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봉을 품은 이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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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봉을 품은 이시종
  • 충청리뷰
  • 승인 2017.12.2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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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쉽게 생각해도 이시종 지사의 송재봉 발탁은 절대로 선거용이 아니다. 이 지사 본인도 이 점을 분명히 했다. 실제로 이 지사는 송재봉의 소통특보 내정 이후 많은 손해를 보고 있다. 진보성향 유권자들까지 이번 인사에 대해 거침없는 불편함을 토로한다.

내용은 대체로 반 반이다. 지역의 대표 시민운동가의 갑작스런 변신에 대한 원초적인 반감과, 그것의 시대적 추세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절차적 명분이 결여됐다는 비판이 교차한다. 송 특보의 내정으로 내년 선거의 표를 얻기보다는 오히려 잃고 있는 분위기가 역력한 것이다. 선거의 달인 이 지사가 이를 모를 리 없다.

언론계에도 한가지 불문율이 있다. 다른 언론사의 직원을 빼오려고 작정할 경우 우선 당사자에게 사표를 내게 한 후 일정기간이 지나서야 채용한다는 것이다. 시쳇말로 짜고치는 고스톱일지언정 상대 사와 또 데려오려는 사람의 연착륙을 배려한 조치다.

도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시민운동가의 영입을 마지막까지 고민했을 이 지사로선 당연히 시민운동의 태생적 역학관계를 고민했어야 했다. 25년간 시민운동을 이끌어온 송재봉의 뒤에는 그를 말없이 지지하고 후원한 무수한 시민과 도민들이 있다. 이를 간과한 갑작스런 결정은 도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살다 보면 형식이 내용까지도 규제하는 경우가 있다.

이 지사의 해명도 옹색하다. 본인의 말처럼 송재봉의 발탁을 민관 협치나 소통강화의 차원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같다. 오히려 그동안의 밀월관계에 따른 보은(報恩) 성격으로 보는 시각이 사석에서 더 넘쳐난다. 진정으로 협치와 소통을 원했다면 굳이 자신의 임기가 끝나는 시점에 인사를 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왜 이 지사는 송재봉 카드를 건드렸을까.

현재를 기준할 때 이미 당선 안정권의 이 지사이지만 그에겐 어쩔 수 없는 핸디캡이 있다. 알려진 대로 고령의 나이와 3선 도전에 따른 도민 피로감 그리고 조만간 불거질 그동안 업적에 대한 냉정한 평가다. 이웃 안희정 충남지사가 후진에게 기회를 열어주겠다며 3선 도전을 포기한 것도 당장의 고민거리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한가지밖에 없다. 이같은 요인들로 인해 자신에게 가해질 부정적 변수를 미리 차단하기 위한 ‘내적인 외연 확장’이다. 다소 모순되는 워딩이지만 지금 이 지사에게 가장 신경쓰이는 것은 내부 동력의 이완, 쉽게 말해 자신에 대한 고정 지지세력의 어깃장과 이탈이다.

이를 막지 못하면 막상 선거에 가기도 전인 경선과 공천 과정에서 여론은 일거에 요동칠 수 있다. 이장섭 정무부지사에 이은 송재봉 특보의 내정은 이같은 맥락으로 보면 이해가 쉽다. 결국 이 지사는 자신의 3선을 전제로 치밀하게 주변 정리를 하고 있고 이는 그동안 7전 전승으로 붙여진 이 지사의 선거 브랜드, 즉 드러나는 표보다는 숨은 표를 관리해 끝내 승리를 거머쥐는 ‘실사구시’ 전략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렇게 보면 송재봉 특보내정이 선거용이라는 반대측의 반발은 일견 일리가 있다.

차제에 시민운동가의 현실참여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대다수 국민들은 시민운동가의 행정 내지 정치인 변신에 대해 배타적이다. 비정부(NGO)와 비영리(NPO) 기구라는 시민단체의 본령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어떤 논리를 들이대더라도 시민운동의 가장 순수함은 NGO와 NPO로 담보되는 도덕성과 개혁성, 그리고 비(非)정파적 중립성에 있다.

문제는 시민운동의 궁극적인 목표인 사회변화와 혁신을 위해 과연 어떻게 행동과 실천으로 성과를 내느냐는 것이다. 이는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라는 시민운동의 본질적 아젠다와도 직결된다. 이 때문에 거의 20여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끊임없이 공론화된 것이 다름아닌 시민운동의 현실정치 참여문제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이젠 시민운동의 기계적 중립론은 수명을 다했다. 이유는 이렇다. 우선, 과거 시민운동의 토양적 배경(?)이 된 독재나 권위주의 권력에 대한 저항과 투쟁의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오히려 주체로서의 현실 참여와 관여가 시민운동의 모티브가 되어야 한다. 광화문의 촛불은 이를 가장 극적이고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꼭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시민운동의 현실정치 참여는 민주주의 원칙과 또 이를 위한 당장의 효용 측면에서도 당위성을 인정받는다. 국민 참정권은 시민운동가라고 해서 차별받을 수 없다. 또한 정치와 행정은 더 이상 정당과 공무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러기엔 우리 사회가 너무도 다기능, 다양화 됐다.

시민운동의 정치세력화는 사회변혁 과정의 효율성을 보더라도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됐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직접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이치와 똑같다. 환경운동세력의 연합체인 유럽의 녹색당이나 아예 시민운동 차원에서 정치자금을 모아 기성정치를 압박하는 미국의 정치활동위원회(PAC)는 좋은 예가 된다.

동지들이 떠 안을 심적 부화

소통특보 송재봉의 역할에 대해선 더 이상 이의를 달지 말았으면 한다. 그는 이 분야에서 가장 진솔하고 일관된, 그러면서 누구보다도 전문성을 갖춘 탈 권위적인 시민운동가였기에 의문의 여지가 없는 적격한 인물임엔 틀림없다. 어차피 이번 인사는 재고될 차원을 이미 넘어섰다.

다만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송재봉 개인에 의한 시민운동의 확장성이라는, 그 성공여부가 아니라 지금까지 그와 뜻을 같이한 동료들이 떠 안게 될 심적인 부화다. 시민없는 시민운동의 한계를 극복하며 풍찬노숙(風餐露宿)의 지난한 삶을 함께 인고했던 동지들이 졸지에 부닥치게 될 사회인식의 ‘절벽’ 말이다. 이는 시민운동에 대한 단순 비판일 수도 있고 아니면 더 가슴을 아프게 하는 “시민운동이 그렇지 뭐”라는 냉소 일수도 있다.

또 한가지는, 이젠 충북에서도 시민후보의 바람을 일으켜 내년 지방선거 땐 제발 때묻고 찌든 관료들의 세습에서 벗어나자고 여론이 그렇게 호소했건만 되레 지역사회 변혁의 타깃이 된 세력의 품에 안긴 것에 대한 책임은 엄중하게 져야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박원순 이재명을 거론하지 말라. 그들은 처절하게 투쟁하면서 시민들의 선택을 받았지 결코 기득권의 온기를 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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