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랑 놀아보자
상태바
동시랑 놀아보자
  • 충청리뷰
  • 승인 2018.05.24 12: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함민복 동시집 〈바닷물 에고, 짜다〉
이 안 시인〈동시마중〉편집위원

동시는 0세부터 100세까지의 시다. 어린이(童)를 향해 조율된, 어린이에게 다가가는 시다. 동시의 어린이는 연령상의 어린이에 국한되지 않는다. 어른 안의 어린이, 그러니까 동시를 쓰는 어른 시인 안의 어린이와 동시를 읽는 어른 독자 안의 어린이를 포함한다.

어른은 모두 어린이의 시간을 지나왔다. 지나왔다고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른의 내면에는 언제까지나 어린이의 시간이 남아 있다. 그것을 타고난 천심으로서의 동심이라 해도 좋다. 어린이는 자라느라 바빠서, 자기 삶을 독립적으로 영위할 수 없어서 어린이의 시간을 충분히 살지 못하고, 어른들 또한 먹고사느라 바빠서 타고난 동심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맑고, 말랑말랑하며, 사려 깊고, 너그러웠던 동심이 깎이고 훼손당하며 딱딱하게 굳어간다. 유연함을 잃고 경직된 마음은 상생과 협력 대신 자기만의 이익과 생존의 유리만을 탐하는 경제 동물이 되어간다.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동심의 회복이 필요하다. 동시는 경화된 마음의 근육을 풀어 동심의 부활을 돕는다. 놀고 싶게, 장난치고 싶게 만든다. 천진한 장난꾸러기의 눈으로 이 세계의 틈을 보게 만든다. 돌보지 않고 방치해둔 내 안의 어린이를 다시 찾게 만든다.

그런데 동시라고 하면 어린이나 읽는 유치한 시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최근 10년 동안 몰라볼 정도로 달라진 우리 동시의 현장이 제대로 독자에게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5년 최승호의 <말놀이 동시집>(비룡소)을 시작으로 우리 동시는 변했다. 말에 대한 감각과 놀이와 재미의 요소가 결합되면서, 그동안 우리 동시에 부족했던 ‘문학’이 채워진 것이다. 여기에는 정지용의 시대 이후 동시를 외면해 왔던, 시단의 시인들의 동시 쓰기가 중요한 몫을 했다.

시인들의 동시 쓰기, 최초로 이를 견인한 것은 2007년에 시작된 비룡소의 ‘동시야 놀자’ 시리즈다. 동시가 될 것 같은 시단의 시인들을 동시 쪽으로 불러들여 독특한 기획의 동시집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리즈의 특징은, 독자 연령의 상한선을 초등 2학년까지로 제한했다는 점, 시단의 시인들만으로 필진을 구성했다는 점, 한 권의 동시집에 하나의 테마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동심을 일깨우는 동시
동시 독자의 연령을 초등 2학년까지로 제한했다는 점은 한 권의 동시집 읽기에 수월성과 통일성을 부여했다는 장점이 있을 뿐 아니라 창작의 과정에서도 동일한 톤이 유지된다는 장점이 있다. 동시집 한 권에서 발생하는 난이도의 편차를 고르게 조율할 수 있다면, 창작과 감상의 눈높이를 일정하게 조절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시단의 시인들을 동시 쪽으로 끌어들인 것은 동시 분야에 부족한 ‘문학 자산’을 보강하고, 동시 소재와 표현의 다양성 확보, 동시 창작 풀을 훨씬 풍부하게 하려는 문제의식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바닷물 에고, 짜다함민복 지음비룡소 펴냄

동시집마다 하나의 테마를 부여한 것 역시 한 권의 책으로서의 일관성과 통일성, 쓰기와 읽기의 수월성과 다양성을 확보하기에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해서 신현림의 <초코파이 자전거>(의성어 의태어), 최명란의 <하늘天 따地>(한자), 김기택의 <방귀>(몸), 이기철의 <나무는 즐거워>(자연), 함민복의 <바닷물 에고, 짜다>(바다·갯벌), 함기석의 <숫자벌레>(수학), 안도현의 <냠냠>(음식), 유강희의 <지렁이 일기예보>(날씨) 등이 나오게 된다. 초기의 발행주기에 비해 지금은 거의 정지 상태가 되었지만 앞서 살펴본 대로 이 시리즈가 동시단에 미친 영향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이 시리즈 가운데 함민복의 <바닷물 에고, 짜다>는 2009년에 나왔다. 9년 전이지만 그동안 동시 쪽에서 이루어진 변화 양상은 너무나 급격한 것이어서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좋은 작품은 시간을 견딘다. 맨 앞에 실린 <집게>를 보자.“집게야/ 너는 집이 있어 좋겠구나// 꼭/ 그렇지도 않아요// 우린 외식도 못하고/ 외박도 못해요”(전문)

전복적 사유와 재치가 돋보인다. 집이 있다고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며, 때로는 집이 짐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집 없는 민달팽이를 가엾게 볼 일이 아니다. 민달팽이는 집 없는 자유를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 줄짜리 시, “물을 굴리는 저 작은 바퀴들 좀 보아”는 무엇을 쓴 것일까. 답은 ‘물고기 눈동자’다. 물고기 눈동자를 ‘물을 굴리는 작은 바퀴’로 표현한 것이 새롭다.
물고기들은 비를 뭐라고 할까. 시인은 ‘비’를 이렇게 썼다. “물고기들은/ 물고기들은// 비가 온다고 말하지 않고/ 동그라미가 온다고 하지 않을까// 봄동그라미/ 소나기동그라미// 똑 똑 똑/ 후드득 후드득// 하늘에서 떨어지는 동그라미/ 깜빡 커지고 활짝 커지는 것 보다가// 눈이 동그래진/ 물고기들// 눈이 큰 물고기일수록/ 동그라미 오는 것을 좋아하는/ 물고기 아닐까”(전문)

동시는 동심을 일깨운다.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동심과 접속하는 일은 즐겁다. 동심이 활성화되면 동물, 식물, 사물이 새롭게 보인다. 놀고 싶고 장난치고 싶어진다. 동시랑 놀면 웃음이 많아진다. 호기심이 발동하고 상상력이 작동한다. 젊어지고 어려지고 맑아지고 부드러워진다. 동시 마중은 동심 마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