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눈물이 나지 않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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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눈물이 나지 않았던
  • 충청리뷰
  • 승인 2017.08.2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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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운전사>

사무실 출근해서 이메일을 확인하려다보니 영화 ‘택시운전사’가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인터넷 기사들이 눈에 띈다. 영화 개봉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천만 명 넘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았다니... 가끔 무슨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약간 무섭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토록 단시간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도구로 영화만큼 강력한 것이 과연 있을까.

그러고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역시 천만 관객을 돌파했던 영화 <변호인>을 싫어하다 못해 영화 제작사 세무조사에 출연 배우들에게까지 직간접적 불이익이 돌아가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심정적으로 이해가 가기도 한다. 자신을 미워하는 국민은 점점 늘어가고 있는데 모든 면에서 자신의 정 반대편에 서 있는 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과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라니...뭐 여하튼 말은 이렇게 해도 나 역시 영화 <택시운전사>가 천 만 관객을 돌파하는데 일찌감치 한 몫(!)을 했으니, 영화가 개봉되자마자 동네 언니들 몇몇과 함께 대전 극장까지 차를 몰고 나가 관람을 했다.

참고로 나는 책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보기에 앞서 항상 준비된 눈물샘을 가진 사람이다. 남편이 항상 ‘뭐가 그렇게 슬프냐’고 혀를 내두를 만큼 슬퍼도 울고 감동적이어도 울고 너무 웃겨서도 울고...여하튼 그렇게 잘 우는 사람임에도 이상하게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면서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영화 속 광주의 비극이 점점 절정에 치달으면서 주변 관객들의 흐느끼는 소리들이 높아져감에도,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다.

‘왜 그럴까’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서도 내가 눈물이 나지 않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아마도 그건 내가 영화를 보기 전 이미 ‘예습’이 너무 많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라고는 도저히 믿고 싶지 않았던 80년 광주의 비극을 빛바랜 기록영상으로, 활자화 된 기록으로, 그리고 광주 망월동 묘역 곳곳에서 이미 너무도 많이 목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영화 <택시운전사> 속 광주는 오히려 다소 낭만적으로 느껴졌다고나 할까. 한편으로는 그 엄청난 역사적 비극의 현장을 비극 그 자체로 그리기보다는 웃음과 눈물, 따뜻한 인간애가 넘쳤던 공간으로 그린 것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천만 관객 중엔 분명 10대 청소년들도 많이 있을 텐데 어쩜 영화로 광주를 처음 만나게 됐을 그 친구들이 광주를 그 어느 지역보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동네로 받아들였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처음 만난 광주는 그 비극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쉽사리 입에 올리기도 조심스러운 그런 도시였다. 스무 살 대학에 갓 입학하고 선배들을 통해 접하게 된 80년 광주의 기록들은 광주와는 정 반대편의 부산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란 도시를 한 번도 가본 적조차 없는 나에게 너무도 충격적인 것들이었다. 과연 이 기록 속 광주가 실제 존재하는 곳일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지금 모습은 어떨까, 그런 복잡한 생각들을 머리에 가득 담고 2000년인가 2001년인가 5·18기념행사가 열리는 광주를 처음 찾았다.

처음 광주를 찾았을 때의 기억
‘광주는 정말 실재하는 곳이었구나’

전날 서울 모 대학에서 대학생들끼리 모여 밤샘 행사를 치른 후 새벽 어스름이 채 걷히지 않은 시간에 진입했던 광주의 그 모습이, 15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짙은 안개와 함께 너무도 고요하게 잠들어 있던 광주 시내를 차창 밖으로 바라보며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다. 놀랐던 점은, 나름 호남의 중심도시임에도 크고 높은 빌딩이나 아파트촌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광주에 대한 많은 정부 투자가 이루어져 지금 광주는 엄청나게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2000년 초반까지는 부산이나 다른 대도시에 비해 상당히 낙후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또 한 가지 광주를 떠올리면 웃음 짓게 되는 이유는, 데모를 하면서 처음 박수를 받아 본 기억 때문일 것이다. 서울 도심에서 집회와 행진을 하면 ‘부모한테 비싼 등록금 받아 공부는 안 하고 저러고 돌아다닌다’는 손가락질과 교통 체증에 항의하는 운전자들의 경적 소리를 무수히 들어야 했다. 그리고 까딱하면 ‘칠 준비를 하고 있는’ 전투경찰에 둘러싸여 항상 마음을 졸여야 했다.

하지만 광주 5·18기념행사에 참석해 시내 곳곳을 돌며 집회를 하고 거리를 행진하면서는 ‘고생한다’는 시민들의 격려와 박수를 심심찮게 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광주는 경찰조차 시위대에 우호적이었다고 기억하는 것은 나의 지나친 착각인 것일까?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며 눈물보다는 오히려 계속 미소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영화 속에 묘사되는 광주 시민들의 따뜻함이나 배우 류준열씨가 연기한 광주의 대학생 ‘재식’이가, 스무살 내가 광주에서 만났던 시민들과 대학생 친구들을 절로 떠올리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슨 정치의식이 투철한 것도 아니고 도대체 광주에서 왜 그런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군인이나 경찰이 국민을 때려선 안 되는 것 아닌가’, ‘누군가 길거리에 피 흘리고 쓰러져 있다면 일단은 무조건 구하는 것이 맞지 않은가’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던 광주 시민들의 용기를 30년 가까이 흐른 오늘날, 한 편의 영화로 다시 만나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영화 <택시운전사>였다.

그리고 배우 송강호씨가 연기한 주인공 택시운전사 ‘만섭’이 바로 광주를 알기 전과 알고 난 후의 삶이 결코 같을 수 없었던 나와 같은 사람들일 것이다.

광주의 참상을 기록한 독일 기자를 태우고 가까스로 도망친 만섭 역시 일상으로 돌아갔고 광주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렸던 스무 살의 나도 어느새 광주를 담담히 이야기하게 됐다. 하지만 일상에서 ‘그날의 광주를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만섭이들이 있기에 그래도 이 땅 민주주의가 뒷걸음질 치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영화 <택시운전사> 천 만 관객 돌파 기사를 접하며 문득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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