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이 풍경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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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 풍경을 볼 수 없다
  • 육성준 기자
  • 승인 2018.05.04 09: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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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들어와 형성된 청주시 수동은 굴곡 많은 동네다. 한 여름 노부부를 시원하게 했던 우물가는 사라진지 오래고 할머니에게 용돈을 받아 즐거워하던 아이의 동심은 자본주의 물결 속에 잊혀졌다. 청주의 대표적 달동네 수동, 난개발의 오점으로 남지 않을 대책이 필요한 때다.

2003년 한여름 우물을 퍼 올려 등목을 하는 노부부의 표정이 삼복더위를 식혀 주기에 충분했다.
2004년 한 무더기의 아이들이 골목길 전봇대를 골대 삼아 축구놀이를 한다. 골목길은 아이들의 소통의 장소다.
2003년 장인숙 할머니가 이웃집에서 텔레비전을 빌려간다. 일손 없는 일요일 전국노래자랑을 보기 위해서다.
2005년 할머니의 쌈지 속에 꼬깃꼬깃 구겨졌던 천 원짜리가 손자의 수중에 들어왔다. 마냥 기뻐하는 아이는 즐거운 표정을 감출 수 없다.
2003년 모래로 집을 짓고 밥도 짓는다. 부족할 것 없는 이 곳 아이들의 손끝에서 무엇이든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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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다방 2018-05-04 23:48:54
윗집 명희 성은 공부럴 너무 잘했는데 가난한 형편에 대성여상을 보내씁미다. 명희 성이 울고불고 통곡하던 모습이 생생합미다.학교를 졸업한 성은 농협에 취직해 돈을 모아 청대 야간을 다녀 미쿡으로 유학을 가 인도 의사럴 만나 결혼해 방 많고 넓은 집에서 행복하게 삽미다.
풍선집 할머니 역시 공부 잘해넌 막내딸을 야간학교에 보내씁미다. 젊은 수학선생님은 막내딸(제자)이 졸업하길 기다려 결혼을 하고 대학공부 뒷바라지럴 ㅠ,, 막내딸 역시 학교 선생님이 되어씁미다. 자랑해넌 겁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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