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의 베트남을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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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의 베트남을 보는 눈
  • 충청리뷰
  • 승인 2018.02.0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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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박항서와 정현의 신드롬이라고 한다. 베트남에선 축구가 국민체육으로 급부상했고 급기야 이 나라 총리까지 나서 “축구에 집중지원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우리나라에선 테니스라는 스포츠 그리고 관련 용품에 대한 국민관심이 고조되면서 업계가 연일 즐거운 비명이란다.

박항서의 성공신화는 그 자체로도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일깨운다. 현지 언론은 베트남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도 하고 심지어 “베트남을 미치게 했다”고까지 묘사하면서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다. 외국인이 이 곳 국가 주석한테 훈장을 받은 것도 이채롭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쓴 히딩크가 당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체육훈장을 받은 것의 판박이로 느껴진다.

베트남은 요즘 한국인들에게 가장 ‘핫’한 여행지로 꼽힌다. 이 곳을 여행하다 보면 관광상품들이 한국인들의 취향에 맞춰 세팅되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한국 노래가 수시로 나오고 어떤 곳에선 아예 한국인만을 위한 이벤트가 펼쳐진다. 베트남에서 촬영되고 있는 우리나라 TV예능프로그램도 여기에 한 몫한다.

이른바 미국과 맞장붙어 승리한 세계 유일 국가로 통하는 베트남은 흔히 우리나라와 동병상련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얘기된다. 오랜 식민역사와 남북간 대치 경험 때문이다. 베트남은 고대시대엔 무려 1000년 동안이나 중국의 지배를 받았고 근대에는 프랑스 식민지였으며 2차대전때는 일본의 통치를 받는 등 어두운 역사로 점철돼 왔다. 그렇다보니 유명 관광지엔 이들 3개 국가의 건축물들이 그대로 보존돼 뒤늦게 해외 관광객을 대거 불러들이는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베트남에선 여전히 대우 김우중이 한국의 상징으로 통한다. 우리나라에선 그룹 해체와 함께 이미 잊혀진 인물이 되었지만 그는 90년대 베트남을 일깨워 오늘날 성장의 단초를 제공한 ‘은인’으로 불린다. 당시 김우중이 “한강의 기적을 수출하자”는 슬로건을 내세워 베트남에 집중투자하면서 ‘대우 왕국’을 건설한 것이 국가발전의 큰 계기가 되었음을 이 곳 사람들은 잊지 않고 있다.

베트남은 지금 세계가 주목하는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 근자의 경제성장률이 무려 6~7%대를 기록하면서 3%대를 맴도는 우리나라와도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한국이 겪었던 7, 80년대의 급격한 산업화를 목하 베트남이 그대로 걷고 있는 것이다. 이 곳 TV뉴스에 늘 등장하는 두가지 이슈, 즉 각종 공사 및 산업현장과 홍수 소식을 보면 이를 실감하고도 남는다. 남북으로 국토의 오른 쪽 전체가 바다에 접한 베트남인지라 잦은 폭우와 물난리는 일상으로 치부된다.

현재의 추세라면 풍부한 자원과 노동력을 자랑하는 베트남은 조만간 경제강국으로 부상할 수밖에 없다. 베트남은 이미 우리에게 중국과 미국 다음의 3대 무역국으로 부상했다. 어느덧 최대 투자국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0년대에 베트남 진출을 본격화한 충북기업 (주)대원은 바로 엊그제 베트남과 축구장 600개 규모의 경제구역개발을 위한 MOU를 체결해 주목을 받았다.

베트남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가 있다. 박항서라는 인물로 인해 지금 최고조에 달하고 있는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관계를 한 번 신중하게 생각해 보자는 의미에서다. 베트남을 여행하는 한국인들은 대개 이 나라를 쉽게 생각한다. 그들보다 조금 더 잘 산다는 알량함으로 여타 동남아 국가들을 대하는 것과 똑같다. 실제로 베트남 현지에서 듣는 얘기중엔 한국인 거주민들과 관광객들의 갑질행태가 종종 거론된다. 추악한 성매매와 관련된 것들도 있다.

이런 얘기들을 듣다보면 필리핀이 연상된다. 과거 최고의 여행지였던 필리핀이 지금은 어글리(ugly) 한국인들에 대한 반감으로 잊을만하면 각종 험악한 일이 벌어지는 우려스러운 곳으로 변질됐기에 그렇다. 베트남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박항서 이면의 부끄러운 한국인 모습이 부각된다면 다혈질인 베트남인들이 언제 돌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아직은 작은 목소리에 불과하지만 이미 베트남에선 과거 남북전쟁 때 자행된 한국 군인들의 만행이 조금씩 돋아지고 있다. 나치 전범의 국가들처럼 우리나라 지도자들도 베트남 방문시 더 늦기 전에 진정한 사과를 해야 한다는 주문은 이래서 나온다.

베트남인들이 한국에 대해 지속적인 호감을 갖는 데엔 국민들로부터 살갑게도 ‘호 아저씨’로 불리는 국부 호치민의 영향이 크다. 1당 독재체제의 사회주의국가 베트남에서 호치민은 여전히 나라의 모든 것을 상징하고 지배한다.

그런데 그 호치민이 생전 가장 존경한 인물이 다산 정약용이다. 아예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끼고 다녔다고 한다. 호치민의 브랜드가 된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과 ‘부정부패하지 않은 관리’는 다름아닌 목민심서를 관통하는 이념이다. 이를 바탕으로 호치민은 극도의 근검절약과 구국의 신념으로 통일을 이뤘고 결국 영구불멸의 국부가 됐다.

모든 국민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한 곳을 향해 끝없이 달려가는 듯한 베트남의 저력을 일깨우는 사람이 또 한 명 있다. 1963년 6월 11일 사이공의 미국 대사관 앞에서 분신한 ‘틱강득(釋廣德)’이라는 승려다. 당시 가톨릭 성향의 남베트남 정부의 반불교정책과 베트남 전쟁에 반대해 소신공양으로 항거한 그의 마지막 모습(사진)은 여전히 보는 이들을 전율케 한다. 이글거리는 화염속에서도 표정하나 일그러짐이 없이 정좌한 자세로 끝까지 몸을 불사른 그가 곧 베트남의 혼을 상징하는 것같아서 하는 말이다.

바람이 있다면 역사 뿐만 아니라 가족문화를 중시하는 전통적 가치에서도 서로 유사함이 많은 한국과 베트남이 지금 박항서 신드롬이 안기는 그 호감과 우애를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갔으면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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