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민이 만드는 스마트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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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시민이 만드는 스마트시티
  • 충청리뷰
  • 승인 2017.07.2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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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열흘간 프랑스와 독일의 몇몇 도시를 돌아보는 유럽출장을 다녀왔다. EBS 과학다큐 프로그램 <비욘드>의 ‘스마트시티’ 해외취재 자문과 진행 역할을 맡게 되어 제작진과 함께 다녀왔다. 스마트시티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국내에서도 뜨겁고, 유럽 도시들도 오래전부터 스마트시티를 향한 다양한 실험을 전개하고 있다. 그 현장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파리 남서쪽에 위치한 이시 레물리노(Issy-Les-Moulineaux)시 사례를 주로 취재했다. 1980년부터 지금까지 30년 넘게 시장을 연임하고 있는 앙드레 상티니 시장은 과거 공장지대와 군사기지로 쓰이다가 점차 쇠퇴하던 이 지역을 1990년대부터 인터넷과 첨단기술의 도시로 바꾸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 부이그텔레콤 등 글로벌 기업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기업과 시민들이 함께 정보를 공유하며 에너지 사용 시간대를 나누어씀으로써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이시 그리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시 레물리노시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한 포트디시(Fort d’Issy) 주거단지도 매우 흥미롭다. 과거 파리 외곽을 수비하기 위해 건설했던 요새(fort)를 스마트 주거단지로 바꾸었다. 지하 700미터의 따뜻한 물을 끌어올려 난방에 활용하는 지열활용 플랜트가 단지 안에 마련되어 있고, 각 가정의 전기와 에너지 사용 및 주택관리도 스마트하게 처리되고 있다.

파리의 공유자동차 오토리브(autolib)와 공유자전거 벨리브(velib) 제도도 스마트 도시의 좋은 예다. “너도 차, 나도 차, 다함께 차차차” 식의 과거방식을 벗어던진 사람들이 늘고 있다. 굳이 자동차나 자전거를 집집마다 보유하지 않고, 필요할 때 쓰고 반납할 수 있는 공유의 삶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파리 시내에는 현재 2만대 이상의 공유자전거가 마련되어 있고 300미터 당 하나 꼴로 있는 무인대여소에서 쉽게 빌리고 어디에든 반납할 수 있다. 창원시의 ‘누비라’, 고양시의 ‘피프틴’, 대전시의 ‘타슈’, 서울시의 ‘따릉이’처럼 우리나라에서도 공유자전거는 점점 늘고 있다.

독일 함부르크 남쪽 빌헬름스버그에서도 아주 흥미로운 스마트 주거단지를 만났다. 함부르크에서 열린 독일국제건축전시회(IBA 함부르크, 2006-2013) 때 지어진 주거단지 안에 다양한 유형의 스마트 주택들을 볼 수 있었다. 햇볕을 받아 광합성을 하는 미세 해조류 양식 수조를 벽에 두른 해조류 주택(Algae house, BIQ), 낮에 햇볕을 받아 열을 저축했다 밤에 발열하는 그린커튼과 발코니에 태양광 패널이 있는 주택(Smart is green), 부드럽게 휘고 움직이는 태양광 패널을 데크 위에 설치해 그늘을 만든 집 등 다채로웠다.

빌헬름스버그에는 ‘에너지벙커’라고 불리는 또 하나 깜짝 놀랄만한 시설물이 있다.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의 공습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건설했던 거대한 방공호의 변신이다. 높이 42미터, 외벽 두께 3미터, 지붕두께 4미터의 거대한 구조물은 영국군에 의해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되었으나 내부의 일부만 부서지고 건재했다고 한다. 오랜 시간 방치되어있던 벙커는 지금 에너지 플랜터로 변신하였는데, 지붕과 남측벽면에 3천 제곱미터 면적의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었고, 인근 공업지역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이곳으로 모아 주변지역에 공급하고 있다.

독일 최대의 무역항이자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이은 유럽 제2의 항구도시인 함부르크에서는 아주 똑똑한 항만을 꿈꾸는 ‘스마트포트’ 프로젝트가 한창이다. 배들이 컨테이너를 실어오면 철도나 화물트럭으로 다시 실어 나르는 물류시스템을 하나로 통합하고, 관련정보들을 실시간으로 공유함으로써 물류교통의 효율을 크게 높이고 있다.

유럽 도시들 곳곳에서 ‘보차공존도로’ 표지를 볼 수 있다. 동네를 상징하는 집과 길이 있고, 길은 사람과 차가 함께 쓴다. 길에서 아이들은 공놀이를 할 수도 있다. 보차분리가 아닌 보차공존도로는 강자인 자동차와 약자인 사람이 지혜롭게 공존하는 수준 높은 도로운영 시스템이다.

자동차는 사람이 발명하고 만들어낸 신기술 제품이다. 사람을 위해 만든 자동차가 지금은 모든 도시문제의 주범이 되어버렸다. 신기술이 스마트시티를 만드는 게 아니다. 새로운 기술을 지혜롭게 쓸 줄 아는 시민들이 있어야 스마트시티가 가능해진다. 아날로그를 디지털화하고, 각기 따로 하던 것을 하나로 묶어 하는 것이 스마트 기술이다. 스마트 기술을 스마트하게 쓸 줄 아는 사람들이 있어야 진정한 스마트 시티가 될 수 있다. 스마트시티란 무엇일까? 새로운 기술을 지혜롭게 쓸 줄 하는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고 나누며 살아가는 도시가 바로 스마트시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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