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요리를 받아들이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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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요리를 받아들이는 자세
  • 충청리뷰
  • 승인 2018.03.16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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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요리 할 때 우리나라 재료 적당히 섞으면 새로운 요리 탄생

지난 6일, 공룡이 운영하는 ‘마을까페 이따’에는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들이 놀러왔다. 지금 공룡들은 일본 오사카 가마가사키라는 지역에서 미디어운동과 지역 노숙자 운동을 결합한 지역활동을 하는 친구들이 만든 극영화를 한국에 배급하기 위한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이 친구들은 이를 논의하기 위해 온 것이다.

이 영화는 집단 창작이라는 형식의 극영화로 도시재생이라는 미명하에 난민을 만들어내는 도시권력을 비판하는 블랙코미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공룡들과 친한 미디어활동가 그룹이 만들어서 좋다기 보다는 이 영화 자체가 워낙 다양한 해석과 즐거움을 주는 놀라운 작품이어서 함께 배급상영 활동을 하기로 했다. 이 영화를 배급하기 위한 일정 논의와 자막작업을 하기 위한 논의 등을 하는 회의가 있어서 겸사겸사 놀러온 것이다.

공룡은 이제까지 영상 등의 미디어를 제작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좋은 영상들을 함께 나누는 배급이라는 새로운 실험들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이것이 향후 어떠한 의미들을 가지게 될지 무척 궁금해 하는 중이고 이 과정에서 만나는 새로운 관계들을 주목하는 중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은 일본 도쿄의 산야라는 지역에서 노숙자 및 일용직 노동자들의 삶과 활동에 대한 지역공동체 역할 등을 연구하는 디디와 전북 진안에 귀촌하여 살고 있는 일본인 하지메, 그리고 일본어 번역을 함께 해줄 서울 빈집공동체의 하루라는 친구가 놀러온 것이다.

근사한 태국식 돼지고기볶음밥

놀러온 것인지 회의하러 온 것인지 애매모호하긴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라서 특별한 요리를 해주고 싶었다. 자주 만나거나 함께 일하는 친구들일수록 부담없이 평소에 먹던 집 밥처럼 일상적인 요리들을 내어놓기 쉽고 또 그래야 할 것처럼 이야기되곤 한다. 하지만 나는 보통 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태국식 돼지고기볶음밥
고기 쌀국수

 

차라리 서로 어색하거나 자주 만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평범하고 익숙한 요리들을 해 주는 편이고 아주 친한 친구들일수록 새로운 요리나 새로운 맛들을 보여주는 편이다. 이는 내가 평소에 요리라는 것은 함께 먹는 사람들의 입맛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소위 모험적인 무엇인가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친하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에게는 나 스스로도 뭔가 새로운 시도들을 하게 되는데 이는 아마도 내가 먹는 것보다는 요리를 하는 것에 좀 더 흥미를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래서 오랜만에 만나고 구성도 다양한 이 날 모임에서 선택한 요리는 최근 치앙마이 여행에서 맛 본 태국식 볶음밥인 팟 카파오 무쌉과 고기 쌀국수, 그리고 스페인식 생선찜이었다. 태국식 요리의 특징은 아마도 소스와 식재료를 다듬는 법에서 맛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우선 보통 알려진 대로 대부분의 태국 요리에는 피쉬소스가 쓰인다. 한국의 액젓이랑 비슷한데, 맛은 덜 짜고 단맛이 살짝 난다는 정도다.

그래서 한국의 액젓을 물에 희석한 후 설탕을 첨가하면 비슷한 맛을 내는 것 같다. 식재료를 다듬을 때 가장 큰 차이는 아마도 절구를 이용해서 즉석에서 거칠게 빻아 사용한다는 거다. 가령 돼지고기볶음밥을 할 때 청양고추랑 붉은 고추, 마늘을 절구에 거칠게 빻아서 돼지고기랑 볶은 후에 간장, 액젓, 물, 설탕, 참기름을 약간 넣어 볶아주면 아주 근사한 태국식 돼지고기볶음밥이 된다.

이 정도 레시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맛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게 아주 특별하다. 그러니까 고추와 마늘을 생으로 거칠게 빻아서 사용하면 고춧가루나 다진마늘을 사용한 것과 전혀 다른 맛이 난다는 것이다. 여기에 좀 더 특별한 맛을 원하면 건새우를 잘게 다져서 함께 볶으면 그야말로 동남아식 요리가 된다. 이렇게 생식재료를 즉석에서 절구에 빻아서 사용하는 건 특별한 저장방법이 없는 대신에 사시사철 따뜻한 날씨가 있기에 가능한 듯 싶다.

올리브유에 재료 섞어 소스 만들어

고기국수는 쉽지 않았는데, 다행히 저번 여행에서 생면을 사온 것이 있어서 도전해 보았다. 태국에는 워낙 질이 좋고 싼 돼지고기가 있기에 가능하겠지만 나는 국수요리에 너무 많은 비용을 지불하기엔 애매해서 냉동 돼지등뼈 5000원어치를 사 전 날 물에 담그어 핏물을 빼주었다. 원래 태국식은 핏물을 제거한 돼지고기와 돼지뼈에 고수 뿌리, 정각, 후추등을 넣어 오래도록 끓여주는데 동네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재료들이다.

그래서 한국식으로 마늘, 양파, 대파뿌리를 넣어서 끓인다. 여기에 독특함을 주기 위해 삼계탕에 들어가는 한약재료들을 첨가했다. 오래 끓인 육수를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쌀국수 면에 부은 후에, 고추와 마을을 빻아서 넣어주고 끝으로 피쉬소스와 마라소스(고춧가루같은 향신료)를 넣어주면 거의 비슷한 쌀국수가 된다.

우리는 ‘공룡’에 놀러온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보며 맛있는 요리를 먹었다.

마지막으로 가볍게 만들어본 스페인식 생선찜은 이렇다. 삼치같은 흰살 생선을 잘 구운 후에 끓인 올리브유 소스를 부어주는 것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올리브유 소스인데, 올리브기름에 마늘과 건고추를 넣은 후에 불에 올려 가열한 후 팔팔 끓을 때 신선한 식초를 반 컵 정도 넣어준다. 그러면 순식간에 독한 산 성분은 날아 가고 독특한 올리브 소스가 된다. 이것을 구운 생선위에 부어주면 된다. 올리브유 소스를 만드는 건 거의 감바스를 만드는 것과 비슷한데 마지막에 식초를 부어주는 것만 다르다. 여튼 담백하면서도 상큼한 생선찜 요리다.

활동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어 나가는 건 어쩌면 내가 이제까지 살아온 삶의 무대가 점점 더 넓어진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다. 그래서 넓어지는 만큼 헐거워질 위험이 있지만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를 좀 더 내밀하게 만드는 만남들을 통해서 위험보다는 새로운 활력으로 만드는 노력이 그 만큼 필요하다.

그와 비슷하게 다른 나라의 새로운 요리를 할 때는 결국 그 나라의 요리법과 소스들을 내 삶의 재료들과 섞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새로운 요리가 잠깐의 유별남이 아니라 내 요리의 새로운 방식으로 풍성하게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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