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뜨겁게 달군 외국인 고용허가제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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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뜨겁게 달군 외국인 고용허가제 논쟁
  • 윤호노 기자
  • 승인 2017.08.2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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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2명 자살 계기, 민주노총·인권단체·종교계 제도개선 촉구

충주에서 27살 네팔 청년이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계기로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도입 14년째가 된 제도임에도 여전히 그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려 충분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비정규직 없는 충북 만들기 운동본부’는 고용노동부 충주지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6일 충주시 대소원면의 한 공장에서 일하던 네팔인 이주노동자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유서에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 됐다고 썼다. 이주·인권·노동단체들은 ‘현대판 노예제’에 가까운 고용허가제가 꽃다운 네팔 청년의 생명을 앗아갔다며 들고 일어섰다. 이들 단체가 파악한 내용을 살펴보면 지난해 초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A씨는 최근 노동 스트레스로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네팔 이주노동자 모임인 ‘청주네팔쉼터’ 관계자는 “회사 측에 ‘다른 회사로 가고 싶다’, ‘네팔로 잠시 돌아가 치료를 받고 오고 싶다’고 했지만, 회사 측은 계속 ‘나중에’라고만 할 뿐 조치를 취하지 않아 많이 힘들어 했다”고 전했다.

A씨가 병원 치료를 받으며 회사에 이직을 요구했지만, 고용허가제 규정 때문에 별다른 조치를 받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같은 날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돼지농장에서 일하던 네팔인 B씨(25)도 숨진 채 발견됐다. B씨는 생전에 동료들에게 “농장에서 휴가도 주지 않고 사업장 변경도 해주지 않는다”고 토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주노조는 “사용자들은 이주노동자들이 비인간적인 대우와 낮은 임금, 인격 모독에 시달려도 사용자 허락 없이 사업장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노동 착취를 계속하고 있다”며 “힘들고 문제가 있어도 참고 일하라고 만든 고용허가제로 인해 희망을 품고 일하러 온 이주노동자가 죽임을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2017년 기준 이주노동자는 100만 명으로 한국경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며 “더 이상 이주노동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게 고용허가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성공한 이주관리 시스템”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 등 지역 노동단체들로 구성된 ‘비정규직 없는 충북 만들기 운동본부’도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이들 단체는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고용허가제라는 악법이 수많은 이주노동자를 고통 속으로 내몰고 있다”며 “고용허가제를 폐기하고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전에는 국제사회, 다문화 존중이라는 말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근 석 달 간 이주노동자 7명이 자살과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며 “이주민 200만 명, 이주노동자 100만 명 시대에 걸맞게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하고 착취와 죽음을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종교계도 나섰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이달 중순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허가제 폐지와 이주노동자 사망사건 해결을 촉구했다.
고용허가제는 도입 초기부터 찬반 논쟁이 뜨거웠다. 2004년 8월 처음 시행된 고용허가제는 정부가 국내에 취업을 희망하는 15개국 출신 외국인 근로자에게 취업비자(E-9)를 발급해 국내 근로자와 동등한 대우를 보장해 주는 제도로, 체류기간은 최대 3년이다.

여러 단체들 고용허가제 폐지요구
하지만 정부는 고용허가제가 성공적인 이주관리 시스템으로 정착했다고 평가한다. 산업연수생제의 불법체류 확산과 각종 송출 비리 등의 문제점이 고용허가제로 상당부분 해소됐다는 것이다. 실제 고용허가제 도입 전 80%에 육박했던 이주노동자의 불법체류율은 최근 10~20% 선까지 떨어져 성공적 평가의 근거가 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주·인권·노동 단체들이 고용허가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이들 단체들은 이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 제한 규정을 꼽는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3년간 회사를 최대 세 번 옮길 수 있다. 그러나 사업주의 승인이 있거나 임금체불과 같은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이 있는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가능하다.

사업주가 마음대로 직장을 옮길 수 없는 점을 악용해 이주노동자에게 차별과 강제노동, 임금체불, 퇴직금 미지급 등의 노동 착취 행위를 자행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게 이주·인권·노동 단체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2012년 8월 유엔 인종차별 철폐위원회는 이런 이유로 한국 정부에 고용허가제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제도 유지를 고수하고 있고, 이주·인권·노동 단체들은 반대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이들 단체는 전국 곳곳에서 집단행동을 예고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은 청와대 앞에서 고용허가제 폐기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며, 충청권 이주·인권 단체들은 정부세종청사 내 고용노동부 앞에서 집회를 열 계획이다.

또 비정규직 없는 충북 만들기 운동본부는 A씨가 숨진 사업장을 관할하는 고용노동부 충주지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기로 했다. 때문에 도입 초기부터 찬반논쟁이 뜨거웠던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을 계기로 개선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외국인 고용허가제란?

정부가 외국인 근로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2004년 기존 외국인 산업연수생 제도와 병행 시행되다가 2007년 고용허가제로 통합됐다. 골자는 외국인 근로자가 취업기간 동안 한국인과 동일하게 노동 관련 법령의 보호는 받는 것이다.
또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등 4대 보험의 적용을 받는다. 취업기간은 2009년 개정된 원칙에 따라 3년간 일한 후 고용주가 요청할 경우 1년 10개월을 연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제도는 고용주의 허가가 있어야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고, 최대 5년 미만으로 고용이 한정돼 인력난에 시달리는 국내 사업장이 숙련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다는 점, 체류기간이 만료된 외국인이 불법체류자가 되기 쉽다는 점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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