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문화전시관이냐, 시립미술관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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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화전시관이냐, 시립미술관이냐
  • 윤호노 기자
  • 승인 2017.09.0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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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 옛 조선식산은행 건물 미술관으로 활용키로 하자 시끌시끌

충주시가 ‘충주 1호 등록문화재’인 옛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등록문화재 683호·충주시 관아4길 14)을 시립미술관으로 활용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시에 따르면 옛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 건물의 등록문화재 지정에 따라 이를 활용하기 위한 ‘충주시립미술관 건립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 결과 근대문화전시관보다 미술관이 더 타당한 것으로 나왔다.

충주시가 ‘충주 1호 등록문화재’인 옛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을 시립미술관으로 활용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시는 이번 연구용역 결과에 따라 설계용역 후 내년 4월경 국비를 신청해 건물을 원형 복원한 뒤 미술관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시는 식산은행 건물과 인접한 뒷편 일부 상가 건물을 매입해 현대식 전시관도 건립하기로 했다.

또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카페, 모임공간, 주차장 등을 갖춘 미술관 내에 일제 수탈의 역사를 알리는 전시실도 마련할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근대문화전시관이 일회성 전시로 재방문하기 쉽지 않은 반면에 미술관은 기획전시 등 다양한 작품을 교체 전시해 많은 사람이 찾을 수 있어 건물 활용도가 더 높다는 연구용역 결과에 따라 미술관 건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말했다.

이어 “일제의 대표적인 식민수탈기관 건물이어서 일제의 수탈을 기억하고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전시 공간도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초 이 공간을 근대문화전시관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콘텐츠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미술관 내 일부 전시 공간으로는 등록문화재 지정의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없다는 의견이다. 미술관 활용은 식민수탈의 반면교사로 삼기에는 부족하다는 것.

미술관 활용 반대여론 높아

독립운동가 류자명(1894~1985) 선생의 손자 류인국 씨는 “조선식산은행을 역사박물관이나 근대문화전시관으로 하여 일제의 조선 침략사와 충주의 비극을 그려낼 줄 알았다”면서 “미술관으로 사용하면서 일제의 식산은행 자리였다는 표시 하나로 그들의 잔혹상을 알릴 수 없고, 오히려 그들의 건물 양식을 홍보해 주는 역할 밖에 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시는 복원을 거쳐 근대문화전시관으로 활용할 목적으로 지난해 11월 조선식산은행 건물을 매입했지만 원형의 2/3 이상 훼손된 것으로 확인되자 사업을 보류했다. 이 건물은 애초 목재로 지어졌지만 석회와 타일, 시멘트 등을 활용한 보수공사로 원형이 크게 훼손되고 구조상 안전문제도 드러났다.

5억 원으로 추정됐던 복원 예산도 전문기관 분석결과 최소 20억 원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에 복원 반대론자는 “원형이 심하게 훼손됐을 뿐 아니라 일제가 충주읍성 파괴 차원에서 지은 건물이어서 복원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고, 찬성 쪽은 “건축물 가치와 역사적 측면을 고려할 때 복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서자 시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문화재청에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지정 신청을 했다. 문화재청은 “목(木) 구조를 기본 구조체로 하고 외관에서 서양식 석조건물의 분위기를 추구했던 일제강점기의 관공서와 은행의 특징적 건축기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며 등록예고 사유를 들었다. 그리고 지난 5월 29일 충주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등록문화재 지정을 받았다.

때문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 시가 추진하는 근대문화역사관으로 보존·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됐다. 더욱이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분과 회의에서 참석자 대부분은 “충주시가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식민수탈기관인 조선식산은행 건물을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지속할 수 있는 근대문화역사관으로 보존·활용하고자 하는 계획은 등록문화재의 기본 방향과 요건에 부합하는 것”이란 의견을 냈다. 하지만 시는 근대문화전시관이 아닌 시립미술관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시립미술관 건립에는 예산 40억 원이 들어가고 국비 70%가 지원된다.

조선식산은행 등 일제의 식민수탈기관 건물은 전국 여러 곳에 남아있고, 상당수가 등록문화재 또는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일부 건물은 금융기관 등 상업시설로 쓰이고 있지만 일제의 식민수탈을 후세에 전하고자 근대문화역사관 등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일제수탈 교훈 부족

‘옛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대구시 유형문화재 49호)’은 ‘대구근대역사관’으로, ‘동양척식회사 목포지점(전남도기념물 174호)’은 ‘목포근대역사관’으로, ‘옛 한일은행 강경지점(등록문화재 324호)’은 근대역사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강경역사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전북 군산의 ‘옛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등록문화재 372호)’과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등록문화재 374호)’은 각각 ‘군산근대미술관’과 ‘군산근대건축관’으로 활용된다. 이들 건물은 미술관과 건축관이지만 ‘근대’라는 용어를 붙여 일제강점기의 시대상을 담았다. 옛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은 1933년 12월 14일 본관 208㎡, 부속건물 104㎡ 규모로 신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건물은 광복 후 한일은행 건물로 쓰이다가 1980년대 초 민간에 매각돼 2015년까지 가구점 등으로 사용됐다.

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조선식산은행은 일제강점기 특수은행으로 일제가 식민지 경제 지배에서 동양척식주식회사와 함께 중요한 축으로 삼은 핵심기관”이라며 “일제의 수탈을 기억하고 반면교사로 삼으라고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특히 찬반양론이 팽팽한 속에 보존과 등록문화재 결정이 났는데 단순히 미술관으로 쓰이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므로 그들의 만행을 알리고 잊지 않는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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