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대통령으로부터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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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대통령으로부터의 교훈
  • 충청리뷰
  • 승인 2017.03.09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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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결국 특검의 결론은 ‘국정농단의 몸통은 박근혜 대통령이다’로 귀결됐다. 원칙과 신뢰를 내세워 새 시대를 열겠다던 박 대통령의 끝은 이렇듯 국가 권력의 사유화라는, 전대미문의 기막힌 역사를 후세에 남긴 그 주역으로 갈무리될 위기에 놓였다.

한덕현 발행인

대통령의 탄핵을 원하든 혹은 그 반대에 섰든 요즘 모든 국민들에게 이 것 한가지는 분명하다. 국가 리더십이 너무 혼란스럽고 그래서 마음의 중심을 잡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것. 급기야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김무성조차도 “(그가) 대통령답지 않은 행동을 너무 많이 해서 보수를 완전히 궤멸시키고 대한민국을 두동강으로 절단냈기에 본인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고 대못을 박았다.

대통령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믿고자 했던 사회적 약속과 가치관에 의문이 생길 때 곧바로 엄습하는 건 정신의 혼돈(混沌)이다. 나라를 유지시키는 공적 개념과 공적 영역이 지금처럼 무시당하고 짓밟히기는 우리의 민주국가 체제에서 일찍이 없었다.

국가 양심의 최후 보루라는 특별검사와 헌법재판관은 이제 공공연하게 살해위협을 받는 처지가 됐고 탄핵을 의결한 국회의원은 어느덧 몽둥이로 때려잡아야 할 미친개가 됐다. 부동산 투기꾼이자 막말의 깡패 트럼프에게 점령당한 미국을 조롱하고 정치 미숙아인 조폭 두테르테에게 능욕당하는 필리핀을 손가락질하던 우리는 지금 그들만도 못한 ‘양아치’ 수준의 리더십에 직면한 채 길을 잃어 가고 있다.

공통된 가치관의 붕괴, 그리하여 대중들이 길을 잃고 헤매는 혼란스러운 현상을 가장 먼저 아노미(anomie)라는 사회이론으로 정립한 에밀 뒤르켐(1858~1917)이 마지막까지 집착한 것은 사회 통합과 도덕성 회복이었다. 당시 급격한 산업화로 중세적 삶이 흔들리고 사회규범이 무너지면서 범죄, 자살 등 비행과 일탈행위가 유럽을 휩쓸고 있을 때 그는 사회해체를 우려하며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려 애쓴 것이다.

그 때 그가 가장 우려한 것은 집단이 공유하는 가치관의 상실이었고 꼭 100년 후 우리나라에서 똑같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나라의 대통령은 동네북이 된지 오래이고 대통령을 대리하는 변호사라는 사람들은 시정잡배만도 못한 언사로 극단의 좌절감을 국민들에게 안기고 있다.

촛불과 태극기라는 원시적 이념대립이 도처에 넘쳐나면서 이젠 살을 맞대고 사는 부부끼리도 서로 눈치를 보며 말을 조심한다. 사회해체가 아니라 아예 ‘사회’ 자체가 말살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보여져야 할 것은 100년 전의 그들처럼 사회의 통합과 도덕성 회복을 외치는 양심의 목소리일텐데 현실에선 얼치기 선동가들의 횡행과 대선의 파고에 묻혀 좀체로 드러나지 않는다.

‘박근혜’라는 실패한 대통령 한 사람으로 인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회적 비용은 너무 크다. 외교는 결딴났고 국방은 중심을 못잡고 헤매는가 하면 경제는 이미 바닥을 쳤다. 이 와중에 죽어나는 것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자신들이 당할 줄도 모르고 실패한 대통령의 우상화에 환호하며 악착같이 그를 찍었던 서민, 아니 우민(愚民)들이다. 안타깝게도 이들의 대부분은 또 현실을 망각한 채 선동가들에 의해 거리로 소환(?)당해 험악한 쇳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리더는 그 시대의 구체적 표현이라고 했다. 그러기에 실패한 대통령 역시 당시 사회의 구체적 표현의 결과물이다. 친일청산을 못함으로써 가짜들이 다시 나라의 지배세력으로 등장하게 됐고, 대대손손 국가권력의 양지를 차지하는 그들에게 현혹당해 결국 우리는 가짜 대통령까지 맞게 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의 전임 권력에 대한 정치적 보복을 혐오하면서도 이를 쉽게 입에 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이번 국정농단과같은 반(反)민족, 반국가행위에 대한 응징의 과정 없이는 역사의 악순환은 근본적인 치유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창 잘 나가는가 싶더니 역대 독재자와 가짜 대통령을 향해 선의(善意)를 얘기했다가 여론의 치도곤을 받는 안희정이 그 벽을 깨겠다고는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상황이 불리해졌다고 해서 절대로 변하지 않고 오히려 호시탐탐 반전의 기회를 노리는 게 친일로 상징되는 그들의 결코 흔들리지 않는 DNA이다. 지금도 대통령 탄핵에 마지못해 숟가락을 얹었던 세력들이 또 슬그머니 대통령을 감싸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희망은 있다. 누가 말했듯 ‘큰 전쟁은 위대한 장군을 만들고 큰 사건은 위대한 정치가를 만든다’는 것을 굳게 믿기에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21세기 민주국가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아닌 일개 민간 아녀자가 국가권력을 좌지우지한 오늘의 현실, 이 엄청나게 큰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깨우치고 있다.

그리하여 다음번 대통령은 머리도 좋지만 가슴이 따뜻한, 이론에도 밝지만 삶의 철학을 더 중시하는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란다. 적어도 하늘이 내린다는 대통령직을 무슨 보톡스나 올림머리에 어울리는 같잖은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국가리더는 앞으로는 없어야겠다.

바로 이것이, 실패한 대통령이 초지일관 자신을 변명하며 국민들에게 일깨우고자 하는 실체적인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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