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위로 떠오른 설계업계 복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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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위로 떠오른 설계업계 복마전
  • 오옥균 기자
  • 승인 2017.06.30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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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경찰청, 흥덕구청사 설계공모 로비 의혹 ‘내사’
새로운 권력 ‘심사위원’…심사위원회 투명성 높여야

현상설계공모란?
합리적인 설계안을 얻을 목적으로 상을 걸고 많은 설계자를 경기에 참가시키는 방법으로 진행하는 설계공모방식.

흥덕구청사 설계공모를 둘러싼 불법행위 의혹에 대해 경찰이 내사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풍문으로만 떠돌던 설계업계 로비 실체가 드러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충북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 15일 청주시로부터 흥덕구청사 설계공모 관련 서류를 넘겨받아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진행상황에 대해 함구하고 있지만 흥덕구청사 현상설계 공모과정에서 당선업체가 심사위원과 공무원을 상대로 로비한 정황을 잡고 내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내사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답변했다.

경찰의 내사 소식이 전해지자, 업계는 ‘놀랍다’는 반응과 함께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심사위원이나 공무원 등 공모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로비는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놀라는 이유는 ‘누가’ ‘왜’ 로비 의혹을 제기했냐는 것이다. 지역의 한 업체 관계자는 “공공건축물 현상설계공모에 참여하는 업체라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경쟁업체의 행위는 아니라는 것이다.

흥덕구청사 현상설계공모에서 당선된 S사의 조감도.

심사위원 로비 시도 ‘다반사’

이는 청주지역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박인석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는 저서 ‘건축이 바꾼다’를 통해 설계업계 실태를 신랄하게 고발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식의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은 지난 21일 출간됐고, 최근까지 그가 직접 경험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학계에서 인정받는 학자다. 그렇다보니 많은 현상설계공모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박 교수가 소개한 일화는 충격적이다. “건축과 교수들은 대부분 경험해본 일”이라며 “요즘은 다소 줄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벽에 휴대폰이 울리는 일이 한 달에도 몇 차례씩 반복되곤 했다”고 기술했다. 발신자는 발주기관 담당자와 응모한 설계업체 직원이다.

발주기관 담당자는 심사위원으로 참여해달라는 전화를 한 것이고, 업체 직원은 ‘잘 부탁한다’는 전화를 한 것이다. 업체는 수백명의 심사위원 후보군 모두에게 전화를 건다. 인맥을 이용해 선을 댈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건축사를 많이 둔 대형업체일 가능성이 높다. 책에는 금품 제공 등 불법적인 로비 내용을 기술하지 않았지만 이 내용만으로도 설계공모를 둘러싼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알 수 있다.

박 교수는 해법도 제시했다. “발주하고자 하는 건축물 설계에 대한 방향이 설계자들에게 제시되기 위해서라도 심사위원은 공모와 함께 공개되어야 하며, 심사위원 각자의 평가를 투명하게 공개해 심사 결과를 통보해야 한다.”

사실 이 같은 해법은 이미 국가가 정하고 있다. 국토부는 ‘건축 설계공모 운영지침’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주문하고 있다. 지침 제12조(심사위원 선정 등) 1항에는 “심사위원의 명단은 제5조 1항에 따른 설계공모 시행 공고 시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박 교수가 저서에서 “요즘 다소 줄었다”고 표현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청주시는 국토부의 지침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내사 중인 흥덕구청사의 경우 지난해 11월 3일 입찰공고가 났지만 심사위원 명부는 그보다 한참 뒤인 지난 2월 8일 공개됐다. 심사위원회(2017년 2월 14일)가 열리기 6일 전이다. 그보다 앞서 공모를 진행한 상당구청사의 경우에는 심사위원회가 열린 2015년 11월 5일 당일에서야 명단이 공개됐다. 박 교수가 지적한 것과 일치한다.

이 같은 진행에 대해 청주시 관계자는 “국토부의 지침은 알지만 우리 시에서는 심사위원회가 열리기 5일전 명단을 공개한다”고 엉뚱한 답변을 내놨다. 국토부의 지침에도 불구하고 자체적인 판단에 의해 5일 전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답변은 다른 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윤승현 새건축사협의회장은 “청주시 뿐 아니라 여러 지자체가 여전히 이런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며 “로비를 막기 위해 최대한 늦게 공개한다고 하지만 이런 방식이 오히려 로비를 부추긴다”고 설명했다.

윤 회장은 “서울시는 국토부의 지침을 따르고 있다. 또한 ‘프로젝트 서울’이라는 전용홈페이지에 공개하는 동시에 심사위원을 검증하는 시스템도 운영하고 있다”며 “이전보다 심사과정이 투명해진 것을 체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업체는 왜 참여 안하나?

윤 회장은 사전 공개 효과에 대해 “공을 심사위원에게 넘기는 것이다. 사전 공개를 하면 정보력과 관계없이 모든 업체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진다. 심사위원으로서는 업체마다 일일이 만나서 이야기를 들을 것인지, 아니면 모든 업체와 거리를 둘 것인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 노출되면 판단력이 생긴다. 외압에 흔들릴 것 같으면 스스로 그만둬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또 “공모가 거듭되면 심사위원들에 대한 업체의 평가도 굳어진다. 로비에 움직이는 심사위원인지 원칙대로 심사하는 위원인지, 이런 평가가 결국 부적절한 심사위원의 도태로 이어진다”고 사전 공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윤 회장은 “서울에서는 설계용역비 5억원 이상이면 최소 50개 이상 작품이 출품된다. 출품작이 100개 이상인 경우도 허다하다. 작품이 좋으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방은 어떤가?”라고 반문했다. 흥덕구청의 설계용역비는 19억원(부가세 제외)이었다. 하지만 출품작은 고작 4개 뿐이었다. 상당구청사도 다르지 않다. 24억원짜리 대형 용역이지만 5개 업체만 참가했다. 그는 “응모해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심사위원의 구성과 자격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현행 지침에는 심사위원 자격을 해당분야 전문가로 제한하고 있다. ‘건축사 자격 소지자로 5년 이상 실무경력이 있는 사람’ '‘대학 건축설계분야 조교수급 이상으로 5년 이상 경험이 있는 사람’ ‘기타 건축설계 관련 분야에서 동등한 전문지식과 실무경험이 있다고 발주기관 등이 인정한 사람’에 속해야 한다.

지역의 한 건축사는 “서울과 환경이 다르다. 청주시 심사위원들을 보면 99% 충청권 인사들이다. 업계에서는 모두가 알만한 사람들이고, 평상시 교류가 있던 사람들이다. 로비하기 쉬운 환경이다. 이런 점에서 심미안만 있다면 예술인이나 시민단체 관계자나 상관없다. 다양한 분야의 심사위원들이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5~9명’으로 정해져 있는 심사위원수를 최소 30명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윤 회장은 “심사위원 수를 오히려 줄여야 한다. 심사위원은 공정성과 변별력을 갖춰야 한다. 설계에 대한 월등한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춘 사람들이 토론을 통해 시민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 작품을 선정해야 한다”며 “지방 공모일수록 토론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토론없이 좋은 작품을 선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경우에는 심사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자신만의 선별법도 공개했다. 청주시 심사위원회는 수년전부터 토론을 진행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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