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의 합의금보다 진솔한 사과가 더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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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의 합의금보다 진솔한 사과가 더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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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4.20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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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직언직썰/ 박아롱 변호사
박아롱 변호사

내 잘못을 그대로 인정하고, 상대방의 아픈 마음을 공감하며 사죄를 구하는 일. 남의 일을 말로 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내가 잘못한 쪽이 되었을 때 생각보다 쉽게 나오기 힘든 행동이다.

말 한 마디에 시비가 갈리는 일이 자주 생기는 직업의 업무를 보다 보니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변명하는 일이 나도 모르게 몸에 배어 갈수록 자기방어는 심해지고 사과는 힘들어지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이런 내가 염치 불구하고 ‘사과’에 관하여 말을 꺼낸 건 형사사건, 특히 성폭력범죄 사건에서 ‘합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통상 형사사건에서 합의가 이루어지게 되면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 사죄와 합당한 손해배상을 받고, 수사기관 또는 법원에 대하여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의사를 전하게 된다. 과거에 강간이나 강제추행죄 등이 친고죄일 때는 수사나 재판 어느 단계에서든 합의가 이루어지면 공소요건이 없어져 가해자가 처벌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친고죄가 폐지된 요즘에 이르러서는 합의의 의미가 예전처럼 아주 크지는 않다. 그래도 합의가 이루어질 경우 범행의 경중이나 합의가 이루어진 단계, 가해자의 범죄전력 여부 등에 따라 크게 선처를 받을 수도 있어서 대다수의 성폭력범죄 사건에서 합의가 큰 화두가 되곤 한다.

그런데 합의를 제안하는 가해자 측이 모두 ‘잘못을 인정하니 사과하겠다’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 고민이 되는 일이다.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는 치열하게 범행을 부인하면서 피해자에게는 ‘어쨌든 도의적으로 미안하다. 합의금을 지급할 테니 나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해 달라’는 것이다.

성적인 의도가 있었는지 자체가 애매할 수 있는 아주 경미한 추행이나 쌍방 취중에 일어난 사건의 경우 등이 아닌, 범행 여부 자체에 오해가 있기 어려운 종류의 성폭력범죄에서 가해자가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일은 피해자로 하여금 거짓이나 과장된 사실을 신고하였음을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인정하라는 요구가 된다.

물론 성폭력범죄가 인정되어 유죄 판결이 확정될 경우에는 처벌도 무겁거니와 신상정보가 등록되어 수 년 동안 국가의 관리를 받아야 한다. 또 일정 범위의 직업을 갖는 일이 제한되는 등 여러 가지 불이익이 따르기 때문에 어떻게든 죄를 면하고 싶은 심정이 당연히 들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면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불합리함을 피해자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용서란 없다’며 무조건 처벌을 원하는 피해자도 있고, ‘합당한 손해배상’의 기준이 다른 사람들보다 다소 과하게 느껴지는 피해자도 있지만, 사실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를 공감하려 노력하면서 진심으로 사죄하는 상황에서 처벌 의사나 고액의 손해배상을 끝까지 고집하는 피해자는 그다지 보지 못했다.

성폭력범죄가 인정되는 경우 법적으로, 사실적으로 가해자가 안게 되는 부담은 매우 크다. 이 때문에 친족 간 성폭력범죄나 심각한 상해 등의 결과를 수반하는 성폭력범죄 등 지극히 파렴치한 종류의 죄가 아니라면, 가해자에게 동종 범죄 전력이 없고 피해자가 진정으로 가해자를 용서한 경우에는 수사기관 또는 법원에서 베푸는 선처의 범위도 넓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피해자들 중 많은 수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엄격한 처벌이나 고액의 합의금보다는 자신의 인격에 상처를 입힌 가해자로부터 진솔한 사과를 받음으로써 이러한 상처를 회복하여 나가는 일이다.

잘못을 저지른 것이 맞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받고 싶다면, 진솔하고 정직한 태도로 자신의 잘못을 마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선처를 구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합의를 제안함에 있어 형사사건에서의 합의는 단순히 ‘합의금을 지급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사과하여 용서를 받았다’는 의미임을 꼭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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