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인 권태응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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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인 권태응의 탄생
  • 충청리뷰
  • 승인 2018.03.2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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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어린이〉 〈감자꽃〉 〈동시마중〉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
이 안 시인〈동시마중〉편집위원

독립유공자이자 탁월한 동요 시인 권태응(1918-1951)의 육필 원고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지금까지 권태응이 남긴 작품은 동시 333편, 단편소설 3편, 수필 3편, 희곡 2편으로 알려져 있었다. 출판사 창비는 2018년 권태응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권태응 전집’ 발간을 준비하던 중, 지난해 가을 미국에 거주하는 유족으로부터 미공개 원고를 대량 전달받게 되었다. 이를 꼼꼼히 검토하여 최초로 보고한 김제곤의 글 ‘동시인 권태응이 되기까지―새로 발견된 유작들을 중심으로’(<창비어린이> 2018년 봄호)에 따르면 이 유작들은 1944년 3월부터 1946년 6월 사이 쓰인 것으로 그 분량이 시조집 2권, 시집 3권, 소설 3편, 희곡 1편에 달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권태응의 집필 시기는 1947년부터 1951년까지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 자료를 통해 그 시기가 3년 이상 앞당겨졌을 뿐 아니라 본격 집필, 또는 작가 이전 습작기의 면모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권태응 문학의 출발이 동시가 아니라 시조와 시였으며 시조에서 단시로, 단시에서 다시 동시로 시세계를 심화하고 정련하고 초점화했음이 확인된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일제 말기 결핵을 앓는 몸으로 두 달 만에 400편이나 되는 시조, 석 달 남짓한 기간에 330편이 넘는 시를 쓰기도 했다고 하니, 이는 습작기 권태응의 열정과 근성을 보여 주는 것이자 추후 권태응의 동시세계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각고의 노력 끝에 어렵사리 획득된 것임을 말해 준다.

김제곤은 권태응이 자기 문학의 출발을 서구시에서 찾지 않고 시조에서 찾은 것은 “‘우리 것’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자각을 바탕으로 우리 전통에 기대어 우리 정서와 어법, 호흡에 맞는 시를 새롭게 창안하고 개선해 가는 길을 택하고자 한 때문”이라고 보았다. 또한 시조에서 단시로, 단시에서 동시로 이어지는 시형의 탐구 역시 단순한 시 형식의 실험이나 변모에서 그치지 않고, 내용과 형식이 합치되는 시 양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얻은 결과로 파악한 점도 흥미롭다.

시조집 <탄금대>(1944. 5. 4-1946. 3. 18, 215편 전편 수록.<첫새벽><등잔불>에 이은 권태응의 세 번째 시조집), 문집 <청담집>(1944. 5. 18-1945. 5. 18, 시조, 단시, 동시 형식의 시 작품 118편 수록), 시집 <동천시집>(1945. 5. 9-1945. 8. 11, 약 석 달 동안 330편의 시와 동시를 엮은 책으로 동시는 총 90편) 사이의 흐름을 보면 권태응 문학이 동시로 초점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땅감’은 토마토를 가리키는 말

1948년 권태응이 생전에 펴낸 글벗사 판 <감자꽃> 맨 앞에 실린 ‘땅감나무’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동천시집>(83쪽)에서다. 김제곤은 1945년 5월 25일에 쓴 것으로 되어 있는 이 작품이 “<소학생> 46호(1947. 5. 1), 1947년에 엮인 육필 동시집 <송아지>와 <하늘과 바다>, 1948년에 엮인 육필 동시집 <우리 동무>, 글벗사 판 <감자꽃>에 연이어 재수록 되었다”면서 “그만큼 시인이 애착을 가졌던 작품이라 할 수 있고 시적 완성도에서 흠결이 없어 대표작으로 삼아도 좋을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처음 쓰인 대로 전문을 옮겨 본다. “키가 너머 놉흐면,/ 까마귀 떼날너와 따먹을가바/ 키즉은 땅감나무 되엿답니다// 키가 너머 놉흐면,/ 애기들 올너가다 떠러질까바/ 키즉은 땅감나무 되엿답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 반점과 온점의 유무를 제외하면 1995년 창비에서 펴낸 선집 <감자꽃>의 배치와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시조에서 단시로, 단시에서 동시로 이어지는 시형의 탐구”가 “내용과 형식이 합치되는 시 양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변화이자 고투 끝에 획득된 필연적 결실이라고 본다면 권태응 동시는 시조와 시와의 관련성 속에서, 그가 어렵사리 발견한 시 양식으로서, 시의 새로운 방향으로서 재평가될 만하다.

‘땅감나무’는 바로 그 핵심적 자리에 있는 작품이다. 김제곤이 앞선 글 ‘동요를 쓰기 위해 이 세상에 잠깐 왔다 간 사람’(<동시마중> 2017년 5·6월호)에서 이 작품을 두고 “‘땅감’의 유래담을 담은 짧은 ‘이야기 시’라 할 수 있다”면서도 “앙증맞고 귀여운 표현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뭔가 녹록지 않은 적실함과 격조가 이 작품에는 들어 있다”고 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땅감’은 토마토다. 키가 너무 높아 까마귀가 떼 지어 날아와 따 먹고 가고 아기들 올라가다 떨어지기도 하는 나무는 감나무다.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이안, 문학동네 2014)에서 살핀 것처럼 권태응은 이 작품에서 ‘땅감나무’와 ‘감나무’, ‘아기들’과 ‘까마귀 떼’를 대비시키는 방법으로, 동시를 쓰는 시인으로서의 자의식과 문제의식을 적절히 담아냈다. ‘감나무’와 ‘까마귀 떼’가 사나운 어른들의 세계(시)를 나타낸다면, ‘땅감나무’와 ‘아기들’은 평화로운 동심의 세계(동시)에 대한 지향을 담고 있다. 새로 발견된 유작들은 권태응이 어떤 문제의식을 거쳐 마침내 동시인(땅감나무)으로 탄생했는지를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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