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생각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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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생각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곳
  • 충청리뷰
  • 승인 2016.12.14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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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서점 소개하는 <작고 아름다운 동네 책방 이야기> <어서오세요 오늘의 동네서점> 등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이연호 꿈꾸는책방 대표
 

대한민국의 정치사에서 2016년은 좀 더 길게 이어질 듯싶습니다. 혼란스럽고 고통스럽게. 시인 오은은 “미련이 많은 사람은 어떤 계절을 남보다 조금 더 오래 산다”고 했지만 2016년을 조금 더 오래 살아야 하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미련 따위가 많아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국민은 미련을 버렸으나 미련을 버리지 못한 권력 때문에 이 추운 겨울을 더 오래 견뎌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지면을 통해 독자를 만나왔는데 이번 원고를 끝으로 마치게 되었습니다. 서운하기도 하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작은 매듭 하나라도 지을 수 있어 다행이다 싶기도 합니다. 2016년의 겨울이 서둘러 마무리되었으면 합니다. 그 동안 함량 미달의 글을 기꺼이 읽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마지막 인사는 서점 공간에 대한 독자의 애정과 이해를 구하는 글로 대신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은 <생각의 지도>에서 “동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동양과 명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서양”의 사유 방식은 분명하게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추상을 이끌어내고 규범을 만들어 현상을 이해하려는 서양의 사유와 변화하고 움직이는 관계를 중심에 두고 상상하기를 즐기는 동양의 사유 방식에 대한 그의 분석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지만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적지 않습니다.

그의 판단에 따르면 모든 것을 명사와 명사로 구분하는 서양의 사유 방식으로는 ‘다른 생각’을 만들어 낼 여지가 크지 않습니다. 분명하고 명징한 판단을 구하기는 쉽겠지만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과 여지는 충분치 않아 보입니다.

‘다른 생각’이 생겨 날 가능성이 존재하는 공간은 분명하게 정리 된 명사에 있지 않고 명사와 명사 사이에서 움직이고 변화하는 어떤 공간일 가능성이 큽니다. 서점은 수많은 생각들이 담겨 있는 공간입니다. ‘다른 생각’과 ‘다른 생각’이 만나 또 ‘다른 생각’을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공간입니다.

조선의 건국이념과 도읍지 한양을 설계한 정도전은 백성의 일상이 과도하게 번거롭지 않도록 피맛길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온갖 행정관청이 몰려 있는 육조거리에서 고관대작을 만나 불편한 예의를 차려야 하는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피맛길은 길의 의미를 넘어 삶을 여유롭고 풍요롭게 하는 특별한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피맛길이 마련되지 않았다면 신분과 계급이 엄격했던 유교 사회에서 백성의 삶은 빡빡한 사회제도에 주눅이 들어 삶의 활력을 만들지 못했을 겁니다. 어쩌면 조선이 오백년이나 유지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은 그 골목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서점 역시 그런 공간입니다.

우리사회 평화 위해 서점 지속돼야

또한 서점은 다름과 다름이 만나는 공간입니다. 한 달이면 6만 종에 가까운 신간도서가 쏟아져 나옵니다. 현재 서점에서 유통되는 도서는 60여만 종에 이른다고 합니다. 서점은 적어도 60만 가지의 다른 생각들이 공존하는 공간이 되는 셈이지요.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내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던 제임스 왓슨은 자신의 저작물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흑인을 비하하는 인터뷰를 함으로써 인종차별에 따른 사회적 지탄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의 대중 강연과 인터뷰를 통해 유전자 검열과 유전자 조작의 필요성을 주장한 바 있었기에 그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던 터였습니다. DNA 나선을 절단하고 필요한 유전자를 이식하는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 왓슨의 생각은 더욱 위험해졌습니다.

조작에 의한 유전적 변이를 허용하지 않는 개체군은 오히려 멸종에 이를 가능성이 증가한다고 합니다. 비록 그것이 우월한 것들만 가려 모은 것이라 해도 인위적으로 유전적 형질을 선택할 경우 예측하지 못했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들이 많습니다.

변이의 가능성까지를 포함하는 것이 생명의 큰 원칙이어야 합니다. 서로 다른 삶의 결을 보여줌으로써 인문적 공간이 되는 서점 또한 이 생명의 큰 원칙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다양한 생각이 편견 없이 담기는 공간이 서점이어야 합니다.

인류 역사에서 학문과 사상의 다양성을 부정했던 몇 번의 경험은 끔찍한 폭력과 비극적 결말로 남았습니다.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하고 진나라를 세웠던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그랬습니다.

히틀러의 입이 되었던 괴벨스가 “더러운 정신들을 불 속으로 던져라”를 외치며 파시즘에 방해되는 모든 사상을 불태웠던 베벨 광장의 기억이 그렇습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서점 공간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다양성에 있습니다. 다양한 생각이 다툼 없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곳이 서점입니다. 우리 사회의 지속적인 평화를 해서라도 서점은 오래 지속되어야 합니다.

<작고 아름다운 동네 책방 이야기/이충열/마음의숲>,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백창화/남해의봄날>, <여행자의 동네서점/구선아/퍼니플랜>, <여행자의 하룻밤/이안수/남해의봄날>, <어서오세요 오늘의 동네서점/땡스북스/알마> 등은 골목의 작은 서점들을 소개하고 응원하며 지지하는 책들입니다.

독자 여러분, 그 동안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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