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은 절대로 잘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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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절대로 잘나지 않았다
  • 충청리뷰
  • 승인 2018.03.2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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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자치단체나 공공기관의 최고 책임자들은 대개 화장실을 따로 쓴다. 집무실 내에 별도의 장소를 두기 때문이다. 편의성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여기엔 다른 저의(?)가 있다. 다른 구성원들과의 섞임을 차단하려는 목적이 크다.

만약 최고 책임자가 부하직원들과 같은 장소에서 바지 지퍼를 내리고 나란히 볼일을 본다면 상호간의 격의는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같은 행위가 자신의 위엄과 권위를 잃게 한다고 여겨 꺼린다. 타 지역 자치단체장 중엔 간혹 이 것부터 고치겠다면서 그들이 입버릇처럼 내뱉는 공복(公僕)임을 자처하지만 도내에선 아직 이런 사례를 듣지 못했다.

아닌게 아니라 어느 특정인의 권위를 조장하는 요인 중엔 ‘나는 너와 다르다’는 식의 인위적인 노력이나 가식으로 노출을 꺼리는 것도 한몫한다. 연예계의 인기 스타들이 즐겨 사용하는 일종의 신비주의를 연출하는 것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군대에서도 마찬가지다. 장교는 화장실을 따로 쓰고 식당도 ‘장교식당’이라는 별도의 장소를 사용하며 일반 사병들과 거리감을 둔다.

이명박과 안희정의 추락을 바라보면서 퍼뜩 이런 생각들을 떠올렸다. 한 사람은 대통령을 지냈고 또 한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도 있는, 이 나라 최고의 명망을 누리던 그들이었지만 한 순간 최악의 처지로 변질되는 것에 대해 국민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 간극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사람 뭐 별수 있어, 다 똑같지”를 되뇌일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유명 인사들을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미투’의 순기능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비로소 그들의 실체를 알게 되는 순간 갑자기 밀려드는 사념(思念)들로 인해 오히려 삶의 참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우선 ‘사람 뭐 별수 없지’라는 말에는 남녀 사이의 상대적인 성평등과 여성인권을 뛰어넘는 더 원초적인 인간평등의 이념이 담겨 있다. 그 누구도 특별히 잘난게 없다는, 그리하여 만인이 똑같이 평가되고 똑같이 대우받는, 어찌 보면 우리 인류가 유구한 투쟁과 갈등의 역사를 극복하면서 이루고자 했던 이상향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꼭 한번 가고싶은 곳으로 꼽히는 지역이 북유럽이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좋은 나라들이 몰려있다는 그 곳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욕구에서다. 최근에는 이들 나라의 특정 지역에서 살아본 사람들의 체험담이 베스트 셀러에 종 종 오른다. 지금 많은 이들의 로망인 ‘제주 한달살기’ 프로젝트도 이에 영향을 받았다면 틀린 말이 아니다.

가장 근자의 보고서에서도 북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좋은 나라의 단연 상위 순위를 독차지했다. 1위 노르웨이를 비롯해 덴마크, 스웨덴, 네덜란드,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이 톱 10에 이름을 올려 ‘인간다운 삶’을 최고 가치로 여긴다는 북유럽의 현주소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잘 알려진대로 북유럽의 정신을 통틀어서 견인한다는 ‘얀테의 법칙’이다.

덴마크 태생의 노르웨이 소설가 악셀 산데모세(1899~1965)는 어려서부터 힘든 방랑생활을 하면서 삶의 보편적 가치를 향한 끝없는 고민을 한다. 그러다가 소설가가 된 이후로는 인간을 짓누르는 사회관습이나 선과 악의 이중성에 천착하며 ‘사회의 억압이 결국 폭력을 낳는다’고 진단하고 자신의 작품에서도 주로 이를 주제로 다뤘다고 한다.

얀테(Jante)는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가상의 덴마크 마을로 그가 언급한 열가지 원칙은 결국 자신이 평생 꿈꿔온 평등한 사회, 살기좋은 사회를 위한 선결조건인 셈이다. 해석은 조금씩 다르지만 열거하면 이렇다.

1. 네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지 말라 2. 네가 다른 사람보다 더 가치 있다고 믿지 말라 3. 네가 다른 사람보다 더 현명하다고 믿지 말라 4. 네가 다른 사람보다 잘났다고 믿지 말라 5. 네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안다고 믿지 말라 6. 네가 다른 사람보다 위대하다고 믿지 말라 7. 네가 무엇을 잘한다고 믿지 말라 8. 다른 사람을 비웃지 말라 9. 누가 혹시라도 너에게 관심을 갖는다고 믿지 말라 10. 네가 행여나 누구를 가르칠 수 있다고 믿지 말라

듣기에 따라선 개인의 가치와 고유성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격하한다고도 할 수 있으나 이같은 신념의 종착지는 다름아닌 복지국가의 모델이 되고 있는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다시 말해 개인의 완전한 평등에 대한 실체적 실현의 의지인 것이다.

이들 나라는 교육에서도 어려서부터 경쟁과 차별의 내성을 키우는 게 아니라 상호 존중과 평등의 공동체, 그리고 사람마다의 차별이 아닌 서로 다름을 가르친다고 한다. 세월이 급속도로 바뀌고 다른 선진국들이 사회적 인프라에서 모든 것을 압도한다고 해도 북유럽이 흔들리지 않게 살기좋은 나라의 집합소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이러한 얀테의 법칙을 국민 모두가 체질화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데 우리는 어떤가. 하나부터 열가지가 다 얀테의 법칙과는 정반대다. 나는 특별할 뿐더러 다른 사람보다 더 가치있고, 누구보다도 현명하고 잘났으며 많이 안다. 뭐든지 상대보다 뛰어나고 그러기에 더 좋은 대접을 받아야 직성이 풀린다.

#미투를 촉발시킨 요인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안희정이 부하 여직원에게 못된 짓을 하고도 순리로 받아들이라고 한 것이나, 고은과 이윤택 김기덕 조재현이 후배와 문하생, 여배우들을 겁탈·성추행하고도 이를 관행으로 희석시키며 말도 안 되는 갑질을 정당화하려고 했던 심보는 다름 아닌 ‘나는 너와 다르다’는 치기와 오만함의 발로였다.

지금 이명박이 감옥에서 마음으로 되새길 것은 하나밖에 없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는 것을 잊고 살았다는 자책이다. 안희정이 처절하게 반성할 것도 하나밖에 없다. 나는 왜 어리석게도 지금까지 잘났다고 착각하며 살았는가다.

이를 상기하면서 이시종 도지사와 시장·군수들이 청사 변기앞에 직원들과 나란히 선 장면을 상상해본다. 그들 중 일부는 오는 지방선거가 끝나면 어차피 장삼이사로 돌아간다. 그 때를 위해 미리 연습하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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