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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3.0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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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시스타도서관, 사회적 불균형 해소 노력

 스웨덴은 ‘개인주의’가 강한 나라이다. 그리고 사회적 신뢰, 사회적 연대감이 두터운 나라이다. 서로 모순되지 않는가? 스웨덴에서 ‘개인주의’는 이기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개인의 권리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바탕위에 연대감을 쌓아간다. 사회적 연대감을 개인의 개성과 권리를 구속하고 제한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고 발현하면서 추구하는 것이다.

해먹과 넓은 쇼파 - 이용자 중심의 도서관 운영을 보여준다. / 사진=시스타도서관 홈페이지

가족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가족 내에서도 가족이라는 관념으로 서로를 속박하기보다는 각자의 개성과 권리를 최대한 존중한다. 부부 간에도 부모자식 간에도 그런 모습이다. 가족 간에 가사분담이 잘 이루어진다. 부모들은 최대한 시간을 내어 자녀들을 돌보지만, 항상 자녀들의 개성을 지켜주고, 독립심을 키워준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독립시킨다. 그렇게 집을 나간 자녀들은 “효도해야 한다”는 말은 한번 들어보지 않았어도 어린 시절 몸에 배인 깊은 연대감을 찾아 부모에게 회귀한다. 스웨덴 여성과 결혼하여 스웨덴에서 세 아이를 키운 황선준박사(현 경남교육연구정보원장)에게 스웨덴에서의 생활을 물어보면 이런 이야기를 끝없이 해준다.

부부간에는 “한번 결혼하면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다. 서로 안 맞는다고 생각하면 쿨하게 헤어진다. 그래서 이혼율이 높다. 우리는 그것을 안 좋은 사회라고 재단하기 쉽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이혼을 해도 원수가 되어 헤어지는 것이 아니다. 헤어졌더라도 많은 경우에 필요하면 언제든 만나서 서로 도와줄 수도 있는 관계가 유지된다. 이런 가족문화가 사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프로듀서가 근무하는 도서관

개성을 존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그대로 이해하고, 인정하고, 존중한다. 가족이나 직장이나 정치나 스웨덴의 독특함은 모두 그런 다양성의 존중을 생각해야 비로소 이해된다. 어떻게 그런 문화가 가능한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대화하고, 토론한다.

스웨덴은 우리나라 같은 유흥문화가 없다. 스톡홀름 시내에는 술집도 별로 없고, 술도 시스템볼라겟이라는 지정 매장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 대신 스웨덴은 일찍부터 평생교육 프로그램이 발달한 사회이고, 시민단체 조직이 많은 사회이다. 선거는 4년에 한번 뿐이지만 일상적인 정당 활동이 빈번하고, 참여도 활발하다. 나는 스웨덴의 그런 문화를 지탱하는 뿌리가 도서관이라고 생각한다.

시스타도서관에서 우리를 안내한 요한나는 직책이 프로듀서였다. 도서관에서 사서가 아닌 프로듀서라니. 의아스러웠다. 시스타도서관이 중시하는 것은 ‘사람들의 만남’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관심의 사람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도서관에서는 행사나 모임을 전담해서 기획하는 프로듀서라는 자리를 만들었고, 두 명이 근무하고 있단다. 요한나의 안내로 시스타도서관의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도서관에 들어서면 앞쪽에 노란 구조물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시스타도서관의 상징처럼 소개되는 구조물이다. 넓은 테이블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거나,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데,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벽이 아니라 공간을 구분하는 장식물이다. 개방감을 주면서도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안정감을 준다.

도서관 안에 통로나 문이 따로 없다. 모두가 연결된 하나의 공간이다. 어린이를 위한 코너, 청소년을 위한 코너, 성인을 위한 코너, 잡지를 보는 곳, 극장, 컴퓨터로 정보를 검색하는 곳 등 다양한 공간이 있지만 박스나 부분 칸막이 등으로 구분될 뿐이다.

창가에 마련된 해먹도 특별하다. 해먹에 걸터앉거나 누워서 몸이 원하는 가장 편한 자세로 책을 보거나 쉴 수 있다. 도서관에서 말이다. 도서관 한가운데에는 작은 극장이 있다. 박스로 구분하고, 커튼으로 문을 여닫는다. 작은 연극이나 저자와의 대화, 이야기 극장을 하는 공간이다. 의자가 따로 없고, 계단식 객석에 50여명이 둘러앉아 오붓하게 모임을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구조이다.
 

도서관을 안내해주는 요한나(맨 오른쪽)의 직책은 프로듀서이다./ 사진=시스타도서관 홈페이지

올해의 도서관상을 받은 이유

블랙박스(Black Box)라는 공간에서는 작은 강연회, 저자와의 대화, 토론회, 영화감상, 음악회를 열 수 있다. 팝캐스트를 위한 녹음도 할 수 있다. 구석에는 조용히 공부를 하거나 그룹스터디를 할 수 있는 작은 방들이 있다. 누구나 예약을 하거나 신청해서 사용할 수 있다.

도서관의 운영은 철저히 이용자 중심이고, 뜨개질모임부터 컴퓨터 교육, 법률 상담까지 주민이 원하는 다양한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도서관 이용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책을 배달해주는 것을 비롯해 난독자를 위한 오디오서비스 등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된다.

시스타도서관을 같이 둘러본 순천기적의도서관 정봉남 관장은 “어려운 지역일수록 최고의 사람과 시설을 투자해 사회적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노력, 도서관이 필요한 지역이 어디인가를 놓고 10년의 논의를 거쳐 합의에 이를 수 있는 협치의 관계,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고 권위 대신 실용을 선택해 미래를 준비하는 열린 사고, 협력을 통해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신뢰의 문화가 좋아보였다”고 소감을 정리했다.

이는 시스타도서관이 2015년 올해의 공공도서관상을 받은 이유이다. 불균형 해소, 논의, 협치, 실용, 신뢰 등의 단어가 모두 스웨덴 사회의 특징을 말해주고 있다. 도서관은 그런 정신을 담고 있고,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연대감의 기반이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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