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기는 터져야 낫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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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기는 터져야 낫는 법
  • 홍강희 기자
  • 승인 2018.02.28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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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강희 편집국장

“너는 줘도 안 먹는다” “여배우에게는 연기력이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잘 나가는 여배우들은 다 감독과 잤다. 너도 할 수 있겠냐”. 이 말대로라면 남성은 언제든지 여성을 먹을 수 있고, 여배우들은 감독과 자고 배역을 따내는 사람들이다. 실로 충격적이다. 조민기 전 청주대 교수는 ‘못 생긴’ 학생 앞에서 “너는 줘도 안 먹는다”고 했고, 조근현 영화감독은 영화배우 지망생에게 “감독과 자야 좋은 배역을 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동안 이런 사람들을 교수님, 감독님이라고 부르고 대우했다.

‘#Me Too 운동’ 덕분에 우리사회의 맨 얼굴이 드러나고 있다. 피해자들은 아프겠지만 ‘덕분’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요즘 갑질과 성차별, 폭언을 일삼은 남성 권력자들의 명성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다. 아주 고소하다. 이 권력자들에게 성폭력을 당하고도 저항 한 번 하지 못했던 피해자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성폭력은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을 모두 포함하는 단어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일 한 번 당해본 여성이 없을 것이다. 물론 남성도 있을 수 있지만 여성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여성들은 어려서 성차별을 당했고, 커서는 성폭력을 당했다. 어떤 남자가 말했다. “이제부터 여성들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모르겠다. 세상이 무섭다”고. 아마 그럴 것이다. 그 만큼 일상적인 언어와 행동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수많은 여성단체들은 그동안 만연된 성폭력 근절을 주장해 왔다. 우리 사회에는 성폭력이 ‘만연’돼 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니 남성들이 어떻게 말을 해야 좋을지 고민할 수밖에.

고용노동부는 최근 ‘직장내 성희롱 셀프 체크 앱’을 개발하고 보급하고 있다. 직장내 성희롱 예방교육시 수강생들이 자가진단 앱을 활용해 성희롱 인식을 확인하고, 조직의 성인지 감수성을 측정함으로써 조직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고용노동부는 이를 통해 ‘#Me Too 운동’이 ‘#Me First 운동’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들이 만든 문항을 보면 이해가 안된다. 문제가 너무 쉬워 문제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20개 중 18개를 맞히면 성희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그레잇’, 15~17개를 맞히면 성희롱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굿’, 14개 이하면 더 많은 관심과 공부가 필요한 ‘베드’라고 한다.

문제를 보자. ‘직원들끼리 격려하거나 포옹하기, 어깨 토닥이기, 팔짱 끼기 등의 신체적 접촉을 하는 것은 직장내 성희롱이 될 수 있다’ ‘회식자리에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성적 농담을 하는 것은 직장 내 성희롱이 될 수 있다.’ ‘상대방이 원치 않는 구애 행위는 직장 내 성희롱이 될 수 있다.’ ‘직장 동료에게 연예인이나 고객 등에 대한 성적 농담이나 외모의 성적 비유(평가)를 하는 것은 직장 내 성희롱이 될 수 없다.’

이런 것을 문제라고 냈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여기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여성들은 ‘이걸 문제라고 냈느냐’는 반응을 보이지만 남성들은 ‘이것도 성희롱이냐’고 한다. 각종 성희롱과 성추행이 만연돼 있기 때문에 남성들은 무엇이 잘못돼 있는지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성추행사건이 벌어지면 ‘귀여워서 그랬다’ ‘딸 같아서 그랬다’ ‘친밀감의 표현이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성희롱예방교육이 보급된지 오래됐지만 아직도 이런 교육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공직자들만 의무교육을 받을 게 아니라 전국민들이 받아야 한다. 이번에 아주 잘 터졌다. 종기는 터져야 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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