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냄새 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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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냄새 나는 곳
  • 권영석 기자
  • 승인 2018.05.2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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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넘게 살아온 사람들이 여전히 동네 지켜
주민센터 건립하고 좁은 골목길 새로워져 ‘눈길’

청주시 운천·신봉동에는 아파트 밀집지역에서 볼 수 없는 인정 넘치는 광경들이 있다. 이 곳에는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사는 토박이들이 많다. 올 4월 기준으로 전체 주민 1만9513명 중 70대 이상이 1563명이다. 다른 동네보다는 노인인구가 많은 편이다.

지난 주말 운천동 산정공원에서는 마을경로잔치가 열렸다. 올해로 11회째를 맞이한 경로잔치에는 약 1000명의 주민들이 모였다. 대부분이 70대 이상의 어르신. 이날 경로잔치에는 운천동 노인 대부분이 참석했다. 경로잔치는 ‘좀돌이부녀회’의 도움으로 진행됐다. 그들은 16년째 운천동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좀돌이부녀회는 매년 경로잔치를 열고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친다. 사진/육성준 기자

이정미 ‘좀돌이부녀회’ 회장(사진 맨 오른쪽)은 “경로잔치를 하기 위해 한 달 전부터 회원들과 행사준비를 했다. 회원들이 짬짬이 시간을 내준 덕분에 경로잔치를 잘 준비할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40명의 회원이 9개조로 구성된 ‘좀돌이부녀회’는 다양한 봉사활동을 한다. 조별로 1년에 한 명씩 돌아가며 혼자 사는 노인들을 위해 청소를 하고 먹거리도 마련해준다. 그리고 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에게는 쌀과 김장거리를 지원한다. 1년에 약 300여명의 노인들이 좀돌이부녀회의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좀돌이부녀회 활동의 금전적 지원은 운천동 새청주새마을금고(이하 금고)가 돕고 있다. 변정섭 금고 이사장(73)은 “전에는 동사무소 차원에서 경로잔치를 했는데 언젠가부터 경로잔치가 없어졌다. 그래서 금고에서 경로잔치를 열었다. 이 분들 덕분에 금고가 성장했기 때문에 우리가 잔치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며 경로잔치를 지원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금고는 ‘좀돌이부녀회’ 활동의 다른 금전적 지원도 하고 있다.

5월 19일 운천동 산정공원에서 열린 11회 마을경로잔치. 사진/육성준 기자

“공간은 사라지고 사람이 남았다”

변 이사장은 9살 때부터 지금까지 64년을 운천동에서 살아온 토박이다. 학창시절 논길을 걸으며 꿈을 키웠고, 결혼 후에는 장사를 해서 자식들을 키웠다. 그는 “돌아가신 부모님과 결혼해서 분가한 자녀들도 모두 운천동에 터를 잡았다”며 운천동은 자연이 어우러져 살기 좋은 동네라고 말했다.

어릴 적 그가 살던 곳은 서낭댕이 마을 인근이었다고 한다. 80년대 택지개발이 있기 전까지 운천동은 지금의 흥덕사 인근인 연당리, 운천·신봉주민센터 인근의 산정말, 진양아파트 근처인 서낭댕이 그리고 백제유물전시관 인근의 어댕이(어당리) 등의 자연부락이 곳곳에 있었다.

하지만 대규모 택지개발계획은 운천동을 크게 바꿔 놓았다. 초가는 아파트로, 논은 상가로 변했고 운천동을 가르는 큰 도로인 청주 제 1순환로가 생기며 동의 경계도 바뀌었다. 운천동의 제일 큰 마을이었던 어당 마을을 갈라놓은 것이다. 1순환로는 도심교통체증을 완화하기 위해 신봉사거리, 봉명사거리, 사창사거리, 개신오거리를 잇는 우회로였지만 그로 인해 생활반경과 다르게 운천동, 신봉동, 봉명동, 사천동의 경계가 새롭게 그어졌다.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이 동네를 떠났다. 또한 주민들의 추억이 담긴 공간도 사라졌다. 변 이사장이 즐겨 찾던 ‘정문’도 이 시기 없어졌다고 한다. 정문은 지금의 운천동절터공원과 청주CCC 인근에 있던 전각으로 동네에 이름난 효녀를 기리기 위해 만든 효녀각이었다고 한다. 전각 옆길은 무심천 뚝방길로 이어져 청주 시내로 가는 주요 통로였다. 그는 “정문은 마을로 들어오는 이정표였다. 많은 사람들이 전각을 통해 마을로 들어왔다. 전각을 보며 부모님께 잘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며 학창시절 추억을 얘기했다. 하지만 개발로 주민들의 추억이 담긴 공간이 없어진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정문’이 없어진 주변에는 운천동절터공원이 생겼다. 공원으로 개발되기 이전에는 논이었다. 이곳에는 1970년대 민가를 짓다가 범종이 발견됐고 1984년 택지개발로 발굴조사가 실시됐다. 그리고 터에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어 개발을 중단하고 공원이 됐다. 현재는 주민들이 즐겨 찾는 쉼터다. 이곳을 즐겨 찾는 주민 길 모씨는 “공원에서 게이트볼도 하고, 얘기도 나누며 오랜 이웃들과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새로워지는 운천·신봉동

최근 운천·신봉동은 주민센터 신축을 준비하고 있다. 김인수 운천·신봉동장은 “주민들의 쉼터역할을 할 수 있는 주민센터를 신축하려고 한다. 주변 부지를 좀 더 매입해서 주차장을 확보하고 젊은 층부터 노인층까지 방문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는 건물 신축을 위한 부지매입 단계이나 건물이 완공되면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운천동을 상징하는 운리단길도 주민들에게 새로운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최선규 운천·신봉주민자치위원장은 “젊은 인구가 점차 빠져나가 걱정했는데 자연스럽게 이 곳에서 그들만의 공간을 형성해 기쁘다”고 말했다. 운리단길은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 운천신봉동 주민센터를 잇는 흥덕로 일대를 일컫는다. 골목상권이 낙후되면서 임대료가 낮아진 지역에 젊은이들이 창업을 하며 만들어진 길이다. 거리에는 카페, 식당뿐 아니라 공예와 관련한 매장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공간들은 체험과 강습을 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최 위원장은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직지특구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다”며 “현재 입지를 두고 갈팡질팡하는 유네스코기록유산센터가 고인쇄박물관 인근에 들어와 최고의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도록 주민들과 뜻을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왼쪽부터)변정섭 새청주새마을금고 이사장, 최선규 운천·신봉주민자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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