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는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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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는 놀이
  • 충청리뷰
  • 승인 2018.01.2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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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에 이스트 살짝 넣어 반죽…갈색설탕+계피가루+땅콩빻은 것 넣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치지 않을 만큼의 신바람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겨울에 붕어빵보다는 호떡을 좋아한다. 내가 사는 사직동에 있는 사직 시장에는 붕어빵은 없어도 호떡을 파시는 할머니가 계셔서 생각날 때마다 사 먹을 수 있어 행복하다. 추운날 호떡은 그 특유의 달달함 때문에 몸과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즐거운 놀이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고 보면 호떡하고 인연이 꽤 깊다. 인연이라는게 별다른게 아니라 무척 즐거웠던 기억이 많다는 거다. 대학 다닐 때 사회과학독서토론회를 운영한 적이 있었다. 사회과학을 중심으로 독서회를 운영하다보니 참여하는 후배들은 항상 어려워하고 지루해했고, 어떤 의무감에 마지못해 참석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렇다고 독서회라는 게 딱히 다른 재미를 제공하기도 힘들어서 전전긍긍하곤 했다. 그러다가 재정사업으로 동기, 후배들과 도서관 앞에서 호떡을 구워 판 적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동아리 재정사업으로 일일주점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는데도 독서회 후배들은 무슨 재미난 이벤트처럼 호떡을 팔았던 것 같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한 사업보다는 차라리 책읽는 것보다 몇 배는 재미난 놀이를 한달까? 대학축제 내내 전날 친구집에서 반죽을 하고, 각자의 집에서 필요한 요리도구를 하나씩 챙겨와서는 오전부터 공강시간에 돌아가며 호떡을 구워서 지나가는 학우들에게 반강제로 팔았던 재미난 기억이 있다. 그때도 아마 “역시 사람들은 책보다는 놀이를 좋아하는군..!”하며 피식거렸던 기억이 있다.

2017년 12월 30일 마지막 주말에 내가 활동하는 공룡이라는 단체 활동가들과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미로 지난 1년간 연대해왔던 성주 소성리를 향했다. 어찌보면 2017년 수많은 투쟁중에 가장 미안하고 가슴 아픈 투쟁의 현장이라는 생각을 한다.

성주 소성리에서 호떡을 굽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 겨울 촛불의 힘을 모아 박근혜정부를 탄핵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했다고 믿었지만, 그 민주주의에는 포함되지 않는 곳이 소성리가 아닐까 한다. 집권 전에는 마치 곧 사드를 철수할 것처럼 이야기했던 문재인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폭력적인 방식으로 배치를 강행했다. 촛불을 혁명이라고 하는 사람들과 문재인 정부에게 당사자인 주민의 목소리는 일절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렇게 버려진 사람들이 되었다.

가끔 우리들의 투쟁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다수는 철저하게 깨져나가고 외면 받는다. 한국사회가 무엇이 옳다거나 누군가의 아픔에 민감하기보다는 당장의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회이다 보니 언제나 짓밟히고 마는 것이 운명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굴하지 않고 싸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싸드가고 평화오라”라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힘겹게 토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잊지않고 손잡아주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각자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모아서 큰 운동의 흐름을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반죽에 따라 맛이 다른 호떡

성주 대책위로부터 우리에게 농성장 꾸미기를 해주었으면 하는 요청을 받고 논의하던 중에 나는 당연히 음식을 생각해 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중에, 이왕이면 지친 사람들에게 잠깐이라도 웃음과 재미를 줄 수 있는게 무엇일까 ? 그래서 불현듯 호떡을 생각했다.

호떡은 크게 두 가지만 잘 준비하면 된다. 반죽과 설탕소. 반죽은 밀가루에 막걸리나 이스트를 넣어서 하루정도 숙성시켜 만드는데, 이스트가 많이 들어가면 4시간정도만 숙성해도 된다. 다만 막걸리는 조심해야 한다. 너무 많이 넣으면 호떡에서 막걸리 맛이 나버린다. 이 막걸리 맛 호떡은 호불호가 워낙 갈려서 최근에는 많이 쓰지 않는 편이다. 나는 보통 막걸리에 이스트를 살짝 섞어 쓴다. 호떡피가 바삭거리길 원하면 우유와 달걀노른자를 좀 섞어 쓰면 된다. 아마 이게 호떡장사의 비결인 것 같다.

참고로 이 반죽을 좀 더 물기없이 만들면 옛날식 찐빵반죽이 된다. 예전에 어머니는 호떡반죽을 잔뜩해서 일부는 호떡으로, 일부는 찐빵이나 중국식 만두빵을 만들어 주셨다. 물론 이것도 귀찮으면 소위 말하는 개떡이라는 것을 만들어 주셨는데 이 중에서 압권은 개떡이다. 개떡은 그냥 밀가루 반죽을 넓게 펴서 굽는 건데 빵도 아니고 떡도 아닌 뭐랄까, 앙꼬없는 호떡 같은 거다. 진짜 개떡 같았다.

여하튼 진정 호떡의 모든 건 결국 소다. 호떡안에 들어가는 소는 갈색설탕이 베이스다. 호떡 특유의 맛은 여기에 시나몬 그러니까 계피가루를 적당히 넣고, 고소함을 추가하기 위해 볶은 땅콩을 거칠게 빻아서 넣으면 된다.

2017년 소성리 마지막 연대행사는 연대자들도 있지만 주민들을 위한 행사였다. 주민들 스스로 자신들을 위로하고 2018년 투쟁을, 아니 싸드가 사라질 때까지 지치지 않고 싸우기 위해서 서로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하는 자리였다.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를 들고 오고, 오래도록 밥으로 연대한 밥차도 함께 와서 먹거리를 나누고, 춤추는 사람은 춤으로, 풍물패는 흥겨운 풍물가락으로 함께 어울리는 자리였다.

그 안에는 누구하나 소외받지 않고 함께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현장이라는 것을 몸으로 삶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자리에서 호떡을 맛이 아니라 놀이로 재미로 나누어 먹었다.
그러면서 항상 생각한다. 투쟁하는 우리는 적어도 지치지 않을 만큼의 신바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그렇게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쌓여있던 지친 마음과 아품들을 덜어내고, 작지만 강한 희망의 불씨들을 모아 좀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몸짓들을 나누던 좋은 날이었다.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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