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반, 설레임 반…다르게 살고 싶다”
상태바
“두려움 반, 설레임 반…다르게 살고 싶다”
  • 박소영 기자
  • 승인 2018.02.22 09:38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년 앞둔 최경수 KBS 피디, 신찬인 이사관, 김규원 박사
‘노인’이라는 말 아직 듣고 싶지 않아…내 맘대로 살고 싶다

58년 개띠들이 돌아왔다
잊고 있던 나의 삶

내일 정년퇴직을 한다면 오늘 무엇을 꿈꿔야 할까. ‘58년 개띠’들이 ‘직장’이 아닌 ‘세상’으로 돌아왔다. 58년 개띠들은 한국사회의 베이비부머 세대로 기존의 노인세대와 달리 고성장시대의 혜택을 누렸다. 능력이 있다면 많이 배우고 가질 수 있었다. 또 IMF로 경제적 파고를 겪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들의 가까운 미래인 그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최경수 KBS 피디…“나도 정년이 올 줄 몰랐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 악기는 색소폰을 배우고 싶고, 운동은 일상적으로 하는 것이고 요리도 배우고 싶다. 그동안 살면서 안 해봤던 것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은 욕망이 좀 있다.” 최경수 KBS 피디는 정년퇴직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호적을 뒤늦게 올려 57년생인 그는 58년 개띠들과 함께 직장을 다녔다.

그는 33년간 KBS 피디로서 끝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고 현장을 찾아다녔다. 지역문화예술을 소개하는 <문화현장>프로그램을 정년을 마칠 때까지 진두지휘했다.

“어쩌면 33년을 온실 속에서 살았다. 지금부터는 혼자 걸어가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과도기라고 본다.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게 제일 어려운 것 같다. 선배들을 보니 빨리 내려놓는 게 가장 중요하더라. ‘왕년에 뭐했다’라는 특권의식을 내려놓고 개인으로 어떻게 살아볼지 고민하고 한다. 쉽게 말해 33년 물든 ‘KBS물’을 빼는 일이 남았다.”

베이비부머 세대로서 많은 것을 누렸지만 IMF라는 인생의 파고를 겪은 세대. 그는 은퇴 후 어떤 삶을 살고 싶을 까.

“틀에 정해진 걸 일단 하기 싫다. 자유롭고 싶다. 경제적인 일을 다시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다보면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다. 경제적인 것보다 인생의 여유와 멋을 찾고 싶다. 나도 정년이 올 줄 몰랐다. 한 발 한 발 와보니 정년이 됐다. 후배들은 지금 과연 정년이 올 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할 것이다. 다만 내가 보낸 세월보다 앞으로 남은 세월이 더 험난할 것 같아 걱정된다.”

 

#신찬인 이사관…“철저하게 소시민으로 살고파”

 

긴 공직생활을 마친 신찬인 씨는 매일 재즈피아노를 배운다. 이외에도 수필을 쓰고 기타를 치고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른다. 퇴직하면서 한 결심 때문이다. 사진/육성준 기자

신찬인 씨는 29살에 7급으로 첫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도의회 사무처장(이사관)으로 공직을 마쳤다. 긴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올 1월 1일부터 그는 소시민이 됐다. 소시민이 된지 50일째, 그는 공무원으로 지낼 때보다 더 바쁘게 일상을 꾸린다. 그는 퇴직을 앞두고 많은 고민 끝에 이후 삶에 대한 3가지 원칙을 정했다고.

“첫째는 쓸데없는 것에 욕심을 두지 않기로 했고 둘째는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기로 했다. 셋째는 철저하게 소시민으로 돌아가 이웃들과 살고 싶다. 지금까진 그렇게 한 것 같다.”

퇴직 1년 전 공로연수 때부터 악기를 배웠다. 하루에 5시간 악기를 연습하는 데 피아노 3시간, 기타 1시간, 나머진 합창을 한다. 기타는 고등학교 때부터 쳐서 익숙하지만 재즈피아노는 처음 배웠다. 청주남성합창단에 가입해 무대에도 몇 번 섰다. 신 씨는 재즈피아노가 무르익으면 언젠가 단독 공연을 하는 것을 꿈꾼다. 수필가로 등단도 했다. 퇴직 전 삶을 반추하는 글을 쓴 것을 보고 한 문인이 등단을 권유했다. 현재 푸른솔문인협회장, 딩아돌아 문예원 이사를 맡고 있다. 퇴직 후 받은 새 명함이다.

이처럼 적극적인 문화향유자로 살다보니 느끼는 게 많다.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건 개인적인 정서함양도 있겠지만 내 주변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문화예술을 통해 소소하지만 아름다운 관계들을 만들어가게 되고, 무엇보다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게 좋다.” 그에게 문화예술은 스스로에게 ‘쉼’이자 주변을 환히 밝히는 ‘빛’이다.

같이 퇴직한 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는 “다들 잘 살고 있다. 산에는 아직 안 가는 것 같다”라며 웃었다. 퇴직할 때 그가 쓴 이임사의 내용은 이랬다. “인생, 삶이라는 것이 결국 퇴직을 하게 되면 궁극적으로 마무리된다. 사람들은 퇴직하는 게 두렵지 않느냐는 얘기를 많이 한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가장 적절한 시기가 아닐까 한다.”

그는 “퇴직을 앞두고 가장 두려웠지만 동시에 설레이기도 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사귀고 싶다. 옛 동료, 기자들, 동네사람들, 문화예술 동호인들을 즐겁게 만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규원 박사…“다른 방식과 관념으로 살고 싶다”

 

김규원 박사(사진 맨 왼쪽)는 지금 평창올림픽에서 해외언론취재지원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노인을 바라보는 편견과 고정관념이 싫은 그는 20대 자원봉사자들에게 “~씨”라고 불러달라고 말했다. /사진제공=김규원

김규원 충북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 평창에 가 있다. 자원봉사자를 신청해 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언론의 취재지원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경기일정을 외신들에게 알리거나 즉석에서 인터뷰 지원을 하는 등 생각보다 중책을 맡고 있다고. 3교대로 돌아가는 스케줄이 빡빡하고 생각보다 숙소도 열악하지만 전화기 속 그의 음성은 밝았다.

“지원할 때 모든 걸 감수하겠다고 했으니 참을 수밖에 없다. 하하. 20~30대 청춘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데 이름 말고 ‘큐’로 불러달라고 했더니 아직까지도 어려워한다. 각자 이름 뒤에 ~씨만 붙이기로 했다.”

58년 개띠인 그는 이번 올림픽 자원 봉사 이후 4월부터는 국립몽골대학 초빙교수로 한국비교문화에 대해 강의할 예정이다.

“제2의 인생이니, 인생이모작이니 시니어니 이러한 단어를 싫어한다. 노인에 대한 편견을 거뒀으면 좋겠다. 앞으로 기존에 살았던 방식과는 다른 삶의 기준으로 살고 싶다. 감정, 비교, 고정관념의 가치를 전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감정조절하는 것부터 배워야 할 것 같다. 아내에게도 동의를 구했다. 남은 삶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기로 했다.”

충북연구원에서 지금은 공식적으론 ‘안식년’을 보내고 있다. 내년 1월에 복귀해 다시 6개월을 근무하고 진짜 퇴직한다. 올 1월 김 씨는 강원도에 있는 부모님을 찾아 생애구술사를 기록했다.

“어머님의 치매가 진행돼 건강한 기억을 갖고 있지는 못하지만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녀가 된 입장에서 알게 된 것이 많다. 부모님이 건강하게 지내실 때 생애구술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자녀들이 하면 좋겠다. 그러려면 친해지는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아버지가 속 썩인 것, 자녀들에 대한 부모님의 평가 등 나만 아는 얘기들이 많다. 공공영역과 사적영역이 겹치는 삶을 살아온 부모들의 이야기는 기록하는 자체가 유의미하다.”

은퇴자의 삶에 대해 그는 “우리사회는 끊임없이 배움을 요구하는 것 같다. 배움을 언제 써먹을 수 있을지 싶다. 다양한 통로를 통해 이제 은퇴자들이 자기목소리를 내면 좋겠다. 쓴소리하는 어른이 많아지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안뇽~ 2018-02-23 16:13:12
박 선배, 기사 잘 봤습니다. 근데 설레임이 아니라 설렘이 맞는 표현이잖아요~ 박 선배, 빵꾸똥꾸~ 내가 누구게~ㅎ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