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친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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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친구가 필요하다
  • 충청리뷰
  • 승인 2018.06.28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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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윤이주의 『소생기

오정란
해피마인드 심리상담소장

무심천을 사이에 두고 모충동 언덕 위로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아파트 공사 열기는 모충동뿐 만이 아니다. 청주 곳곳에서는 지금 아파트 건설 붐이 일고 있다. 이유가 궁금할 정도로 많이 짓고 있다. 고층 아파트는 우리의 시선을 가린다. 낮은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숨소리를 가린다. 내 안의 익숙한 것들과 나의 감각에 아낌없이 내주었던 것들을 타의에 의해 강제 당하고 있다는 느낌은 좋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개발 풍경과는 아직 다른 곳이 있다. 육거리 시장 골목골목, 특히 남주동 골목 안이 그러하다.

소생기 윤이주 지음 무늬 펴냄

윤이주 작가의 소설 『소생기』는 남주동 가구 골목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중 ‘산책자들’ 소설의 주무대는 남주동 가구 골목이고 책방 주인, 철물점 주인, 치킨 집, 여인숙, 식당. 목공소 등등 떠돌다가 들어와 정착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이 소설에는 총 9편의 중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산책자들’을 제외한 소설들은 마치 장편 시를 연상케 할 만큼 짧고도 간결하다. 낭독하고 싶을 정도로 음률이 살아있다.

실제로 윤이주 작가는 남주동 가구 골목에서 거주하며 공간 북클럽 ‘체홉’을 운영하고 있다. ‘산책자들’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체홉은 인문학적 공동체를 떠올리게 한다. 공동체의식을 유지하는 매개는 책과 글이지만, 밤을 새워 이야기하는 주제는 언제나 산다는 것의 기쁨의 반은 우정의 나눔임을 반복하며 같은 결론을 이끈다. 우정 공동체라고나 할까.

그래서일까. 작가는 강력하게 말한다. 우리는 모두 친구가 필요하며 친구는 저절로 되지 않는다고. 먼저 문을 열어 그들을 옆자리로 모셔야 가능하다고. 함께 재밌게 놀 자리를 마련하고 이를 유지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작가는 소설 속 인물을 통해 말한다. 우정에는 성실함이 필요한데, 그 성실함은 들어주는 성실함이라고. 귀를 기울이는 대신에 입을 열기에 바쁜 사람들과 누가 친구가 되고 싶겠느냐고. 우정은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과는 나눌 수 없는 것이며, 말로는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지만 깊은 우정을 경험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눈물이 고이게 하는 책
그는 ‘산책자들’에서 골목에도 감정이 있다고 말했다. 이 골목에는 억척스럽지만 마르지 않는 눈물샘 하나씩을 지니고 있는 큰누이의 냄새를 지닌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동광철물점, 마산여인숙, 송어회집 육거리 시장, 그리고 꽃집, 강서 상포 등등 실제로 걸어서 나가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이웃으로 우리들 곁에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작가는 자신만의 특유의 문체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래서 여기 실린 소설 한 편 한 편이 지루하지 않다. 아니 지루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담담하게 읽어 내려가게 하는 힘이 있으며, 그 힘은 곧 읽는 독자에게 다시 무엇으로든 환원하여 바라보게 하는 집중력을 준다. 나 역시 이 소설을 다시 읽으니 맥없이 눈에 눈물이 고였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어떻게 그런 어려운 시절을 보냈는지를 눈빛으로 위로하며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했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정작 ‘소생기’라는 제목의 이야기는 없다. 윤이주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지난해 수해로 고통 받은 이들, 뻘이 된 집을 치우고 전기를 복구하고 유실된 길을 연결하는 손에 손을 보태기 위해 소생기라는 이름의 책 대문을 달았다고 한다. 소생기에 실린 글들이 하찮고 하찮아서 헛웃음이 나지만 하찮게라도 존재할 수 있도록 이웃이 애쓰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기에 이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소설은 참으로 따뜻하다.

작가는 물질 나눔보다는 주고받은 정을 저울로도 달 수 없는 사람 사는 세상을 되살려낸다. 그리고 시장가방을 챙기게 하며, 육거리 시장으로 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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