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육강식의 세계, 사자가 가젤보다 강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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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육강식의 세계, 사자가 가젤보다 강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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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2.0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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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보는 새로운 시선, 최삼규의 <다시 쓰는 동물의 왕국>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류정환 시인, 충북작가회의

다시 쓰는 동물의 왕국 최삼규 지음 이상 펴냄

2004년부터 KBS1 TV를 통해 방영되는 <동물의 왕국>은 꽤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외국의 다큐멘터리 전문 제작사가 만든 작품을 우리말로 더빙하여 소개하는 것인데, 미지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은 대단히 흥미로운 것이어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탄자니아 세렝게티 초원같이 세계의 유명한 국립공원을 듣게 된 것도 그렇고, 사자, 치타, 코끼리 같은 동물의 생태를 알게 된 것도 그 방송 덕분이다. 특히 사자 무리나 치타가 가젤이나 얼룩말을 사냥하는 장면은 아주 강렬해서 ‘야생’의 세계를 뼈저리게 실감하기에 충분했고 ‘동물의 왕국’이란 곧 ‘사자의 왕국’이라는 왜곡된 고정관념을 심어 주기도 했다. ‘약육강식’이란 말을 뇌리에 각인하고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의 권력구조에 적용하며 사람들은 강자의 ‘법칙과 질서’에 순종하는 초식동물이 되어 간 듯하다. 물론 강력한 힘을 가진 육식동물이 되기를 소원하며…….

정말 사자는 가젤보다 강한 걸까? 사자가 가젤을 잡아먹는 건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질서이며 법칙일까? <다시 쓰는 동물의 세계>는 그런 건 아닐 거라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저자 최삼규는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저자는, MBC ‘PD수첩’ PD로 방송에 입문했지만 ‘전쟁 같은’ 일상 속에서 건강을 잃고, 제작진에서 하차하는 조건으로 자연 다큐멘터리를 찍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첫 작품 <곤충의 사랑>을 시작으로 30년 동안 50여 편의 프로그램을 제작했으니 그야말로 한국형 자연 다큐멘터리의 역사가 된 셈이다.

BBC나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제작사가 독점해오던 자연 다큐멘터리 시장에 뛰어들어 새로운 주제와 따뜻한 감수성으로 전 세계 시청자들의 호평과 찬사를 받았다. <다시 쓰는 동물의 세계>는 그 주요 작품들의 ‘고단하고 행복했던’ 제작 과정을 담은 또 하나의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는데, 저자가 자연을 누비며 깨달은 자연의 섭리와 경외감으로 가득 차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작은 곤충이나 새를 찾아 전국 산야를 헤매는 일을 고행이 아니면 뭐라 할 것이며, 그렇게 찾아낸 것들이 의미 있는 행동을 할 때까지 밤낮없이 지켜보는 일을 고행이 아니면 뭐라 할 것인가. 고행의 길에서 만나는 환한 꽃 한 송이, 그것을 깨달음이라 하지 않는가.

어떤 동물도 독점과 독식 하지 않아

책의 표지 사진은 저자가 확인한 자연의 질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낮잠에 빠진 사자들 근처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는 누 떼들. 배부른 사자는 사냥하지 않으며 자신들을 괴롭힐 마음도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초식 동물들. ‘딱 자기가 생존할 정도의 먹이만을 구하는 것.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자연은 딱 그 정도만의 살생, 육식 동물이 생존할 정도의 살생만을 허용하는 셈이다. 반면, 그 수많은 초식 동물은 딱 1마리만 육식동물에게 먹이로 희생됨으로써 무리 전체의 평온이 유지되는 것이다.

30%의 확률로 어렵사리 성공하는 사냥, 어쩌면 그것은 자연이 정해준 야생의 황금률일지도 모른다.’(123쪽) ‘생물학자들은 야생 생태를 약육강식, 적자생존, 자연도태라는 세 단어로 살벌하게 표현하는데, 내가 세렝게티 초원에서 깨닫게 된 것은 이곳은 초식 동물과 육식 동물이 각자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강점을 잘 살리면서 서로 균형 있게 생존해 나가는 ‘조화와 공존’의 세계라는 사실이다. 그런 자연에는 갑질 하는 강자도 없고, 그래서 당하는 약자도 없다. 오로지 섭리에 따르는 자연의 조화만 있을 뿐이다.(9쪽, ‘작가의 말’ 부분)

저자가 읽은 자연은 강하고 약한 것이 없는 세계이다. 사자가 가젤을 먹는 건 약육강식의 법칙이 아니라 공존의 방식일 뿐이다. 사자는 왕이 아니라 그냥 사자이며, 자연은 ‘라이언 킹’이 다스리는 왕국이 아니다.(더구나 사자 무리는 ‘라이언 퀸’이 이끌어간단다!) 붉은머리오목눈이 둥지에 알을 낳아 번식하는 뻐꾸기의 탁란(托卵)을 보면 세상에 그런 몰염치가 없는 듯한데, 그조차도 번식이 왕성한 종의 개체수를 조절하는 자연의 섭리임을 전해준다.

저자의 시선은 천지불인(天地不仁), 자연은 인자하지 않아서 모든 것을 풀강아지처럼 다룬다(以萬物爲芻狗, <도덕경> 5장)는 노자의 사상과 맥을 같이한다. 인자하지 않다는 게 잔인하다는 뜻이 아닐 터, 자연은 그저 내버려두면 만물이 조화를 이루어 공존하는 세계이니 인간의 감정과 잣대로 재단하지 말라는 뜻이겠다. 어떤 동물도 독점과 독식이 불가능한 균형의 세계, 그것이 저자가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확인한 야생의 법칙인 것이다.

저자는 묻는다. 약육강식은 오히려 인간의 질서가 아니냐고. 강자는 자본과 권력을 틀어쥐고 경쟁하듯 갑질 하느라 하루해가 모자라고, 약자는 모멸감 속에서 구차한 목숨을 이어가느라 여념이 없는 우리 사회의 풍경은 어떠하냐고 묻는 것인데, 저자의 물음에 대꾸하기가 마땅찮다. 인정하자니 서글프고 부정하자니 염치가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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