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달재에서 울고 있는 반야월 친일 단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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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재에서 울고 있는 반야월 친일 단죄판
  • 윤상훈 기자
  • 승인 2017.10.1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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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유족회 등 철거 요구에 공과 병기한 새 비석 대안 부상

국민 대중가요인 ‘울고 넘는 박달재’의 노랫말을 지은 작사가 고 반야월(본명 박창오·1917~2012)의 일제강점기 협력행위를 단죄하기 위해 세운 안내판 철거를 놓고 때아닌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제천시 등에 따르면 지역의 한 봉사단체는 지난 1988년 11월 봉양읍과 백운면 경계 박달재 정상에 ‘박달재 노래비’를 건립했다. ‘박달재 노래비’는 ‘울고 넘는 박달재’의 노랫말이 새겨 있다. 그 옆에는 ‘단죄판(단죄문)’이 함께 놓여 있다. ‘가수 반야월의 일제 하 협력행위’라는 제목의 단죄판은 지난해 3월 제천의병유족회와 민족문제연구소 충북지부 제천단양지회(이하 설치자)가 건립했다.

최근 이 단죄판과 관련해 ‘울고 넘는 박달재’의 저작권 위탁대리인이 철거를 요구하면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저작권 위탁대리인 김모 씨는 지난 6월 시에 공문을 보내 단죄판 철거를 요구했다. 김씨는 “‘가수 반야월의 일제 하 협력행위’ 안내판 설치는 시의 지역브랜드 가치 훼손이자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 행위”라며 “무단으로 설치된 안내판을 법에 따라 즉시 철거해 달라”고 촉구했다.

김 씨는 국민권익위원회에도 단죄판 철거 민원을 제기했다. 권익위는 ‘지방자치단체장의 공유지 관리에 관한 사항’이라며 시에 이 민원을 이송했다. 시는 ‘설치자가 계속 불이행할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할 계획’임을 권익위에 전달했다.

시는 지난해 3월 설치자의 단죄판 건립 요청에 ‘관광 목적 외 시설물은 설치할 수 없음’을 회신했다. 하지만 설치자는 시의 의견을 무시하고 단죄판을 세우며 논란의 불씨를 키웠다. 시는 이후 민원 제기에 따라 지난 6월 설치자에게 단죄판 철거를 요청한 데 이어 지난 18일 공문을 통해 이를 재촉구했다.

시는 자진 철거하지 않으면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 ‘행정대집행’에 따른 철거와 원상복구 후 비용을 징수할 수 있음을 설치자에게 전달했다. 이에 설치자 관계자는 “친일행적이 명백한 인물의 노래비가 있다는 것에 분개해 단죄문을 세운 것”이라며 “의병도시를 내세우는 제천시의 철거 요청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춘천(이범익)·천안(홍난파)·진안(윤치호)·전주(이두황) 등지에 친일인사 단죄판이 세워져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제천시가 친일행적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국민 정서’와 무단 설치라는 ‘법 적용’ 사이에서 단죄판 강제 철거에 나설지 주목된다. 이 단죄판에는 “(반야월이) 단수의 군국가요에 이름을 남겼는데 1942년 군국가요 ‘결전 태평양’ ‘일억 총진군’ 등의 작사를 맡았으며, 1942년 ‘일억 총진군’ ‘조국의 아들-지원병의 노래’와 1943년 ‘고원의 십오야’를 노래했다”고 반야월 작사가의 친일행적을 적었다. 또 “(반야월이)2009년 11월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됐으며, 2010년 6월 국회 간담회 자리에서 일제강점기의 친일 행적에 대해 사과했다”고 친일 행적 사죄 사실도 덧붙였다.

이에 지역 문화계에서는 ‘울고 넘는 박달재’ 등 반야월이 남긴 뛰어난 문화적 족적을 폄훼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명백한 친일 과오마저 눈감고 넘어갈 수는 없는 만큼 차제에 그의 공과를 병기하는 새로운 노래비 건립 등을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한 향토 문인은 “기존의 노래비를 그대로 둔 채 단죄판만 철거할 경우 자칫 제천시가 친일 행위까지 비호한다는 공연한 오해를 살 수 있는 만큼 기존 노래비와 단죄판을 동시에 철거한다는 전제 하에 반야월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후손에 전할 수 있는 새로운 노래비 건립을 검토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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