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언제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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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언제 사라질까
  • 윤호노 기자
  • 승인 2018.05.08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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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노 충주·음성담당 부장

법원장을 지낸 고위 법관이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에게 ‘삼성을 홍보했다’는 등의 아부성 발언과 ‘가족의 인사청탁’을 암시하는 등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는 언론보도가 나와 논란이 일었다.

재벌 오너와 그 일가가 아닌데도 이 정도인데 그룹 총수 일가에 대해 정·관계 인사들이 어떤 행태를 보였을지 상상이 간다. 이들은 우리 사회 영향력 있는 인사들한테도 이런 대접을 받으니 일반 시민이나 소속 회사 직원 등은 봉건시대 ‘노비’로 여기는 것 같다.

재벌가에서 빚어진 폭행이나 비행 등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근절되지 않는 원인 중 하나가 ‘솜방망이 처벌’이다. 내가 대학생이던 1994년 신년 ‘소형차 운전자 폭행’ 사건으로 사회가 떠들썩했다. 롯데 가문 2세인 신동학 씨와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이후락 씨의 손자이자 제일화재해상보험 이동훈 회장의 외아들 이석환 씨 등이 그랜저를 타고 가다 프라이드 승용차가 끼어들자 차를 세우게 하고 운전자 등 일행을 집단 폭행했다.

도로 변에 있던 벽돌과 화분으로 운전자 정씨 등 일행의 머리를 때렸는데 함께 타고 있던 강 모씨는 뇌출혈을 일으켜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롯데 재벌 2세인 신 씨는 현장에서 도망친 이틀 뒤 영국으로 출국하려다가 공항에서 붙잡혔고 석 달 뒤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당시 경찰은 재벌의 눈치를 봤던 모양이다. 경찰은 이석환 씨 부친인 제일화재해상보험 회장의 직업을 ‘보험회사 직원’ 등으로 축소했고, 상부에 보고도 하지 않았다. 이씨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최근 국민들의 공분을 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차녀 조현민 대한항공 광고담당 전무의 오빠 조원태 씨는 2000년 교통경찰을 치고 도주했는데 4시간 만에 풀려났다. 그는 5년 뒤 또 난폭운전 시비 도중에 70대 노인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했지만, 처벌은 벌금 100만 원 약식기소였다.

한화그룹 오너 일가의 사건·사고도 많았지만 이들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한화 김승연 회장의 둘째 아들인 김동원 상무는 2011년 새벽 뺑소니 사고를 냈는데 이틀이 지나서야 경찰 조사가 이뤄졌다. 음주 운전이 의심됐지만 밝혀내지 못했고 그냥 벌금만 냈다. 셋째 김동선 씨는 술집 폭력 사건이 여러 번 있었지만 2010년에는 합의했다고 기소유예, 7년 뒤엔 합의하고 반성한다고 집행유예, 그리고 얼마 전 변호사들을 폭행했지만 이때도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넘어갔다.

영화 ‘베테랑’을 떠올리는 사건도 실제 있었다. 2010년 SK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철원 M&M 전 대표가 화물노동자에게 알루미늄 야구 방망이를 휘두른 사건이다. 매 한 대에 100만 원이라는 입에 담지도 못할 말을 자랑스레 떠들기도 했다. 운전기사에게 ‘갑질’을 한 정일선 현대BNS스틸 사장,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도 모두 벌금형을 받았다. 돈 많은 재벌가 사람들에게 이런 처분이 과연 처벌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아니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재벌의 갑질에 상처입고 솜방방이 처벌에 피멍이 든다. 사법당국은 국민들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생각이 안 들게 공정한 판결을 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신뢰회복은 물론 우리 사회가 한층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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