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홀쭉하게? 낮고 통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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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홀쭉하게? 낮고 통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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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9.01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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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직언직썰/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높고 홀쭉한 게 좋을까? 낮고 통통한 게 좋을까? 사람에 관한 질문이라면 키 작고 뚱뚱한 것보다 키 크고 날씬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건물이라면 어떨까? 내가 살 집이나 일할 사무실을 짓는다면 키 크고 홀쭉하게 짓고 싶은가? 키 작고 통통하게 짓고 싶은가? 마을이나 도시라면 어떨까? 우리 마을과 우리 도시에 어떤 건물들이 많으면 좋을까?

도시의 윤곽선을 ‘스카이라인’이라고 한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선이란 뜻이다. 산이 있는 곳은 봉긋 솟고, 강이나 바다 쪽은 푹 꺼지거나 평평해진다. 언덕이 올망졸망 솟은 곳, 너른 평지가 있는 곳, 계곡이 이어지는 곳마다 스카이라인도 달라진다. 이처럼 자연 그대로일 때는 산과 언덕과 땅이 이루는 자연지형이 스카이라인을 만들지만, 건물과 인공구조물들이 빽빽하게 채워지는 도시는 사람들이 세운 건물과 구조물들이 스카이라인을 새롭게 그리게 된다.

옛날 우리 도시 스카이라인은 자연지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건물들이 가득 있어도 대부분 1층 건물들이었을 테니 말이다. 고층 건물이 등장하면서 도시 스카이라인은 크게 바뀌었다. 철골구조와 엘리베이터가 등장하면서 건물 높이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1931년 미국 뉴욕 맨해튼에 102층(381미터)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지어지면서 100층 건물의 꿈을 달성했고, 초고층 경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기술과 재료의 한계로 높이 지을 수 없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높게 지을 수 있다. 초고층이 가능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문제는 고층과 초고층 건물들이 과연 좋은가에 있다. 우리 마을과 도시를 고층 건물들로 바꿔갈 것인지 예전처럼 나지막한 저층, 중층 건물들로 채울 것인지를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이미 변화의 물살은 시작되었고 점점 거세지고 있다. 단독주택 동네들이 재개발되면서 아파트 단지로 바뀌고 있다. 아파트의 높이도 엄청 높아졌다. 걸어 올라갈만한 5층 아파트가 대부분이었고, 고층아파트라고해도 12층 아니면 15층이던 게 지금은 보통 30층이다. 심지어 40층, 50층을 넘는 초고층 주상복합건물들도 전국 어느 도시에나 불쑥불쑥 솟고 있다.

좁은 땅덩어리에 많은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고층화가 불가피하다는 얘길 하고 또 그렇게들 믿는다. 이 말은 사실이 아니다. 같은 부피의 건물을 고층으로 지을 수도 있고, 중층이나 저층으로 지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택 가능하단 얘기다. 단위면적당 건물의 부피를 뜻하는 용적률은 높이와 건폐율 두 변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다. 높이와 건폐율의 다양한 조합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건물은 물론이고 우리가 꿈꾸는 마을과 도시를 선택할 수 있다.

용적률이나 건폐율 같은 어려운 전문용어로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문방구에 가서 모눈종이와 고무지우개 10개를 사와 탁자 위에 놓고 디자이너가 되어 10분만 해보면 된다. 먼저 모눈종이 위에 고무지우개 10개를 납작하게 빈틈없이 늘어놓고, 지우개들의 바깥을 잇는 선을 모눈종이에 그려보라. 모눈종이 위에 그어진 선이 ‘대지경계선’이다. 지우개들이 빈틈없이 대지 위를 덮었다는 것은 ‘건폐율(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면적의 비율)’이 100퍼센트란 얘기다.

이제 대지경계선 안에 다른 방식으로 지우개를 늘어놓아보라. 나지막하게 늘어놓아도 보고 지우개를 세워 배치해보라. 높이가 올라가면 건폐율은 줄어들고, 건폐율이 커지면 높이가 낮아진다. 지우개를 옆으로 붙이거나 위아래로 이어 배치해도 된다. 건물의 크기나 모양도 달라지고 대지에 지어질 건물의 숫자도 달라진다. 초고층을 좋아하는 사람은 지우개 열 개를 줄줄이 이어 단 하나의 건물로 세울지 모른다.

중요한 건 어떤 배치든 부피는 같다는 것이다. 고층이라고 부피가 커지고 저층이라고 작아지는 게 아니다. 같은 부피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배치해보면서 생각해보면 좋겠다. 어떤 배치가, 어떤 모습의 마을이, 어떤 풍경의 도시가 좋을지를. 어느 게 보기 좋은 도시이고, 어느 게 걷기 좋은 도시일까? 팔기 좋은 도시를 만든다면? 아니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든다면? 높고 홀쭉한 게 좋을까? 낮고 통통한게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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