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별미가 아니지만 나만의 닭갈비를 만든다
상태바
이젠 별미가 아니지만 나만의 닭갈비를 만든다
  • 충청리뷰
  • 승인 2018.04.16 09: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닭고기에 채소 넣고 떡·고구마·감자·어묵을 첨가해도 되는 요리

4월이고 봄인데 춥다. 심지어 눈도 내리는 봄이라니. 겨울에는 봄이되면 마냥 따스하고 화사할 것 같았는데, 막상 봄이 되었지만 여전히 춥고 서늘하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1월에 졸업하고 취업을 기다리는 여자아이를 만났다. 그렇게 지겨워하던 고등학교 생활을 정리했지만 생각한 것보다는 즐겁지도 자유롭지도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올해의 봄처럼.

아마도 또래의 아이들은 대학을 갔거나 취업을 했을텐데 혼자서 취업준비를 하니 많이 힘들어 보였다. 아니 불안해 보였달까 ? 어느 것 하나 정해지지 않은 삶에 대한 막막함이 묻어나지 않나 싶어서 조심스러웠다.

“먼저 취업해 나간 친구들은 잘 지낸대 ?”
“뭐 다들 힘들대. 생각한 것보다 돈도 안되고 일은 힘들고. 벌써 관두고 그냥 집에서 지내는 친구들도 있고. 대개는 알바를 하나 봐. 난 4월까지는 기다려 볼려구 ....”
“조금만 기다리면 소식이 오겠지.”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음...나 매운 닭갈비 먹고 싶어”
“그래”

요즘 닭갈비는 특별한 요리가 아니게 되었다. 내가 갓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만해도 온 가족이 축하할 일이 있을 때나 먹었던 별미였지만, 요즘은 집에서 해먹는 떡볶이 만큼이나 누구나 손쉽게 해먹을 수 있는 요리가 되었다고 할까? 그 시절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다는 것이 기념해야할 만한 일이었던 것 같은데, 이젠 누구에게나 있는 사소한 일과가 된 것처럼.

상추에 쌈 싸먹어도 되는 요리

닭갈비가 비싸지 않은 배달음식이 되면서 우리는 더 이상 닭갈비를 별미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고 그만큼 굳이 애써서 찾아먹어야 하는 음식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특별하다는 감정이 주는 묘한 성취감에 중독된 사회,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것들만 각광받는 사회, 수많은 것들에서 평범해 보이지 않는 것들만 살아남는 사회, 남보다 더 뛰어나야 하는 것들만 인정받고 존중받는 사회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요리도 맛이나 함께 먹는 사람들과의 추억보다는 고급 상품으로서의 희소성으로 평가받는 세상이 되어버린 지도 모르겠다.

마트에 가서 부위별 닭고기 중에 원하는 것을 산 후 먹고 싶은 야채들 그러니까 양배추, 양파, 깻잎, 대파를 적당하게 채썰어서 후라이팬에 모두 넣은 후에 닭갈비 양념과 약간의 물을 넣어서 볶으면 되는 요리. 가끔은 원하는 대로 떡볶이 떡을 넣어도 되고, 감자와 고구마를 썰어 넣어도 되고, 심지어 데친 어묵을 마지막에 넣어서 먹으면 독특한 맛이 되는, 마지막에는 밥을 볶은 후에 피자치즈를 뿌려서 먹어도 되는 요리. 맵게 먹고 싶으면 좀 더 맵게 먹어도 되고, 상추에 쌈 싸먹어도 되는 요리.

매콤한 닭갈비는 어떤 맛이었을까

이제 갓 사회에 나왔지만 이 사회에 속하지 못한 불안한 여자아이는 왜 그 많은 요리 중에 굳이 자주 먹던 닭갈비를 원할까? 그 여자아이에게 매콤한 닭갈비는 어떤 음식일까? 아니 나에겐 특별했던 그 닭갈비가 그 아이에게도 특별할까?

남들이 다들 즐겁게 맞이하는 봄날이 되었지만 여전히 겨울의 냉기가 남아 있어서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너무나 평범한 삶들이 있는 것 같다. 특별하지 않아서 주눅들어 살면서 누군가를 미워할 수도 없어 그저 스스로를 탓하며 작아지는 평범한 삶들. 굳이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해주거나 그냥 묵묵히 곁에서 함께 숟가락 들고 식사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힘들어진 세상을 살아가는 여자아이에게 나는 과연 어떤 맛으로 요리를 해주어야 하는 것일까 하는 당혹감이 들었다.

오늘따라 닭갈비에 우동 사리를 넣어 볶으면서 생각해 봤다. 모두에게 특별하진 않더라도 그냥 이것저것 원하는 걸 고르고 넣어서 자신만이 원하는 맛을 낼 수 있는 닭갈비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순 없을까 하는 물음. 스스로를 책망하기보다 그저 닭갈비 한 젓가락만으로도 스스로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사회란 어떤 사회일까 하는 상상. 그렇게 요리를 하면서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