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피곤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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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피곤하십니까?
  • 충청리뷰
  • 승인 2018.05.2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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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지난 주말을 전후로 아주 맑은 하늘을 몇 번 만났다. 미세먼지가 국가적 재앙으로 인식되고부터는 좀처럼 접할 수 없었던 그 티없는 청명함에 사람들은 표정부터 달라 보였다.

덥지도, 그렇다고 춥지도 않은 날씨 덕에 오랜만의 산행 또한 절로 즐거웠다. 그런데 중간 중간 쉬는 시간에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엄습한다. 산 모기다. 아직 이르다고 생각했는데 벌써부터 출현하고 있다. 그러자 같이 간 동료가 “피곤한 게 인생이라더니 참...”이라며 독백처럼 내뱉는다.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을라 치면 여지없이 안좋은 상황들이 뒤따랐다는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하면서 말이다.

호사다마(好事多魔), 좋은일에는 그만큼 시샘하는 것들도 많다. 주말골퍼들이 어쩌다가 한 홀에서 돋보이는 타수라도 치게 되면 다음 홀에선 여지없이 오비 등 미스샷을 날린다. 이럴 때 동반자들은 ‘우정의 샷’이라고 놀려댄다. 세상 일이 마냥 순조롭게만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느 조직이나 직장이든 꼭 미운털이 박히는 사람이 한 둘 있게 마련이다. 하여 제발 저 사람만 없어졌으면 하는 고민 끝에 막상 그를 정리라도 하게 되면 생각지 못한 조직 내의 또 다른 구성원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 가정에서도 골치아픈 문제가 해결돼 좀 편안할까 싶으면 생각지 못한 엉뚱한 일이 터져 곤혹스럽게 한다. 주정뱅이 가장을 간신히 달래 놓았더니 이번엔 아들 녀석이 밖으로 뛰쳐나가 지나는 사람을 때리는 식이다. 평소엔 존재조차 잘 드러나지 않는 ‘처 삼촌이 말썽 피운다’라는 말은 이래서 나온다. 이렇듯 참 피곤한 게 삶이다.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가 평생 입에 올린 것도 다름아닌 삶의 피곤함이다. 삶이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왕복하는 시계추와 같다면서 인간은 욕망으로 인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설파했다. 헤겔을 비롯한 동료교수를 끝간데 없이 의심하고 자신의 목을 벨까봐 이발사에게 면도도 안 시켰을 뿐만 아니라 잠잘 때는 화재와 해코지를 우려해 1층만 이용하며 늘 권총을 침대옆에 놓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여자를 불행의 근원으로 여기며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죽어서도 묘비에 이름만 적었지 단 한 줄의 글도 남기지 않았다.

북한 풍계리 취재를 위한 남측 기자단의 방북이 우여곡절 끝에 성사됐다. 판문점 선언으로 한 껏 고조됐던 화해무드가 고위급 회담 무산과 기자단 방북 갈등으로 잡자기 썰렁해지는 순간, 급거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에선 알게 모르게 피곤함이 묻어났다. 트럼프를 작심하고 치켜세우는 수사(修辭) 또한 지난번에 비해 자연스럽지가 못했다.

남북대화가 진행될수록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적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아닌게 아니라 요즘 사석에선 급진 보다는 점진적 통일, 이게 아니라면 남북 두개 국가의 평화적 병존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막대한 통일비용을 우려하는 게 아니라 달라도 너무나 다른 두 체제의 교집합에 대한 비현실성을 자각하는 것이다.

엄밀히 따져 지금 한국-북한-미국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물밑 대화는 어폐가 크다.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과 우리나라 수준의 번영을 약속한다는 것부터가 그렇다. 체제보장은 지금의 3대 세습을 용인한다는 얘기나 다름없고 우리나라 수준의 번영이란 것은 곧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통한 경제발전을 의미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북한의 경제번영과 세습의 독재권력은 양립하기가 쉽지 않다. 삶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북한사회도 반드시 진화하게 될 것이고 그 지향점은 21세기 지구촌의 최고, 최대 비정상이라는 3대세습에 대한 어깃장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북한의 체제변화를 의미한다. 아닌게 아니라 통일을 앞당기는 가장 호재는 북한 내부의 자체적인 변화, 그 것이 갑작스런 혁명이 됐건 아니면 단계적인 사회민주화 과정이 됐건 막상 현실화될 경우 문제는 크게 달라진다. 우리에게는 불감청 고소원이지만 말이다.

판문점 선언 때만 해도 광폭의 언행을 보이며 자신감을 표하던 김정은이 돌연 시진핑한테 달려가고 유독 남한에게만 몽니를 부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미 비핵화에 따른 카드를 거의 소진한 상태에서, 그렇다면 향후 자신의 백두혈통에 가해질 위험요소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정 평화통일을 원한다면 이 문제는 북한 뿐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앞으로 큰 부하(負荷)로 작용한다.

북한의 3대세습 체제는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에도 불구 처음부터 통일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돼 왔고 이 때문에 앞날의 여정 또한 이번 사례에서처럼 수많은 돌발변수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마다 우리는 “참 피곤하구나”를 되뇌이게 될 것이다.

어느덧 공식처럼 각인되고 있는 ‘북한의 미래는 베트남이 롤모델’이라는 것도 지금으로선 현실적으로 상당한 괴리가 있다. 우선 베트남은 오랜기간 중국 프랑스 일본 등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되레 폐쇄성을 극복하며 나라 전체를 개방적 마인드로 체질화시켰다. 반세기가 넘도록 외딴 섬으로 살아온 북한과는 원초적으로 다르다. 우리에게는 잊혀진지 오래됐지만 지난 90년대 베트남에 경제성장의 물꼬를 틔워준 대우 김우중을 베트남인들은 여전히 국가 은인으로 여기고 있다.

베트남의 1당 집권을 이끌며 사회주의 통일국가를 이뤘고 생전의 근검 절약과 그 일관된 민족애로써 사후에도 여전히 국부로 추앙받는 베트남의 호치민은 독재의 절대군주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향유하며 비정상의 국가체제를 집착해 온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김씨 족벌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래도 한반도 통일을 원한다면 이같은 여정의 피곤함을 끊임없이 극복하는 길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등 주변국 정상들을 만날 때마다 강조하는 “흔들리지 않고 북한과 대화하겠다”는 말은 이렇게 하겠다는 의지로 들린다. 삶을 피곤함과 고난으로만 인식하고 점철시키려 했던 천하의 쇼펜하우어도 말년엔 이를 인정했다. “약간의 근심과 고통, 고난은 항시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바닥에 짐을 싣지 않는 배는 안전하지 못한 것처럼....”

결국엔 ‘희망’이다. 언젠가는 통일이 될 것이라는, 언젠가는 우리나라 정치와 국회의원들도 바뀔 것이라는, 언젠가는 내 삶이 하고 싶은대로 잘 풀릴 것이라는 그 희망 말이다.

이를 위한 첫 단초가 오는 6.13 지방선거에서 부도덕하고 반통일적인, 야비하고 나쁜 후보 및 정당을 응징하는 것이었으면 더욱 좋겠다. 그렇게만 된다면 “인생 피곤하다”가 아니라 “인생 참 보람있다”가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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