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었던 사실 상기시키는 채식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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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던 사실 상기시키는 채식요리
  • 충청리뷰
  • 승인 2018.07.0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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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하나하나의 고유한 맛을 그대로 살리는 게 핵심

지난주에 오창에 있는 밭에서 감자를 캔 후에 급하게 콩을 심었다. 대충 날짜를 맞추어서 모종을 키웠는데 뜻하지 않게 감자 캐는 것이 늦어지면서 콩 모종이 웃자랐다. 그러다보니 마음이 급해졌다. 보통 하루 정도 늦어지는 것이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콩모종은 유독 하룻만에 쑥쑥 콩나물처럼 올라와 늦어지는 만큼 하루하루 걱정이 쌓였다. ‘공룡’ 농사를 도와주시는 아버지께서 매일 옆에서 콩은 무조건 6월 20일 전에 심어야 한다고 재촉하시는 바람에 더 몸이 달았다. 어렵게 날짜를 정하고 분무기 등을 구해서 콩을 심게 되었는데 함께 활동하는 ‘공룡’ 회원들만으로는 하루에 다 심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주변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필 콩 심는 날이 평일이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고맙게도 서울 해방촌에서 대안금융운동을 하는 ‘빈고’ 활동가 광대와 주거공동체 ‘빈집’에서 활동하시는 소연샘이 기꺼이 일을 도와주신다고 해서 다행히 일을 잘 마칠 수 있었다.

채소 각각의 맛을 즐기다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일을 할 때는 도와주는 친구들 생각은 일절 못하고 그저 빨리 일을 끝낼 생각만 했다. 그런데 막상 일을 마치고 나니 무척 미안하고 또 그 만큼 고맙기도 했다. 그래서 뭔가 근사한 식사대접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고민을 했다.

보통은 그냥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대충 만들거나 아니면 고된 노동을 했으니 고기요리라도 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광대라는 친구가 채식만 하는 비건(Vegan, 채식주의자)이라서 식재료부터 양념까지 꼼꼼히 따져서 요리를 해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야채볶음밥, 두부숙주나물두루치기, 묵무침이었다

야채볶음밥
두부숙주

처음 채식요리를 할 때만 해도 매우 난감해서 그저 야채샐러드에 드레싱을 얹는 정도에서 그치거나, 표고버섯탕수육처럼 뭔가 고기를 뺀 고기요리를 했다. 나는 워낙 다양한 식재료를 섞어 강한 맛 내기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주로 내가 맛있게 먹는 요리를 하니 은연중에 고기를 많이 사용하게 된다. 그래서 채식 레시피 자체도 한정적이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후원주점에도 채식요리 하나 정도 준비해야 할 정도로 주변에 채식을 하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요리하는 마음 자체를 바꾸었다. 억지로 고기를 대체할 식재료를 찾아서 넣는 게 아니라 요리법 자체를 좀 바꾸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보통의 요리가 식재료와 양념을 이용하여 새로운 맛을 내려고 노력한다면 채식요리는 각 재료 고유의 맛을 살려주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게 맞지 않나 싶다는 거다. 가령 야채볶음밥은 파기름에 표고버섯, 애호박, 느타리버섯, 팽이버섯을 다져서 밥과 함께 볶아냈다. 가장 무난한 애호박과 느타리버섯부터 볶고, 표고버섯을 조금만 넣어서 볶다가 밥과 팽이버섯을 함께 볶으면서 간장으로 맛을 살짝 냈다. 그러면 먹을 때 살짝 간장 향만 나고 오히려 각각의 채소 맛은 어느 것 하나 죽지 않고 모두 즐길 수 있게 된다.

채식주의자를 통해 생각하는 것
그리고 두부숙주나물두루치기는 우선 프라이팬에 파기름을 낸 다음 양파를 넣어서 볶다가 양파 숨이 죽으면 두부를 넣어서 강하게 볶는다. 여기에 간장을 넣어서 볶은 후에 불을 끄고 숙주나물을 넣어서 잔열로 숙주나물을 살짝만 익혀낸다. 그러면 먹을 때 두부의 담백한 맛과 숙주나물의 아삭한 맛이 살아 있고 파기름과 간장이 섞이면서 향긋한 맛도 살아 있어서 먹는 내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그렇게 아주 사소한 것들마저 잊혀지지 않고 살아있게 하는 것. 어떤 강한 맛을 살리기 위해 작은 맛들은 제거하는 게 아니라 그런 작은 맛들도 제각각의 역할들을 가질 수 있도록 함께 버무려내는 방식이 어쩌면 채식요리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묵무침

가끔 농삿일이나 사회단체 일을 하면서 시간에 쫓기거나 일의 중요성 때문에 무시하고 넘어가거나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들이 많다. 언제나 묵묵히 함께 일 해주는 활동가들도 그렇지만 어렵게 시간을 내어서 티 나지 않는 일을 기꺼이 함께 해주는 이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결과물만 도드라지는 현실이지만 적어도 우리는 그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요소요소들이 그 자체로 빛을 발하는 현실로 바꾸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주변에 채식주의자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잊고 있었던 작고 사소한 것들이 그 자체만으로 빛을 내는 사회로 나아간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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