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콘텐츠를 팔아 성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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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콘텐츠를 팔아 성공하다
  • 충청리뷰
  • 승인 2018.02.07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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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도시 통영에 둥지 튼 책방, 박경리·백석 작품 가장 많이 나가

산으로 가야 하나, 바다로 가야 하나.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마음이 바뀌었다. 빨간 두건 덮어쓰고 숲속을 기웃거리고 싶다가도, 고래 등에 올라타 짙푸른 바다를 누비는 꿈을 꾸기도 했다. 이상은 바닷가 오두막 쪽에 더 가까웠지만 현실의 선택은 산이 되었고 우리 부부는 숲속 마을에 작은 책방을 열었다.

서울은 우리보다 한 해 먼저 떠났고, 그곳에서 <남해의 봄날> 출판사를 시작했고, 우리와 같은 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봄날의 책방> 문을 열었던 정은영 대표와 강용상 동네 건축가 부부. 그들의 터전에 처음 초대받아 갔을 때 사무실 넓은 창을 열고 바깥으로 몸을 내밀면 그대로 빠져버릴 듯 코 앞에 바다를 둔 풍경에 놀라고 황홀했었다. ‘통영’이라는 멀고도 낯선 지역이 내 마음 속으로 들어오던 첫 순간이다. 그때부터 통영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통영은 문학, 음악, 미술, 공예 등 풍부한 문화예술 자산을 갖고 있는 도시다. 다도해를 품은 526개의 섬은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고 예인과 장인의 고장으로 명성을 드높였다. 무엇보다 통영은 한국 현대 문학의 거장들이 태어나고 활동한 문학의 도시다. 청마 유치환, 시조시인 김상옥, 시인 김춘수, 소설가 박경리 등을 배출했고 백석, 정지용, 이영도 등 시인에게 영감을 준 예술 공간이었다.

소박하지만 눈에 띄는 <남해의 봄날>

출판사 <남해의 봄날>은 문화예술의 도시 곳곳에 남아있는 예인의 흔적을 찾아내고 정리하여 빛나는 콘텐츠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멀리 이곳을 찾는 도시인들에게 지역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지역 콘텐츠의 힘을 보여주는 로컬 비즈니스의 성공 사례를 일궈냈다. 전 국토가 서울 아닌 것은 모두 변방으로 전락해버린 현실 속에서 긴 세월을 살아낸 지역의 삶과 문화유산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려주었다. 그래서 이들 출판사가 펴내는 책들은 남다르다. 거대 자본, 대형화, 도시화 이런 것과는 대비되는 소박하고 성실한 가치를 담은 책들을 펴내고 서점에서는 이런 책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판매한다.

2014년 11월 문을 연 책방 <봄날의 책방>은 4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었는데 지난해 겨울, 3주년을 맞아 대폭 확장했다. 700여 권이던 장서는 2,500여 권으로 늘었고 넓어진 공간에는 다양한 주제 서가가 들어섰다. 책방에 들어와 처음 만나는 중심 공간에는 <남해의 봄날>에서 출간한 책들과 편집자, 저자들이 읽고 추천한 책을 두었고 숍인숍을 표방한 ‘바다책방’에는 바다와 여행을 주제로 한 책들과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으면 좋은 그림책들을 두었다.

‘작가의 방’에는 통영에서 나고 자라거나 통영을 사랑한 문인들의 책을 놓았다. <봄날의 책방>에서 일 년 내내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은 박경리 작가와 백석 시인의 책이다. 통영 지역 주민들에겐 자랑스러운 이름일 테고, 일부러 이곳을 찾아온 방문객들에게는 통영의 작은 책방에서 통영 작가의 책을 사들고 간다는 의미를 더해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공간은 ‘예술가의 방’. 이곳에선 그토록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살아서 고향 땅을 밟을 수 없었던 윤이상 음악가의 생애와 책, 음반을 만난다. 한 쪽 벽에 설치된 음향기기를 통해 헤드폰을 끼고 듣는 망향의 음악은 예술가에게 가해진 폭력과 분단의 상처를 깨우쳐준다.

책방 2층에 마련된 북스테이 공간

<봄날의 책방> 2층에는 여행객들이 하루 묵어갈 수 있는 북스테이 공간이 있다. 통영 장인들의 솜씨로 빚어낸 나전칠기와 화가의 그림이 걸려있는 ‘장인의 다락방’. 이 아늑하고 정갈한 방은 그동안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숙박을 받았지만 아쉽게도 이제 회원제로 바뀌어 운영된다.

책방에서 도서 구매로 마일리지 4만점을 쌓으면 하룻밤 숙박이 가능한데 40만원 상당의 책을 사야 가능한 점수라고 하니 책 좋아하는 이들에게 도전정신 유발하는 책방이 아닐 수 없다. 북스테이 공간이 축소된 건 아쉽지만 그러나 새로 확장한 아름다운 책방 공간과 잘 선별된 책들이 존재감을 빛내고 있는 서가를 탐색하다 보면 어느덧 작은 책방 존재의 의미가 가슴 깊이 새겨지는 걸 느낀다.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몰려 살고 있는 서울 수도권, 이 비정상적인 쏠림의 시대에 서울에서 차를 달려 네 시간 넘게 가야 하는 남해 바닷가 끝자락에 직원 넷의 작은 출판사가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오래된 구옥을 개조해 만든 작은 책방이 있다. 중심과 아주 먼 변방의 끝자락. 그리고 그들처럼 외딴 시골마을에 자리잡은 나의 숲속작은책방. 우리는 이 광활한 우주에 한 점으로 박혀 있는 미미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발신하는 우리들의 낮은 목소리가 지금 경계를 넘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진격해 나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들이 서야 할 자리는 어딘가, 우리의 삶은 무엇을 향하는가, 무거운 물음을 안고서 뚜벅뚜벅 걷고 있다.

매일 아침 꿈에서 깨어나면 고통스럽던 서울 생활을 정리한 지 이제 7년차. <봄날의 책방>도 <숲속작은책방>도, 산도 바다도, 어디라도 좋았다. 크고 환한 달을 가슴으로 품었으니 말이다.

백 창 화
괴산숲속작은책방 대표
‘작은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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