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녀는 서로 알 수 있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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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녀는 서로 알 수 있는 날이 올까
  • 충청리뷰
  • 승인 2017.10.26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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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파코 로카의 <내 아버지의 집>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백창화 괴산숲속작은책방 대표

내 아버지의 집 파코 로카 지음 강미란 옮김 우리나비 펴냄

서점에서 책을 파는 사람으로서 가장 많이 하는 일 중 하나가 사람들에게 책을 추천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책이란 얼마나 취향이 확실한 상품인지, 잠깐 만난 이의 짧은 이야기만 듣고 그가 좋아할만한 책을 골라주는 일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여러 권의 책을 들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가운데 마음에 닿아오는 책이 있을 수도 있고, 혹은 내 딴에는 열심히 권했지만 전혀 손님의 마음을 건드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 날은 참 이상한 날이었다. 슬픈 이야기는 싫으니 밝은 기운이 가득한, 힘이 나는 책을 골라달라는 손님에게 대뜸 <내 아버지의 집>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가장 최근에 읽고 강렬하게 남은 책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말문이 터졌는지도 모르겠다. 결코 밝은 책은 아니지만 애잔하고 서글프면서도 삶의 따스함을 건드리는 책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일 년 후, 삼남매가 아버지 사시던 시골집을 정리하기 위해 모여요. 이 집과 아버지에 대해 좋은 기억은 없고 만날 싫은 일만 시키던 아버지와...”

딱 이만큼만 이야기했는데 갑자기 손님이 왈칵 울음을 터뜨린다. 얼굴을 돌리고 눈물을 펑펑 쏟는 손님에게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고, 그 분 역시 뭐라 설명은 없었지만 내게서 책을 건네받아 소중하게 품에 안아 들었다.

힘이 솟아나는 밝은 기운 가득한 책이 아니라 오히려 지난 시절의 회한을 돌아보게 되는 이 책을 읽으며 그분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그렇게 펑펑 울고 난 뒤에 다시 한 번 나와, 나의 지난 시절과, 오해로 가득했던 내 부모님의 삶을 비로소 하나로 엮어 새 삶의 시간을 준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아버지의 집>은 스페인 화가가 쓰고 그린 그래픽 노블이다. 읽으면서 새삼 놀랐던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란 어찌 이리 판박이처럼 닮아있나 하는 것이다. 어려운 시절을 살았던 아버지가 평생 모은 돈으로 마련한 한 조각의 땅은 곧 가족들에게 악몽으로 다가온다.

부모와 자식, 그 운명적인 관계

아버지에겐 기쁨일지 모르는 집짓기와 텃밭 가꾸기는 모처럼 주말을 맞아 아버지를 찾은 자식들에게는 피하고 싶은 노동일 뿐이다. 한 뼘 땅에서 자라나는 온갖 작물들은 자식들의 건강한 식탁을 꾸며줄 부모의 기쁨이지만 때로 자식들의 냉장고에서 고스란히 음식물 쓰레기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자식들에게 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이란, 꿈과 낭만이 가득한 스위트홈이 아니라 모처럼 쉬고 싶은 주말을 반납한 댓가로 삽질과 익숙지 않은 농사장비들과 씨름해야 하는 악몽의 공간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성장하여 가족을 꾸린 자식들은 점점 아버지 집을 찾지 않게 되고, 그래도 생의 마지막은 자식에 의지하여 병원 신세를 질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삶은 자식들에게 피하고 싶은 비극으로 다가온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가슴이 먹먹하다. 마치 막장 드라마처럼 주변에 너무나 흔한 우리들의 이야기이지만 책을 통해 지구 반대편 작가의 눈을 통해 새삼 확인하는 일은 고통스럽다. 생의 마지막에 수술도 잘 되었고 삶의 의지도 불태웠던 아버지가 어느 순간 왜 삶을 놓아버리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가슴의 통증을 피할 길이 없다.

책을 통해 내 아버지를 보면서, 동시에 내 아들의 모습을 자꾸 떠올리게 되는 걸 보니 이제 내가 자식보다는 부모의 입장에 방점을 찍을 나이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언젠가 우리 부부가 기쁨으로 가꾸었던 이 터전이 나의 아들에게 고통의 공간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우습게도 이런 생각마저 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이란 어찌보면 평행이론처럼 우주의 한 부분을 나란히 살아가고 있어서 결코 그 마음의 접점이 만나질 수 없는 운명적인 관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부모란, 자식이란, 우리 삶에 영원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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