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북한팔이와 전쟁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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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북한팔이와 전쟁놀이
  • 충청리뷰
  • 승인 2017.06.1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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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격외도리/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한덕현 발행인

“전쟁의 후유증을 치유하기보다 전쟁의 경험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던 이념의 정치, 편가르기의 정치를 청산하겠다.”

지난 6일 현충일 기념식에서 있은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다. 이날 언론은 “애국에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고 앞으로 애국자에 대한 예우를 극진히 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에 포커스를 맞춰 보도를 쏟아냈지만 당시 대통령 추념사의 백미는 “전쟁의 경험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언급이다. 이 말에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모든 비극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를 듣는 순간 언뜻 떠오른 건 세계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보수정치세력의 자기생존법이다. 보수 특히 극단적인 우파생존의 가장 큰 특징은 적대적 공포심을 부추기는 이른바 전쟁놀이다. 인류 문명사에 치욕으로 남은 모든 비극들의 근원은 여기에 있다. 히틀러의 나치즘이 그렇고 우리나라 격동기의 민간인 학살이 그렇다.

시각을 좁혀서 지난 대선을 생각해보자. 문재인 후보를 빨갱이로 색칠하며 “북한과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핏대를 올리던 보수후보들은 패색이 짙어지자 돌연 말을 바꾼다. “좌파정권이 들어서면 트럼프가 북을 선제 타격할지 모른다” 혹은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사실상 김정은이 되는 것”이라고 위기감을 증폭시켰다.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했다가 나중엔 그 전쟁이 나면 국민들은 끝장이라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여기에 흔들림없이 관통하는 한가지 논리는 공포감의 조장이다. 그 과정만을 보면 마치 사이비 종교의 득세와 유사하다. 종교 역시 대중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서 출발한다. 대표적인 것이 말세론이다. 트럼프의 막가파식 발언으로 그 어느때보다도 전쟁의 기운이 높아지자 미국과 일본 등지에선 지하벙커산업이 상종가를 치고 있다. 벙커를 생산 판매하는 ‘라이징 에스’라는 업체는 트럼프 집권 후 매출이 700%까지 뛰었다고 한다. 이 업체는 부활하는 아들(Rising son)이라는 종교적 명칭에서 이름을 땄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우리나라에서 보수정치세력이 북한과의 적대적 위기감을 내세워 권력을 농단한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들은 늘 현상의 불안감을 부추기며 국민들에게 증오와 대립의 내성을 촉발시켰다. 문재인 정권이 명심할 것은 바로 이거다. 앞으로는 북한과의 어떤 관계에서도 국민들에게 증오심을 유도해 체제수호나 정국전환에 악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보수 패패의 근본적인 원인도 여기에 있다. 더 이상 국민들이 안 속는다는 것이다.

과거 MB는 북한도발에 대한 두배 세배의 응징을 호언하고도 막상 연평도가 포격받자 전쟁을 두려워한 나머지 말폭탄만 쏘아대며 이를 철저하게 자신의 국내정치에만 활용했다. 강토의 침공에 대해선 마땅히 전쟁까지도 각오하며 맞대응했어야 한다. 자신은 물론이고 자식까지도 악착같이 군대를 기피케 한 이들이 지금 우리나라 보수의 리더들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끊임없이 북한팔이를 시도한다.

어차피 전쟁은 논리와 이성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전쟁은 반문명, 반인간의 야만성과 예측불가능한 돌발성으로 야기되며 그 전쟁에서 나라를 지켜내는 것은 지도자의 용기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이라는 적과의 끊임없는 동거속에 지도자의 용기가 아닌 지도자의 기만을 너무도 많이 보아 왔다.

문재인 정권에 대해 국민들이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당연히 남북관계다. 광화문의 촛불은 나라의 근본과 운명을 바꾸라는 국민들의 명령이고 이는 결국 북한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그 밑그림조차 그리기가 쉽지 않다. 문재인 정권 출범과 동시에 김정은의 도발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은 역으로 북한이 ‘문재인’에 대한 기대심리를 높이고 있음을 반증한다.

그동안 정권이 바뀔때마다 경험한 것이지만 남북관계는 뭔가 될 것같다가도 돌발적인 사건으로 한 순간에 훅 날아갔다. MB정권에선 금강산을 관광중이던 박왕자 씨 피격사건으로 남북관계가 종을 쳤고,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신뢰프로세스를 모토로 분위기를 바꾸는가 싶더니 대책없는 개성공단 폐쇄로 남북관계를 아예 빙하기로 내몰았다.

국회가 며칠전 남북이산가족상봉을 촉구하는 결의안에 합의했다. 오는 8월 15일 광복절에 맞춘 것이다. 청문회정국 속에서 상대 당에 대해 그저 쇳소리만 해대던 국회가 자기들의 평가대로 모처럼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같다. 하지만 북한은 기다렸다는 듯이 민간교류조차 거부하고 나섰다.

어차피 북한이 스스로 알아서 따라오기를 기대하기란 우리와의 괴리가 너무 크다. 그들이 따라오도록 끊임없이 두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남한의 극우보수가 끝까지, 그리고 죽어도 변하지 않듯 김정은이나 그를 둘러 싼 북한 권력층은 절대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북한의 진정한 통일세력, 인민들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 통일의 결정적 단초는 서독을 향한 동독인들의 대규모 엑소더스였다. 그리고 그 시작은 1989년 8월 19일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국경에서 개최됐던 평화축제장이었다. 이곳에 참가한 동독인 600여명이 일거에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 것을 기화로 동독인들의 대탈출이 감행됐고 이 것이 끝내 통일로까지 이어졌다.

어차피 통일은 우리의 문제다. 지난날에는 뒷담화로 얘기됐지만 요즘은 우리를 감싸는 주변 강대국들 즉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은 결코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공식 문서로써 공공연히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더 분명해졌다. 북한의 도발에는 가차없는 응징과 보복으로 맞서되 민간차원의 교류는 간단없이 추진하는 것이다.

충북인들은 북한 인민들의 변화를 지난 2004~2008년 충청리뷰가 총 다섯 번에 걸쳐 개최한 금강산 마라톤 대회를 통해 똑똑히 체험할 수 있었다. 처음엔 눈도 마주치지 못했던 그들이었지만 나중엔 먼저 다가와 말도 건네고 모종(?)의 청탁도 했다. 북한의 진정한 변화는 이런 것이고 또 우리가 믿을 건 이것 뿐이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이젠 인구 몇백만명의 죽음이 문제가 아니다. 세계 최첨단의 무기가 총동원된 3차대전으로 이어져 아예 나라 자체가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북한 김정은의 불장난은 물론이고 남한의 저 빨갱이 장사꾼들의 북한팔이와 전쟁놀이를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북한 그리고 전쟁의 경험을 내세워 국민을 기망하는 사이비 국가지도자는 앞으로 없어야겠다. 군대의 문턱에도 안 간 사이비 보수들이 내는 달콤한 세이렌(seiren) 소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정권교체의 주역,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에게 내리는 지상 명령인 것이다.

하여, 우리는 다시 금강산을 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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