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어울리는 맛이란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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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어울리는 맛이란 이런 것
  • 충청리뷰
  • 승인 2018.06.0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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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미는 맛이 약해 다른 맛 해치지 않도록 신경써야

지난 5월 26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에서는 간만에 의미 있는 워크샵을 진행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직동에서 여러 단체들과 마을교육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해 마을조사 및 네트워크 조성 기반사업들을 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사업으로 함께 모여 마을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혹은 마을을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강연을 개최하였다.

이 날 강연자인 채효정 선생님은 오랫동안 성미산마을 공동체와 교육잡지인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으로 활동해 오신 분이다. 마을과 교육이라는 것들에 대해 새로운 인식들을 전해주신다. 그래서 어떤 요리로 함께 할까 고민하다 선택한 것인 가자미였다.

청주에서 흔하게 선택되는 재료는 아니지만 외국산 냉동가자미가 워낙 싸기도 했고 웬만한 마트에는 다 있는 흔한 생선이라는 것도 있지만, 가자미처럼 익숙한 재료들이 어우러져 주는 맛의 조화가 좋기 때문이다. 무언가 마을하면 떠오르는 요리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가자미 매운조림

생선을 매운 맛의 조림으로 요리하는 건 거의 비슷하다. 가령 가장 흔하게 요리되는 고등어조림이나 동태조림은 어쨌든 각각의 생선 맛이 중요하다. 즉, 그 생선의 맛이 강해서 다른 재료들은 그저 보조 역할을 하게 돼 나는 이런 강한 생선들을 요리하기가 오히려 편하다. 하지만 가자미는 그 맛이 강하지 않아서 각각 재료들의 어우러짐을 잘 살펴야 성공한 요리가 된다.

미나리 일찍 넣으면 맛 해쳐
우선 냉동가자미는 손질이 필요하다. 보통 가자미가 비늘이 없다는 오해를 받는데 그렇지 않다. 칼로 해동한 가자미의 겉을 긁어 보면 아주 미세한 비늘들이 나온다. 이것을 제거해야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손질된 가자미에 앞뒤로 조금씩 칼집을 내고 준비된 냄비에 무를 깔은 뒤 그 위에 얹은 후 양념장을 골고루 발라준다.

그런 후에 쌀뜨물을 넣어서 자작하게 해준 후에 대파를 송송 썰어서 넣어주면 끝이다. 양념장은 고춧가루, 고추장, 된장 아주 조금, 간장, 마늘, 매실청 조금, 후추 조금, 참기름 조금에 깨소금, 대파 다진 것 정도로 섞어서 만들어 준다.

가자미 조림을 요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미나리나 쑥갓을 언제 넣느냐이다. 보통 조림이나 찜을 할 때 그 풍미를 더해주기 위해 미나리를 많이 쓰는데, 중요한 건 가자미 조림이 다 완성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얹어 주어서 살짝 데쳐내듯 요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나리를 너무 일찍 넣거나 너무 익히면 그 특유의 식감도 없어지지만 가자미 맛을 해치기 쉽다. 가끔 쑥갓을 넣기도 하는데, 쑥갓은 거의 익히지 않고 토핑처럼 얹어 낸다는 생각으로 요리해야만 매운 가자미 맛과 좋은 화합을 이룰 수 있다.

보통 고등어조림의 경우 미나리나 쑥갓보다는 김치 등이 더 어울린다. 아마도 맛이 너무 강한 고등어 때문에 그만큼 강한 김치 등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가자미는 맛이 약해서 가급적 서로 맛을 해치지 않기 위해 조금 신경을 써야하는 것 같다. 뭐랄까, 서로의 맛을 죽이지 않기 위해 각자 조금씩 덜어내도록 해야 한달까?

지난 5월 26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은 워크샵을 하고 가자미 요리를 먹었다.

마을운동을 다시 생각해본다
이런 특징이 마을 혹은 마을운동을 생각하는 우리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위 마을운동이라는 것을 상정할 때 우리가 범하기 쉬운 게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활동가들이 마을에 들어가 마을만들기나 도시재생사업을 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방식이 주민들의 욕구조사를 바탕으로 그 지역 특색에 맞는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것이 올바른 방식처럼 느껴지지만 이것은 엄청난 함정을 가지고 있다.

우선 우리가 대상화하는 마을 주민이라는 집단의 욕구나 특성은 의외로 대동소이하다. 여기에 도시라는 공간의 지역적 특색은 상당히 천편일률적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전국의 어느 마을이나 비슷한 사업을 하고, 결국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일반적인 방식은 고등어 만큼이나 그 자체 색깔이 강해서 활동가의 생각을 반영하기 힘들고, 다양한 맛을 내기도 어렵다. 차라리 활동가 스스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들을 중심에 놓고 그 다양함을 바탕으로 여러 개의 맛을, 여러 개의 마을을 겹치게 하는 방식이 옳지 않나 싶다. 현재 알려진 활동가들의 마을운동 핵심은 스스로 마을주민과 동화되기 일 것이다.

여기서 활동가가 마을 주민화한다는 건 마을 주민들의 욕구를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게 아니라 내가 주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건 마을 주민들 사이에 나의 욕구가 함께 공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만 한 가지 강한 맛의 마을이 아닌, 다양하고 중층적이면서도 서로가 서로의 맛을 가질 수 있는 공존의 틀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가자미는 맛이 강하지 않아서 다른 맛을 죽이지 않고 함께 살아남는 방식으로 요리해야 가장 맛나다. 내가 살아갈 마을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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