘문단 내 성희롱’사건은 20년 전 「세월」속 사건과 똑같다. 달라진 것은 유명 소설가, 시인을 지목하며 사건화 되었다는 점과 이들이 사과를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사회의 만연한 폭력 앞에서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작가의 꿈을 꾸는 한 여성은 인터뷰에서 “문단 시스템으로 들어가고 싶은 습작생들은 권력 관계 때문에 작가로부터 폭력을 당해도 고발하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현재의 문학출판계의 문화와 관행은 이 같은 악순환을 되풀이 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소위 잘 팔리는 작가들이 출판계의 갑이 되고 특권의식이 생기게 되고 이 같은 ‘갑질’이 극단화된 형태가 성폭력이라고 지적한다.

언제부턴가 예술 하는 사람들은 사람 같지 않은 행동을 해도 괜찮다는 허위욕망을 우리는 승인하고 있다. 그 독특한 경험이 예술을 있게 하는 원동력인양 착각을 하면서 말이다.

‘허위욕망’이란 개념은 르네 지라르의 ‘삼각형의 욕망이론’에 소개되었다. 현대사회에 들어와 쓰여진 소설의 주인공들이 어떤 대상에 대한 욕망을 그 대상 자체의 가치를 통해 갖지 못하고 다른 매개체를 통해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의 초점은 욕망을 품은 주체가 자발적인 차원에서 대상에 대한 진정한 욕망을 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매개체, 즉 소설 속에서 선망의 인물이거나 경쟁자로 등장한 인물로부터 촉발된 욕망을 갖게 된다는 사실에 있다. 르네 지라느는 이 매개된 욕망을 허위욕망이라 부른다.

비단 문단 뿐만이 아니다. 누군가 SNS에 올리면서 사건화 되었을 뿐 일상적으로 우리는 폭력과 마주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누군가는 어젯밤 회식자리에서 이와 같은 일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발설하지 못하는 권력관계를 한탄만 하고 있을 뿐.

혹자는 이번 기사를 보면서 또 성폭력 타령이냐며 지루해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의 발설은 계속되어야 한다. 성폭력은 통상 힘이 있는 남성이나 집단에 의해 저질러지는 경우가 많아 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는 사회가 묵인하고 권력이 동조하는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집단적으로 끊임없이 저항해야 한다. 다행히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SNS라는 유용한 저항 수단이 있지 않은가. 이번 사건이 조금이라도 우리 사회 전체가 자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티끌만큼이라도 이 일에 지루해할 힘이 남아 있다면 그 힘으로 폭력에 맞서는 쪽을 택하는 자가 지혜로운 시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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