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홍준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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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홍준표인가?
  • 충청리뷰
  • 승인 2018.05.30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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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현 발행인

“민주당 선거운동은 홍준표가 다 해주고 있다.”
홍준표가 2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예의 독설을 퍼붓자 한 때 한솥밥을 먹었던 바른미래당 하태경이 날린 일침이다. 홍준표는 이미 선거판에서 민주당의 2중대장, 선거대책본부장이라는 오명을 받아온터라 이 것의 연장선으로도 들린다.

그런데도 홍준표는 “참 질기다”란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문재인 정권과 남북정상회담을 깎아 내리는데 입을 멈추지 않는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듣기엔 한마디 한마디가 마치 사전에 예습이라도 한듯 거칠고 독기 또한 너무 충만하다. 독설이 아니라 저주의 수준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다 좋은데 제발 단어라도 골라 쓰라”고 말이다.

같은 당 후보들이 지난 1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홍준표의 ‘쇼’ 발언을 놓고 “나는 당대표와 입장이 다르다”는 보도자료를 내며 아예 그가 오는 자리를 피하는 정도가 됐으면 당 대표로서 그의 존재는 이미 경쟁력을 잃었다. 그렇다면 홍준표가 하는 말은 무조건 다 틀리다는 것인가.

지난 28일엔 이런 언급도 했다. “북핵을 폐지하는 순간 김정은 체제는 무너진다. 자기 체제를 스스로 허물어뜨리는 북핵폐기를 김정은이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지적은 충분히 새겨들을만 하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이에 공감한다고도 볼수 있다. 그가 처음부터 이렇게 논리적이고 점잖은 워딩을 구사했다면 당내에서 혹은 국민들에게 지금처럼 푸대접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홍준표에 대해 사람들이 거북함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이거다. 똑같은 말을 해도 그에게선 신뢰가 느껴지지 않는다. 세련되고 계산된 말로 대중을 현혹하라는 게 아니라 국민들을 향해 진솔한 마인드를 가지라는 것이다. 그 답을 자신에게 ‘한국의 트럼프’라는 별명을 안긴 미국의 트럼프에서 우선 찾아 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거칠고 돌출적인 언행때문에 비판 언론으로부터 장사꾼 취급을 받았다. 그러면서 자신을 둘러싼 성추문등 온갖 구설수에 시달리면서도 대통령의 위상과 입지를 차질없이 유지하고 있다. 언론들은 틈만나면 트럼프의 낙마설을 전파하지만 그 때마다 그는 보란 듯이 이를 헤쳐나간다.

이같은 트럼프가 대통령취임 후 지금까지 구사하는 말과 행동에는 공식이 하나 있다. ‘아메리카 퍼스트’다. 미국 우선주의를 끊임없이 설파한다. 실제로 그는 어떤 상황에 부딪칠 때마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자국민들에게 어필한다.

통상문제로 유럽 및 중국과 부딪치자 스스로 맞짱을 자처해 성과를 거뒀고 중동의 화약고를 건드린다는 세계적 비난 속에서도 미국 네오콘의 숙주가 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 주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북미정상회담을 놓고서도 북한이 벼랑끝 전술로 나오자 이보다 더한 정상회담 포기라는 ‘막장 전술’로 대응해 북한을 다시 대화의 장으로 끌어 들였다.

이렇게 되자 미국인들 사이에선 트럼프의 언행에 어느덧 제 2의 공식을 부여하는데 주저하지 않으면서 외신의 뉴스자막에도 버젓이 등장한다. ‘트럼프에게 도덕성은 아예 포기하더라도 국가이익과 국민안위에 관해선 호감이 간다?’는 식이다.

지금 홍준표가 자기당 지지자로부터도 비토를 당하는 마당이라면 트럼프 사례를 심각하게 학습할 것을 주문한다. 국가 위기에서는 여당이건 야당이건 당연히 최우선 가치로 여겨야 하는 것이 있다. 국가와 국민의 안위와 생명이다. 북한의 비핵화와 전쟁불가는 어찌보면 야당이 더 총대를 메야 한국적 정치사에서 더 설득력을 얻는다. 이 시점에선 ‘코리아 퍼스트’나 ‘코리아 유너피케이션(Unification ·통일)’을 외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흔들림없이 색깔론을 부추기며 국민여론을 이간질 시키는데만 혈안이다. 북한이 변하고 또 촛불혁명 이후 국민들의 여망은 크게 달라지고 있는데도 홍준표의 시계만은 여전히 7, 80년대 빨갱이 타령에 머물러 있다.

설령 남북정상회담이, 국가권력을 다퉈야 할 야당의 입장에선 맘에 들지 않더라도 홍준표와 자유한국당은 이 한가지는 인정해야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는다. 어쨌든 남북대화가 복원됐다는 점에서는 그들도 깨끗하게 받아들이며 어깃장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문재인과 김정은의 거침없는 정상회담을 접하면서 정작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다른 데에 있다. 더 이상 국가폭력이 없어야 한다는 것, 바로 이것 때문에 그동안 보수정당을 찰거머리처럼 지지했던 영남과 노년층에서조차 이격이 생기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한반도는 통일이 되어야 하고 누군가는 그 과정을 만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보수를 자처하는 세력들이 지난 반세기 동안 구사해 온 정치와 통치는 분단의 기계적 관리와 이를 악용한 국민분열이었고 그 과정에서 국가폭력에 의해 무수한 양민들만 희생당했다. 멀게는 조선총독부로 상징되는 일제하의 파시즘적 기생국가 체제에서부터 가깝게는 광주학살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식민과 분단을 자국민을 탄압, 학살하는 빌미로 삼으며 권력을 향유했지 결코 국민들을 ‘퍼스트(First)’로 여기지 않았다.

대충 꼽아도 제주 4.3항쟁 5만여명, 국민보도연맹 사건 50만여명, 여수 순천사건 5천여명, 대구 가창댐 민간인 학살 1만여명, 거창 난민학살 1천여명, 광주학살 2백여명 등의 무고한 국민들이 국가폭력에 의해 까닭도 없이 희생당했다.

대한민국의 국부라는 이승만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서울을 버리고 특급열차로 대구로 도망가면서도 보도연맹에 가입한 사람들이 북한군에 협조할 것이라고 의심하며 대대적인 학살을 명령했다. 그들은 그저 처자식들과 먹고살기 위해 사상이 뭔지도 모른채 좌익으로 빠졌다가 다시 전향하면 잘 보호하겠다는 국가의 말만 믿고 따랐던, 대개는 무지몽매한 양민일 뿐인데도 말이다.

지금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이 서로 사활을 거는 핵협상의 전후관계는 이렇다. 김정은은 홍준표의 지적대로 3대세습 독재체제의 수호와 생존을 위해서도 절대로 핵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반면 북한 해체가 궁극적 목표인 네오콘 지배하의 트럼프는 자신들에 대한 잠재적 위협인 북핵을 원초적으로 제거하면서 이 참에 북한을 제2의 베트남으로 전환시켜 경제적 이익까지 취하려 하고, 이 것이 깨질 경우 전쟁도 불사한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또 한 번의 전쟁, 더 이상의 동족상잔은 한반도를 아예 지구상에서 소멸시킬 수도 있다고 판단하는 문재인은 기를 쓰고 북한과 미국을 설득하며 전쟁불가를 외치고 남북통일의 주춧돌을 놓으려 안달(?)이다. 그렇다면 홍준표가 할 일은 무엇인가.

이같은 물음에 오답을 넘어 저주만 남발하고 있으니 지방선거가 끝나게 되면 대폭발의 정계개편, 홍준표 발 ‘빅뱅’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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