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곤조곤 들려주는 동양고전 이야기
상태바
조곤조곤 들려주는 동양고전 이야기
  • 충청리뷰
  • 승인 2018.04.05 09: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담론>
오정란해피마인드 심리상담소장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우리의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는 담론 25장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 글이다. 이 책의 저자 신영복 선생님은 학생들과 마지막 강의를 할 때 이 말을 건네며 작별 인사를 한다고 한다. 담론은 강의의 녹취록을 토대로 재구성된 책이다. 학생들에게 말하는 듯 쓰여 있어 책을 읽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다가 집중이 안 되는 부분에서는 마치 소리 볼륨을 높여야겠다는 생각 끝에 미소가 번지는 책이기도 했다.

담론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 1부의 주제는 고전에서 읽는 세계인식이다. 2부의 주제는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이다. 우리가 일생 하는 여행 중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을 선생님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자신에게 형성돼 있는 인식의 틀을 깨는 것이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낡은 인식의 틀을 깨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담론신영복 지음돌베개 펴냄

공부(工夫)라는 글자는 하늘과 땅을 사람이 연결하는 형상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가슴에서 여행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 남아있다고 한다. 여기서 발은 우리가 딛고 있는 삶의 현장이다. 우리가 낡은 인식의 틀을 깨고 통렬하게 느낀 것을 자기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것이 공부이며,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진정한 여행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총 25강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두께도 400쪽을 넘는다. 그런데도 책이 술술 읽히는 것은 시종일관 느껴지는 선생님의 인간에 대한 끝없는 이해와 사랑이다. 붓글씨를 즐겨 쓰셨던 선생님은 ‘함께 맞는 비’란 글귀를 좋아한다고 한다. 누구를 돕는다는 것은 비 오는 날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우산을 같이 쓰는 것도 우산을 들어주는 것도 아닌 비를 같이 맞는다는 것이 나로서는 새로웠다.

‘석과불식’의 교훈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가 가장 상처받는 말은 ‘왜 그랬어?’이다. 동시에 이렇게 저렇게 자신의 처방전을 내놓는 사람들의 말에서 상처를 받는다. 생각해보면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한마디 말없이 곁을 지키는, 혼자가 아니라는 안심을 갖게 해주는 것이 가장 큰 위로가 아니었던가. 그 상황 안에 함께 있어주며 같이 느끼는 것 만큼 막강한 위로는 없으리라.

또 하나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 주제는 석과불식(碩果不食)이다. 석과불식은 씨 과일을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가지 끝에 마지막 남은 씨를 받아서 심는 것이다. 한 알의 외로운 석과가 열매가 풍성한 나무로 성장해 가는 것을 상상하는 것으로도 인생은 희망차다. 석과불식의 교훈을 통해 우리가 가진 소임으로는 엽락(葉落), 체로금풍(體露金風), 분본(糞本)이 있다.

엽락은 잎사귀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나무의 잎사귀는 환상과 거품을 상징한다. 엽락은 환상과 거품을 청산하는 것이다. 다음은 체로금풍이다. 칼바람에 나무의 뼈대가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환상과 거품으로 가려져 있던 우리의 삶과 사회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직시하는 일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분본이다. 분은 거름이다. 분본이란 뿌리에 거름을 주는 것이다. 뿌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일이다. 여기서 뿌리는 사람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이며 사람은 그 자체가 최고의 가치라는 것이다. 사람을 키우는 사회야말로 살맛이 나는 사회라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님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올해로 2년이 되었다. 저녁 늦게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위에서 선생님의 부고를 들었던 그 겨울이 잠시 생각난다. 나에게 신영복 선생님은 나의 20대를 비춰주는 거울이며, 폭압의 시대를 싸워낸 사람들의 자화상이기도 했다. 책을 다 읽고 나자 지금 우리 시대의 진정한 담론은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차 한 잔 놓고 이야기 나눌 친구들이 문득 그리워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