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공기 쌀 값 200원 남짓, 싸도 너무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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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공기 쌀 값 200원 남짓, 싸도 너무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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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3.0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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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치킨·피자·라면값은 계속 인상되는데 쌀 값은 폭락

<정순영의 일하며 생각하며>
정순영 옥천순환경제공동체 사무국장

오늘도 우리 쌀과 농업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기자 생활을 할 때도 농업 분야를 주로 담당하긴 했지만 실제 내 삶의 진짜 터전이 농촌이 된 이후로는 보는 시각도 마음가짐도 크게 달라짐을 느낀다. 그저 3인칭 관찰자적 시점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전할 때와는 달리 바로 우리 마을, 내 이웃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머지않아 내 삶의 이야기가 될 것이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같은 맥락에서 전에는 내가 먹는 ‘쌀’에 대해 그다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저 식당에 가면 중국산 쌀을 쓰지 않는지 정도만 확인했고 혹시나 우리고장 옥천 쌀을 사용하는 식당이 있으면 괜히 한 번 갈 것을 두 번, 세 번 가는 애정을 가지는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그 때는 내 손으로 직접 쌀을 씻어 밥을 안치는 일이 일 년에 몇 번이나 되었을까?

주제에서 조금 벗어난 이야기이지만, 지난 대선 때 한 유명 정치인이 슬로건으로 내건 ‘저녁이 있는 삶’은 현재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와 해결방향을 가장 함축적으로 명확히 제시한 것이 아닐까 싶다. 도시에 사는 친구들에게 제철농산물, 친환경농산물의 가치 이런 것들을 기회 될 때마다 얘기해보지만 생각해보면, 집에서 저녁 한 끼라도 해 먹는 여유가 있어야 퇴근하고 장도 보러가고 제철농산물로 뭐가 나왔나, 국산농산물과 수입산 농산물의 차이는 뭔가 한번쯤 고민해 볼 것 아닌가.

 
30년전 가격으로 폭락한 쌀 값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정작 우리는 이 ‘먹는 문제’에 대해 제대로 성찰해볼 여유조차 없이 살아가는 것 같아 그저 안타까울 나름이다. 다시 쌀 이야기로 돌아와, 나는 요즘 거의 아침, 저녁 하루 두 끼 정도는 직접 밥을 지어먹는다. 주말의 경우엔 하루 세 번 밥 안치는 것도 예삿일이다. 크게 벌지도 못하는데 쓰는 거라도 줄이자 싶어 외식을 자제하는 탓도 있지만 내가 사는 면에는 식당이 (특히 저녁 시간 운영되는) 별로 없어 밥을 사먹자고 해도 사 먹을 곳이 마땅치 않은 탓도 있다.

여하튼 그렇게 집에서 밥을 자주 지어 먹다보니 우리 면의 마을기업 같은 데로 쌀을 자주 사러 간다. 요즘 20㎏ 쌀 소매가 평균 가격은 3만5000원 수준이고 무농약 인증 기준 친환경 쌀은 5만5000~6만 원 정도이다. 성인 기준 밥 한 공기에 드는 쌀 양을 120g정도로 보고 우리 부부 두 사람이 하루 평균 두 끼 밥을 해 먹는다 치면 (일일 2명×2끼×쌀 120g=480g) 쌀 20㎏으로 40일 안팎의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우리집은 거의 무농약 쌀을 구입하고 있으니 5만5000원을 40일로 나눠보면 우리 부부가 먹는 하루 쌀값은 1375원 정도인 셈이다.

만약 관행 쌀을 먹는다면 우리집 하루 쌀값은 875원이 될 것이고 밥 한 공기 값은 220원 정도임을 알 수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나는 이 같은 쌀값이 너무 싼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생산비 등을 따져봐야겠지만 내 또래 여성들이 즐겨 가는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커피 값만 떠올려 봐도 가장 저렴한 아메리카노 커피가 3000원 내외이니 커피 한 잔이면 열다섯 그릇 정도의 밥 지을 쌀을 살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치킨이나 피자라도 두 어 번 먹으면 우리집 40일치 쌀 값 정도는 우습게 지출되니 모르면 몰라도 이런 계산을 하고 나면 커피 한 잔, 치킨 한 마리를 살 때도 뭔가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곰곰이 따져보면, 가끔 커피라도 한 잔 사 마실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쌀값이 싸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우리 같은 서민들이 저렴한 쌀값에 기대 가끔 치킨이라도 한 마리 사서 가족들과 맛있게 나눠먹고 있을 때 농민의 삶은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까? 30년 전과 비교했을 때, 라면 값만 해도 10배 이상 인상되었지만 쌀값만은 오히려 30년 전 수준으로 폭락하는 위기에 몰려 있다.

하지만 떨어진 건 쌀값일 뿐 각종 농자재 가격은 라면 값 못지않게 해마다 인상되었으니 지난번 글에서도 언급했듯 이제는 구호가 아닌 현실로 ‘생산비조차 건지기 힘든 쌀농사’가 된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어려운 상황이 쉽게 나아지기는 힘들 것이란 점이다. 우선은 해마다 생산되는 우리쌀 생산량에 비해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이 급격히 줄고 있다. 아무리 품질 좋은 쌀을 생산해도 소비량 자체가 크게 줄고 있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2013년 67.2㎏이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2016년에는 61.9㎏으로 감소했고 올해는 60㎏대가 무너져 59㎏ 정도의 쌀을 국민 한 사람이 연간 소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5년 만에 쌀 소비량이 거의 절반 가까이 떨어진 것이라고 한다.

쌀 생산면적 줄이겠다는 생각없는 정부

이에 정부는 얼마 전 ‘2017 중장기 쌀 수급안정 보완대책’이란 것을 내놓았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지금의 쌀 공급과잉 현상에 대한 정부 차원의 반성이나 대책은 찾아보기 어렵고 ‘농민이 농사를 너무 잘 지어 쌀이 넘쳐나니 쌀 생산 면적을 줄이겠다’를 해결책이라고 내놓았으니 농민 입장에선 그야말로 복장 터지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

결국 밥쌀용 쌀까지 수입하고야 만 이 나라 정부는, 곧 죽어도 수입쌀은 계속 들여와야 하니 우리쌀 생산은 줄여라, 그리고 쌀 생산량 감축에 협조하지 않는 지자체나 농민은 정부 보조금을 받는데 각종 불이익을 주겠다고 으름장까지 놓고 있다. 정말 불가피하게 쌀 생산량을 조정해야 한다면 그에 대한 농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벼농사를 생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수많은 농가들의 불안감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그 한 방편으로 쌀에만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우리나라 농업직불제를 어떻게 개편할 것인지 등에 대해 국가적 차원의 논의를 시작해야 함에도 그 같은 의지는 도통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해 쌀값이 폭락해 농가에 지급된 공공비축미 우선지급금 일부를 반환하라는 사상 초유의 정부 요구에 농심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농사 잘 지은 게 무슨 죄라고 우리 쌀이 너무 많으니 쌀 생산면적을 줄이라는 정부의 말을 곱게 받아들일 농민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오늘 아침에도 쌀을 씻어 밥을 안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부 관료라는 사람들은 쌀 한 번 직접 씻어 밥을 안쳐 보지 않기 때문에, 정말 뭘 몰라도 너무 몰라서 매번 농민의 속을 뒤집는 농업정책을 내놓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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