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혁명에 관한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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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혁명에 관한 에세이
  • 충청리뷰
  • 승인 2018.02.0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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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비평가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오정란
해피마인드 심리상담소장

책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은 서늘한 여름밤에 책과 혁명에 관해 쓴 닷새 밤의 기록이다. 이 책을 쓴 사사키 아타루는 ‘야전과 영원’이란 책으로 일본 지성계를 장악한 작가이다. 일본의 니체라고 불리기도 하는 그는 가히 파격적인 인물로 소개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책을 접하는 나로서는 기대감이 컸다. 첫 문장부터, 비가 오는 여름밤의 풍경을 그리며 시작된다. 나는 그의 글쓰기가 꽤 감각적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판단은 다음 장을 넘기는 순간, ‘앗. 뜨거워’였다. 팔팔 끓인 물 한 컵을 무심결에 마셨다가 목구멍이 타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의 글은 신선함을 넘어 나에게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의 글에 전염되었거나 그로 인해 열렬한 문학 신도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반복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신조로 삼는 사람이라고 여러 번 말한다. 그와 달리 나는 반복을 싫어한다. 특히 책을 반복적으로 읽는 것을 무엇보다도 지루하게 생각한 사람 중의 하나이다. 세상에는 읽어야 할 책들은 산더미이고, 읽고 싶은 책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읽었던 책을 다시금 본다는 것은 나로서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는 단번에 이런 내 생각을 뒤집어 놓았다.

그는 자신을 특별하지 않다고 하며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자신만이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것 만큼 평범하고 꼴불견인 게 없다고 말한다.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정보가 전혀 없이 산다는 것은 어리석음이며, 스스로 어리석음을 선택했음에도 그는 무지를 짊어진다는 것은 쾌 힘든 일이라고 고백한다. 자신에게 솔직하며, 누구의 부하도 되어서는 안 되고, 누구의 명령을 들어서도 안 되는 것이라 다짐하며 정보를 모으는 것은 곧 명령을 모으는 일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그런 그가 누구의 부하도 되지 않았고 누구도 부하로 두지 않고자 하는 그가 기꺼이 니체, 푸코, 르장드르, 들뢰즈, 라캉이 있어 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아갔겠느냐고 슬쩍 말한다. 정보가 넘쳐 나고 생존의 정글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구의 명령을 따라야만 하는 세상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좋을지 몰랐을 거라고 말한다. 그는 발터 벤자민처럼. “밤중에 계속 걸을 때 도움이 되는 것은 다리도 날개도 아닌 친구의 발소리다” 그들의 발소리를 들어버린 것이다.

거절하는 자는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그의 셋째 밤 ‘읽어라 어머니인 문맹의 고아’ 편을 흥미롭게 읽었다. 이 장에서는 무함마드와 하디자에 대한 이야기다. 고아였으며 시장을 헤매고 다녔던 무함마드, 문맹이었던 무함마드가 열다섯 살이 많은 하디자로부터 구혼을 받게 된다.

그녀는 혈통이 좋은 여성으로 부호인 신분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고 2남 4녀를 두지만 아들은 모두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런 평범한 그가 지브랄 천사를 만나고부터 다시 한 번 삶이 바뀌게 된다. 무함마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해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다. 그것은 여성과 좋은 향기와 기도다”라고 말한다.

지금의 아랍권의 문화를 생각하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는 여성의 옹호자였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무함마드는 세계의 교조 중에서 유일하게 유언을 이렇게 남겼다고 한다. 너희들의 아내, 누이, 딸들은 신으로 부터 위탁받은 자이므로 소홀하게 대하지말라. 그런데 현실 이슬람은 왜 아직도 여성차별 사회의 최전선에 서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기는 하다.

그의 발소리의 주인공들에게 고백 한 것처럼 나 역시 그가 있어서 정말로 안심이 되었다. 빛 한 점 없는 어두운 길에 서게 될 때 누군가의 발소리를 찾아갈 수 있을 용기를 얻었다. 이 책은 매일 매일 쏟아지는 정보량에 허덕이는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거절하는 자는 후회하지 않는다’라는 그의 말을 나는 선물로 받았다.

사람은 자신을 새롭다고 믿고 싶어 하는 존재고, 자신의 시대를 새로운 시대의 여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존재라고 그는 말한다. 사람이 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베케트가 말하는 ”낡은 나사의 새로운 회전“뿐이며 살아있다는 것은 뭔가를 계속하고, 뭔가를 계속하는 일이기에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읽는 것, 다시 읽는 것, 쓰는 것, 다시 쓰는 것. 이것이야말로 세계를 변혁하는 힘의 근원이라고. 세계는 넓고 더욱 오래오래 계속 되기에 우리는 읽고 쓰고 노래하며 춤추는 일은 멈출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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