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충주식산은행 철거 목소리 더 세다
상태바
옛 충주식산은행 철거 목소리 더 세다
  • 윤호노 기자
  • 승인 2017.10.20 1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복원반대 시민행동 “낡은 일제 건물 철거, 충주읍성 복원”

‘충주1호 등록문화재’인 충주시 성내동 옛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이하 충주식산은행)을 철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 건물 복원반대 시민행동’은 16일 충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충주식산은행 건물 복원을 결사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충주시는 시민들이 흔히 ‘가구점 골목’이라고 부르는 성내동 243 일원 땅에 세워진 건물 약 140평을 7억 원에 매입한 것도 모자라 식산은행 복원에 22억 원, 미술관 증축 건립 등에 28억 원이 소요되는 사업계획을 발표했다”며 “이는 충주의 역사에 반하고 지역의 정체성에 반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강조했다.

충주시 성내동 옛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을 철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일제강점기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 건물 복원반대 시민행동’ 기자회견 모습.

이어 “식산은행이 있는 성내동은 조선시대 충주읍성 내의 관아건물이 있던 곳으로 일제가 충주읍성과 성내의 전통 관아건물들을 철거하고 일본식 건축물들을 세웠다”며 “식산은행 건물은 이런 건물 중에서도 일제의 침략과 수탈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물 이다”고 주장했다.
또 “충주식산은행은 이주일본인에게 사업자금을 공급하는 자금줄로 기능했다”며 “이를 바탕으로 이주 일본인들이 충주시내 토지의 약 80%를 소유했고, 식민지 충주의 지배자로, 유력자로, 실력자로 성장해 조선인 위에 군림했다”고 했다.

이 단체는 “충주읍성 내 건물을 복원한다면 본래 있었던 조선시대 관아 건물을 복원해야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파괴한 침략자의 건물을 복원하는 것은 일제가 왜곡한 역사를 우리가 다시 왜곡하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 단체는 건물 보존을 전제로 하는 시립미술관은 물론 근대박물관 건립도 반대했다. 시민행동은 “아픈 역사도 우리 역사인 것은 맞지만 우리가 기억의 장소로서 보존·복원해야 할 것은 서대문형무소 등과 같이 식민지배의 가해자인 일제의 잔혹성·야만성 등 참상을 알리고 피해자인 한국인의 고통과 아픔을 영원히 기억할 장소”라고 밝혔다.

시민행동은 “처음 철거와 보존을 얘기했는데 어느 순간 복원을 얘기하고 있고 이제는 더 나아가 근대박물관, 미술관 활용 논의가 무르익고 있다”며 “충주시가 등록문화재 취지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충주시가 계획을 철회하지 않으면 전국체전 기간 복원반대 유인물을 배포하는 등 반대운동을 전개할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충주시는 흉물이 된 식산은행 건물을 철거하고 충주읍성을 중심으로 한 역사도시의 복원과 전승에 노력해 역사체험·교육·문화활동 공간으로 재생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현직 시장 공방…SNS도 가열

이에 대해 충주시는 방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만큼 방치(보존)만 할 순 없다”면서 “검토와 협의를 거치겠다”고 답변했다. 이 문제는 지역 정치권 공방으로까지 번졌다.
한창희 전 충주시장은 최근 페이스북에 ‘식산은행 건물 헐고 소녀상 건립해야’란 제목의 글을 통해 “충청도를 수탈하기 위해 충청감영 옆에 세운 식산은행 충주지점 건물을 문화재로 등록하고 22억 2000만 원을 들여 복원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낡아빠진 건물을 헐어버리고 충청감영이 복원되기 전까지는 소공원을 만들고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는 게 마땅하다”고 철거에 불을 지폈다.

조길형 현 시장은 “저도 철거를 추진했지만 시민 여론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심의 절차를 밟아서 복원으로 작년에 결론을 내린 것”이라며 “모든 과정이 공개적으로 진행됐고 단계마다 언론에 보도됐다. 이것이 민주주의 절차”라고 강조했다.
SNS에서도 찬반 논란이 뜨겁다. 김모씨는 “아픈 역사도 역사”라며 “서울, 대전, 군산, 부산, 인천에서만 볼 수 있는 일제 강점기 은행 건물이 충주에 있다는 게 소중한 자산”이라고 보존에 찬성했다.

민모씨도 “우리 선조들이 일제에 얼마나 많은 수탈과 핍박에 시달렸는지를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다”며 건물 활용 의견을 냈다.
반면 최모씨는 “수탈기관을 문화재로 지정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일본에서 지원을 해준다고 해도 막아야 할 판”이라고 철거를 주장했다. 류모씨도 “일본사람들이 보면 대한민국 충주에 우리의 위대했던 선조들의 발자취가 한국 사람들에 의해 보존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라며 건물 보존을 꼬집었다.

시립미술관 활용, 충주시 결정 ‘주목’

충주식산은행 건물은 1933년 12월 14일 본관 63평(약 208㎡), 부속건물 34평 규모로 신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건물은 광복 후 한일은행 건물로 쓰이다가 1980년대 초 민간에 매각돼 2015년까지 가구점 등으로 사용됐다.
조선식산은행 등 일제의 식민수탈기관 건물은 전국 여러 곳에 남아 있고, 상당수가 등록문화재 또는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일부 건물은 금융기관 등 상업시설로 쓰이고 있지만 대부분 일제의 식민수탈을 후세에 전하고자 근대문화역사관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충주 옛 조선식산은행.

‘구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대구시 유형문화재 49호)은 ‘대구근대역사관’으로, ‘동양척식회사 목포지점’(전남도기념물 174호)은 ‘목포근대역사관’,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등록문화재 324호)은 근대역사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강경역사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전북 군산의 ‘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등록문화재 372호)과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등록문화재 374호)은 각각 ‘군산근대미술관’과 ‘군산근대건축관’으로 활용된다. 이들 건물은 미술관과 건축관이지만 ‘근대’라는 용어를 붙여 일제강점기의 시대상을 담았다.

충주식산은행 건물을 등록문화재로 지정 전 철거와 보존을 놓고 지역 여론이 팽팽히 맞선 끝에 충주시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문화재청의 판단에 맡겼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식민수탈기관인 조선식산은행 건물을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지속할 수 있는 근대문화역사관으로 보존·활용하고자 하는 계획은 등록문화재 기본방향과 요건에 부합한다”는 의견을 내 등록문화재 지정과 함께 활용의견을 냈다.

이 건물은 지난 5월 29일 등록문화재 683호로 지정됐다. 이때만 해도 큰 논란은 벌어지지 않았다. 보존 뒤 건물이 낡으면 철거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충주시립미술관 건립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 추진 결과 근대문화전시관보다 미술관이 더 타당한 것으로 나오면서 충주시는 시립미술관 활용으로 가닥을 잡았다.

미술관 활용이 반대여론과 함께 철거와 보존의 근원적인 논쟁을 재점화시킨 것. 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는 충주식산은행 활용에 대해 충주시가 최종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