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한 아파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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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한 아파트 이야기
  • 충청리뷰
  • 승인 2018.03.1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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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의 <요란요란 푸른 아파트>
심진규진천 옥동초 교사·동화작가

우리나라 어느 곳을 가도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아파트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만큼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사람들의 주거문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오늘은 사람을 데리고 사는 아파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김려령 작가의 이름은 잘 몰라도 <완득이>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작가는 동화부터 소설까지 폭넓게 글을 쓴다. 나는 현재 김려령이 써서 출판한 책은 모두 읽었다. 이제는 신간이 나왔다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매부터 한다. 그만큼 이야기를 풀어가는 힘이 있는 작가이다.

예전에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해서 4년 정도 산 적이 있다. 이사를 해야 해서 조금씩 짐 정리를 했다. 정리를 하다 보니 집안 곳곳 고장 난 곳들이 보인다. 전에는 없었는데 이사 가려고 마음을 먹으니 보인다. 그때 문득, 집이 우리 가족과 헤어지는 것이 서운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갈라진 바닥을 손으로 쓸어주며 “그동안 고마웠다. 새 식구들 만나 재미있게 지내”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푸른아파트’는 그런 아파트이다. 지어진지 40년이 넘어 낡은 아파트. 주변에는 초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지만 푸른아파트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아파트 동들이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이다. 1동은 푸른아파트 네 개 동의 대장격이었는데 어느 날 벼락을 맞고 나서부터 이상한 소리를 한다. 2동은 자기가 데리고 사는 사람들에게 정이 많다. 3동은 처음에만 이야기가 나오다가 어느 순간 이야기에 등장을 안한다. 문제의 4동. 제일 구석진 곳에 있고, 데리고 사는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면 몸을 비틀어 대서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돈다.

다른 동들이 모르는 이야기를 해주는 상가도 전체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한 몫 한다. 이렇게 개성 강한 아파트들이지만 제가 데리고 사는 사람들은 끔찍하게 아낀다. 아파트가 꼭 자식 키우는 부모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낡으려면 곱게 낡아야지”라는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나이 많은 어르신이 옆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내가 사는 집을 다시 생각해본다

2동 102호 11평 아파트에 한 할머니가 살고 있다. 온갖 잡동사니를 주워와 안 그래도 좁은 아파트가 더욱 좁아 보인다. 어느 날 아들과 며느리가 와서 손자만 덜렁 맡겨 놓고 간다. 손자 이름은 이기동. 기동이는 벌써 여러 번 이사와 전학을 다니며 심통이 나있다. 분필을 가져와 아파트에 낙서를 하고 돌아다닌다. “이 아파트 엄청 낡았어”라는 기동이 말에 할머니는 “집은 사람을 보듬어 주고, 사람은 집을 보듬어 주면서 같이 사는 거여”라고 이야기 한다.

요란 요란 푸른아파트김려령 지음문학과 지성사 펴냄

기동이는 4동 404호에 만화가 아저씨가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찾아간다. 괴담 시리즈를 그리는 만화가다. 기동이는 만화가 아저씨 집에서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만화책을 발견한다. “이 아저씨 꼭 만나보고 싶어요. 가장 좋아하는 만화예요”라고 털어놓는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 만나고 싶어 하는 만화가인줄은 모르고 말이다. 기동이는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되고, 만화가 아저씨로부터 정식으로 만화를 배우게 된다.

푸른아파트의 재건축 허가가 떨어지고 사람들이 이사를 가기 시작한다. 기동이와 할머니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 기동이는 아파트와 멀어지며 “야, 푸른아파트! 잘 가라, 푸른아파트!”라고 소리친다. 2동은 그런 기동이를 보고 “너 꼭 만화가 돼라”라고 이야기한다. 책장을 덮고 나면 주변의 사물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하나 하나 만져보게 된다. ‘네가 내 곁에 이런 모양으로 있었구나’하면서.

언제부턴가 아파트는 우리에게 사는(LIVE)곳이 아니라 사는(BUY)것이 되어 버렸다.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분양을 받고 값을 더 올려서 팔아버리는 돈벌이 수단이 되어 버렸다. 오늘 집에 가서 벽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자. 우리 집이 내게 말을 걸어올지도 모른다. 내가 잘 데리고 살아줄 테니 너도 날 아껴달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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